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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짐을 져 주시는 주님( 시 68:19)
08/15/201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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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14일 전교인 여름수양회

 

                                            날마다 짐을 져 주시는 주님

 

말씀: 시편 68:19

 

         사람마다 짐이 있습니다. 일평생을 살아내야 하는 인생의 짐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무더위에 먹고 살아야 하는 경제의 짐이 있고. 아프면 질병을 짊어 지고 가야 하는 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이혼하거나 자살했을 경우 자녀들이 오롯이 자기가 져야 하는 운명의 짐도 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도 예외없이 짐이 있습니다. 이거 내가 지기에 버겁다 하는 짐들이 다 있습니다. 이런 짐들이 언제 더 무겁게 느껴집니까? 내 삶에 여유가 없고 풍성함이 없고 피폐해 지고 뭔가 가믐이 든 것 같은 상황에서 우리 인생의 짐을 지기에 버겁다 하는 생각이 들죠? 내 영혼에 가믐이 들고 뭔가 결핍되고 건조해서 버티기 참 힘들다 생각될 때 무거운 짐으로 느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여기에 어떤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습니까? 우리 인생에 가믐이 들었을 때 내 신앙생활이 버겁게 느껴질 바로 그때가 참으로 인생에 중요한 것들 또 신앙생활에 소중한 것들 가치 있는 것들 핵심적인 보화를 발결할 기회의 때라는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 디베랴 라는 곳에 한 전시관이 있습니다. 그 전시관에는 예수님 당시에 있던 크지 않은 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2000년 넘은 것이므로 성경 고고학적으로 아주 소중한 보화입니다. 그런데 이 배(Jesus 's boat ) 가 언제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아십니까?

 

    1983년 갈릴리 호수 주변에 가믐이 들고 또 가믐이 들어 해수면이 낮아지고 또 낮아져 상당부분 뻘이 들어 났을 때입니다. 한 농부가 지나가다 한 이상한 모양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저게 뭘까? 하다 당국에 신고하게 되고 당국에서 아주 세심하게 발굴하고 복원 처리하여 전시하게 된 것입니다. 그 배는 늘 거기에 있었습니다. 10002000년 그 바다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소중한 것이 갈릴리 호수가 넘치고 넉넉했을때는 발견할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물이 빠지고 밑바닥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고 사람들이 그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입지전적인 사람 혹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 가운데 이런 모티브 이런 주제가 많이 있은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우리 삶이 풍성할 때 발견할수 없었던 소중한 것을 가믐이 들었을 때 오히려 나타내고 확인하고 누리게 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내 영혼이 넉넉하다 이제 쉬자 이럴때는 알수 없었던 주님이 내 영혼의 가믐이 들었을 때 사실은 우리 곁에 가까이 계셨다 우리를 끊임없이 만나고 계셨다 그래서 신앙의 성숙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언제 우리가 이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는 짐이 있다' 아니 '우리는 짐진 존재다' 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게 됩니다. 오늘 시편 6편은 개선 행진곡 입니다. 24절에 하나님이여 그들이 주께서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로 행차하시는 것이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개선행진을 하는 왕의 행렬 승리의 행렬에 이스라엘 백성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지금 시인이 시편 68편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의 행렬 승리의 행렬에 이스라엘 백성이 참여하고 있는데 19절에 있는대로 사람들에게는 짐이 있는 거에요. ‘우리 짐이라고 하는 것이 승리의 행렬에 동참하고 있으면서도 그 짐을 지고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살므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우리가 경험하고 그것이 내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살아낼수 있는 놀라운 은총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짐이 있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형통과 기쁨이 있지만 왜 난관과 좌절이 있는 것입니까? 단지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존재가 가지고 있는 성화의 과정에 드러나고 있는 그런 부분이 있는 것이죠. 우리는 구원의 은혜에 감사 감격 합니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별거 아닌 것에 우습게 넘어져 버릴 때가 있잖습니까? 이런 자신의 연약함과 초라함을 보며 안타까워 하며 한탄스럽게 여길때가 있죠? 이렇게 성도는 짐진 자입니다.

 

      짐 가운데 우리가 홀로 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6:5절에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각각 자기가 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이 짐은 따라서 다른 사람이 대신 져줄수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우리 인생도 그러하죠.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 조언해주기도 하고 혹은 격려 해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수 는 없습니다. 우리가 대신 믿어 줄수는 없는 것이죠. 우리는 언젠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내 대신 서줄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아내 대신 믿어주거나 살아 줄수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아무리 좋아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얼마나 자녀를 끔찍이 사랑합니까? 그럴지라도 자녀의 짐을 내가 대신 져줄수 없는 것이죠?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지만 우리 삶을 대신 살아 주시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이 가지게 되는 삶의 엄숙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책임지는 존재요. 우리는 우리가 오롯이 져야 하는 짐이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짐을 어떻게 져 주십니까?

