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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앞 두 기둥 ( 역대하 3:15-17 )
01/08/201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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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6

 

                                                                성전 앞 두 기둥

 

말씀: 역대하 3:15-17

 

         건축할 때 기초 공사가 부실하면 피사의 사탑처럼 건물이 기울어 지죠? 다음 중요한 것이 기둥 세우는 일 입니다. 겉을 거창하고 화려하게 포장해도 기초가 부실하고 기둥이 약하면 뿌리 없는 나무처럼 언제 어떻게 쓰러질지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만 기초와 기둥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생 가정 기업 국가도 기초기둥이 중요합니다. 교회와 신앙생활도 기초와 기둥이 든든해야 흔들리거나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초와 기둥은 무엇일까요?

 

먼저, 성전의 기초

 

        역대하 3장은 다윗의 유언에 따라 솔로몬이 성전 건축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본래 다윗은 생전에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성전 짓는 일에 피를 많이 흘린 다윗은 합당하지 않다 하시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판단과 결정에 순종했습니다.

 

        비록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 짓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음에도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하여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성전 지을 재료들은 대부분 다윗이 준비해 놓은 것들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다윗의 헌신과 희생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은 솔로몬 시대 훌륭하고 아름답게 건축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성전의 기초입니다.


          성전이 어디에 세워졌습니까? 역대하 31절에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성전 기초자리는 바로 예루살렘 모리아산 이었습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 했던 바로 그 산입니다.

 

       역대상 21장에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인구조사한 일로 인하여 징계 받은 사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으로 7만 여명이 죽습니다. 이스라엘을 치던 여호와의 사자가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나타났습니다. 그때 다윗은 백성의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엎드려 자비를 구하며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재앙이 그쳤습니다. 이에 다윗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나타났던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금 600세겔을 주고 매입하였습니다. 그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바로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시작한 장소 예루살렘의 모리아산 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모리아산, 또 다윗이 번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나타났던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성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곳은 훗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던 ‘골고다 언덕입니다. 장차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자신을 번제물로 드릴 곳에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진 것입니다.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섭리가 작용한 결과 입니다. 따라서 성전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음, 성전의 기둥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중심인 성전이 언제 세워졌습니까? 지금부터 3000년 전 솔로몬 왕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역대하 2:18절에 보면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최고 좋은 목재인 레바논의 백향목을 벌목하는데 동원된 벌목공만 8만 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원된 짐꾼만 7만 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원된 성전 건축 감독관만 3600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은 성전 건축에 온 국력을 집중하여 심혈을 기울여 완공한 대형 국책 건축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 성전에 대해 기도한 내용이 왕상 8:13절입니다.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이다 하고이 말씀에 나타난 기도 내용만 보면 솔로몬은 하나님이 성전 속 성전 안에만 계실 것처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기도는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왕상 8: 27절에 보면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 이오리이까?” 솔로몬은 하나님이 성전 안에 갇혀 계실 분이 아님을 잘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들이라도 용납하지 못하시는 무소부재 하신 분이십니다.

 

        솔로몬은 성전 앞에 놋으로 만든 큰 기둥 둘을 만들었습니다. 높이가 35규빗 15.96 m , 각 기둥 꼭대기의 머리가 다섯 규빗 2.28 m 18.24 m 건물 5층 높이 기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둥머리에는 석류 백개로 장식을 만들고 사슬 장식을 달았습니다. 해가 뜰 때 그 큰 기둥이 번쩍 번쩍 빛나며 얼마나 화려하게 빛을 발했겠습니까?

 

       솔로몬이 성전 앞 두 기둥을 세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과 만남을 이룰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가지 사실을 마음에 꼭 깨닫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이나 가정 사회 국가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은 성전 기둥의 거대함이나 화려함이나 아름다운 장식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전 앞에 세운 기둥의 이름에 있었습니다.

 

       성전 건축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때 솔로몬은 무엇을 세웠습니까? 17그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으니 왼쪽에 하나요, 오른쪽에 하나라. 오른쪽 것은 야긴이라 부르고 왼쪽 것은 보아스라 불렀더라.” 성전 앞에 세운 두 기둥의 이름은 솔로몬이 진정 백성들 마음에 심어주고자 했던 것이고 솔로몬 자신의 신앙고백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솔로몬의 신앙적인 훌륭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두 기둥을 세우고 하나의 이름은 다윗’, 다른 하나의 이름은 솔로몬이라 칭하였을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 드러내기를 원합니다. 사실 성전 건축에 있어서 가장 공이 많은 사람도 다윗과 솔로몬 아닙니까? 또 그들은 보통 사람도 아니고 나라의 왕입니다. 두 기둥을 왕의 이름으로 칭한다 해서 누가 탓할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다윗이나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세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를 분명히 밝히기 위하여 솔로몬은 야긴보아스라는 이름의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던 것입니다.

 

        오른 쪽에 있는 기둥의 이름은 야긴인데 그분이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스라엘