첫째, 우리 주님이 친히 우리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방식으로 우리 짐을 져 주십니다.

 

9절에 보면 비를 내려 주십니다. 흡족한 비를 보내신다. 기본적으로 우리 필요를 공급하심으로 우리 짐을 져 주시는 것이죠. 10절에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를 위해서 은택을 준비하셨다. 주님께서 이 은혜를 예비해 놓으시고 그들에게 힘을 주셔서 짐을 져 주십니다. 이때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짐을 져 주시는 일에 대하여 5,6절에 보면 고아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며부모가 없는 고아 얼마나 삶이 곤고하고 고달프고 힘이 들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이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그 짐을 져 주십니다. 과부의 재판장이시라고대 사회 과부는 생존을 위협받고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정의로 취급받는 다는 것은 더더욱 여려울수 있습니다. 이럴 때 주님이 재판장이 되어 주셔서 공의를 베푸시고 그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그런 분이 되어 주시고 갇힌자의 해방자가 되어 주심으로 그 필요를 공급하신다는 것을 보게 되죠. 이것은 다윗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이 짐 진 것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되는 것이죠. 광야 이스라엘에게도 하나님이 그런 짐을 져 주셨습니다. 밤에 얼마나 추운지 그때 불기둥이 되어 주시고 열과 빛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낮에 뙤약볓이 얼마나 우리 몸을 상하게 하는 지 그늘이 되어 주셔서 보호하시는 방식으로 짐을 져 주셨습니다.또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서 그들의 일용할 양식과 영양분을 공급하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짐을 져 주셨습니다. 믿음의 용사요 영웅이라 할수 있는 엘리야가 약해져서 주여 죽여 주옵소서쓰러질 때 주님이 물과 떡을 공급하시고 그를 어루 만져 주시고 격려하시고 사명을 주셔서 그것을 감당하게 하는 새로운 출발을 할수 있게 하도록 그 짐을 져 주셧습니다. 주님이 떠났다 그러니 물고기나 잡으러 가자 제자들이 실패를 경험하는 그 현장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조반을 준비하셔서 만찬에 초대합니다. “ 와서 아침을 먹으라 이것은 정말 주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준비하신 것이 아닙니까? 오늘날도 우리 개개인의 기도를 따라서 응답하시는 체험을 통해서 우리가 고백하게 됩니다. 선교현장 보고를 통해 들었습니다. 지진이 잦은 칠례, 고환율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 종교경찰에게 감시당하고 끌려가는 말레지아, 배척과 혐오를 견뎌내야 하는 일본, 등 치열한 영적 싸움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그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기적적인 방법을 동원 해서라도 우리 짐을 져 주십니다.

 

      하나님이 다른 성도들을 통해서 혹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포함해서 우리 짐을 져 주십니다. 성경에 주님은 까마귀를 동원하시기도 하셧습니다. 우리가 까마귀 역할을 하는 사람을 통해서 그렇게 공급하시기도 합니다. 아마 하나님은 이 외에도 짐을 져주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를 잘 알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가 기대하는 방식이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고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통해서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방식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서 공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손길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 짐을 들어 주는 것만 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짐 우리 문제만 해결해 주기 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 짐을 통해서 이문제를 통해서 주님이 하실 일이 있는 것이죠. 주님이 목적하는 바가 있는 것이죠. 우리 믿음을 자라게 하고 우리 신앙인격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이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방식을 통해서 주님이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시고 우리의 모난 부분을 다듬고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키고 우리 삶을 변혁시키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짐을 져주십니다.


     시리아에 유명한 나아만 장군이 문등병에 걸렸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 엘리사 로부터 병고침을 받은 장면이 나옵니다. 엘리사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말합니다. 나아만이 굉장히 노했습니다. ‘아니 요단강 그까짓거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하느냐? 무엇보다 선지자라는 사람이 말로 때우려고 하느냐?’ 그래서 무산될 뻔 했습니다. 그러나 신하의 말도 있고 해서 그대로 해서 병이 나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져 병만 고쳐 주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민족적 편견 종교적 편견을 깨고 그를 고쳐주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나타내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터프한 선지자 엘리사를 통해서 그를 치유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 연약함을 모면하길 원하죠?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고 그것을 통해서 아름다운 구원의 여정 가운데 필수적인 것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짐을 어떻게 져 주십니까?

둘째, 우리 짐을 그대로 놔 두시되 우리가 그 짐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시는 방법으로 주님이 우리 짐을 져 주십니다. 이는 주님이 상당히 자주 사용하시는 방법입니다28절에 네 하나님이 너의 힘을 명령하셨도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을 견고하게 하소서” “네 하나님이 너의 힘을 명령하셨도다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입니까? 우리 힘을 명령하셔서 ? 우리가 힘을 내서 감당할수 있도록 그런 힘을 공급하시고 그것을 일깨워 사용하도록 재촉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 실제로 감당할수 있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이 힘을 명령하셨으니 그 힘이 그 목적을 이루고야 마는 것입니다. 35b 절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 그의 백성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펄만16번의 그래미 상을 수상할 만큼 현존 최고 바이올린 연주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폴란드계 유대인이고 어려서부터 소아마비가 있었지만 은사가 있고 이를 개발해서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연주를 하는데 줄이 툭 끊어졌습니다. 최악의 상황인거죠. 줄이 하나 끊어졌는데 무슨 연주가 가능하겠습니까? 줄 하나가 끊어졌으므로 음악의 그 미묘한 화음과 멜로디가 완전히 망쳐진 것이죠. 그러나 그는 침착하게 중단된 그 부분부터 계속해서 연주를 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연주 했느냐? 즉흥적으로 편곡을 했습니다. 그 줄을 안써도 되게 변화를 주었습니다. 실력이 있으니까 재작곡하듯이 그렇게 했습니다. 결과가 어땠느냐? 전에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음악이 탄생한 것입니다. 온 청중이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이작 펄만이 마이크를 들고 말합니다. 내가 왜 이렇게 무리한 연주를 했는가? 때로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을 가지고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예술가가 하는 것이다 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의 말이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지 않습니까?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을 가지고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하는 것 그것이 예술가다! ‘ 남아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어요.’ 나는 줄끊어진 인생이다. 나의 신앙생활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마치 줄끊어진 바이올린 같이 장애가 있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죠. 그럴 때 그것을 가지고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아름다운 음악 믿음의 음악을 연주할수 있다는 은총이죠.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냐? 아이작 펄만이 바이올린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 할수 있었던 것은 줄 끊어진 바이올린이 펄만의 손에 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펄만의 지혜와 능력과 은사가 그것을 감당해낼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손에 붙잡혀서 그 고장난 바이올린 줄끊어진 바이올린을 가지고 아름다운 음악을 창조할수 있었던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줄 끊어진 바이올린 같이 뭐가 손상되고 뭔가 장애가 있어서 그것 가지고는 제대로 소리를 낼수 없다고 말할수 있겠지만 /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우리를 빚으시는 하나님 또 지금도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다면 펄만과 비교할수 없는 지혜와 능력과 그 말할수 없는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갈 것이니 내 장애 문제 말고 누구에게 내 인생을 맡기느냐 내 인생이 누구의 손에 잡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필기 도구 중에 명품 몽불랑 만년필 과 싸구려 몽땅 연필이 있습니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 열등생이 몽불랑 만년필을 잡고 시험을 봤어요. 몇 점 맞았을까요? 아주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 몽땅 연필을 잡고 시험을 봤어요. 몇점 맞았을까요? 문제는 그것을 가지고 쓰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답안지가 달라지는 것이죠? 내 인생의 답안지! 그것이 어떻게 쓰여지느냐 하는 것은 필기도구 성능의 우열보다 누가 이 필기도구를 잡아 쓰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내가 내것을 가지고 쓴다면 내 한계속에서 밖에 나타낼 수밖에 없죠? 그러나 하나님이 그것을 잡아 쓰신다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통해서 그 답과 목적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게 하실 것이다

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짐을 어떻게 져 주십니까?

셋째, 우리가 다른 사람의 짐을 질 때 하나님이 우리 짐을 져 주십니다. 갈라디아 6;2절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우리는 짐을 각각 져야 하지만 서로 나누어 져야 할 짐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것이 틀림 없는데 그런데 홀로 짐을 질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 짐을 제대로 지지 못하는 나자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연약해서 쉽게 넘어지거나 환경적으로나 또는 트라우마가 있어서 성격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때문에 난감해져 낙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혹은 도덕적인 취약성 때문에 고통 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완벽하다 나는 혼자 다 해낼수 있다그리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 이런 연약한 부분이 나타날 때 그것을 일깨워 주고 격려하고 혹은 책망하고 교정을 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과정에서 무시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닌 바울의 말을 빌리면 온유한 심정으로 바로 잡아야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온유는 그리스도의 성품이죠. 그래서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회복시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연약한 이웃의 짐을 서로 져 주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나의 짐도 져주십니다. 이런 기독교적 역설이 기독교적 은혜 방식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인도 동북쪽 히말라야에 가까운 지역에 어느 겨울날 영하 20도 대단한 추위죠.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날 세사람이 히말라야 산자락을 넘어 가게 되었습니다. 산세가 험하죠. 몽땅 얼어붙는 강 추위에다 몰아치는 칼 바람에다 폭설에다 이것을 견디지 못하고 한 사람이 쓸어졌습니다. 남은 두 사람이 다퉜습니다. 한 사람은 데려가자. 한 사람은 그를 데리고 가다가는 우리 다 죽는다 그냥 두고 가자 이렇게 의견대립이 있었습니다. 의견통일이 되지 않아서 한 사람은 나라도 살아야 겠다며 먼저 훅 떠나갔습니다. 그때 인도의 기독교인 썬다씽은 그 쓰러진 사람을 들춰 엎고 혼자도 힘든 그 추운 눈바람과 사투를 벌이면서 등에 한 사람이 있으니 혼신의 힘을 기울여 버겁게 걸어 갔습니다. 쓰러지기 직전 멀리 마을에서 어렴풋한 불빛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힘을 내서 내려가는데 길가에 얼어죽은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썬다싱은 후에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고합니다. 내가 쓰러진 사람을 업지 않았다면 나도 죽었을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업어 몸에 열이나서 내 체온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예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지면 열이 나서 내가 사는 그런 방식인 것이죠.

 

      내가 다른 사람의 짐을 질 때 짐 지는 것이 어렵죠? 그렇지만 내가 남의 짐을 져 줄때 그 믿음과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짐을 져주시는 것입니다. “네가 십자가를 지라 그리하면 십자가가 너를 져 줄 것이다. ” 십자가를 질 때 쉽지 않죠?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짐을 지는 방식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십자가가 그 짐을 져주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님의 십자가는 내 짐만 져 주십니까? 사실은 나를 져 주시는 것이죠. 경험에 의하면 짐 중에 가장 무거운 짐이 무엇입니까? 나 자신이죠? 나는 죄덩어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 나는 나의 운명 나의 죄를 질 수 없죠? 하나님이 나를 져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사야 53: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주님이 내 질고와 슬픔을 져 주신 것입니다. 이로 이사야 53: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죄짐을 다 져주시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힘들지만 다른 사람의 짐을 져 줄 때 하나님이 내 짐을 져 주시는 방식으로 주님은 우리 짐을 져 주십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져 주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결론

 

      우리는 흔히 짐이 너무 무겁고 힘들면 짜증이 나고 어려움을 당하면 상처를 입기 쉽습니다. 마음이 거칠어 지기 쉽죠? 움추러 들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삶에 풍성함이 사라지고 가믐이 들 때 영적으로는 어떤 때입니까?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숨겨 놓으신 그 보배로운 것들 ? 믿음, 기도, 사랑, 하늘 나라 소망 - 이런 소중한 가치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거추장 스러운 것들 악세사리들 이런 것들이 없어지고 그 진면목을 바라 볼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게 되고 그것들을 더 쉽게 발견 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그러할 때 우리는 주님의 보배를 발견하기를 기대하고 주님을 더욱 찾아야 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굳게 잡고 기도의 날개를 손질해야 합니다. 기도의 날개가 젖지 않도록 기도의 날개가 쳐지지 않도록 늘 손질 함으로써 날아갈수 있는 우리 신앙을 유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어수선 할때일수록 말씀과 신앙 양심에 따라서 기도하기에 힘쓰고 내가 해야할 역할을 짊어 져야 합니다. 어려울 때 내 인생에 가믐이 들었다 부족하다 할 때 쉽지 않지만 내가 믿음 충성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믿음과 충성을 귀히 보시고 때가 되면 높이시고 갚아 주십니다.

성경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우리 삶의 중요한 보배를 발견하고 무엇보다 가까이 계신 주님을 또 주님이 예비하신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쉬게 해 주겠다 말씀해주신 주님께서 날마다 우리 짐을 져 주시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짐을 져 주실 때 그져 짐만 간단히 옮기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믿음을 자라게 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윤택하게 하시고 우리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시고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인격을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소서 이 모든 은혜를 인해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나 자신을 주님께 맡기오니 주님께서 나를 붙잡고 당신의 뜻을 순종해 나갈수 있도록 아버지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는 그 주님의 멍에를 맴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진보를 이루며 하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 감사하오며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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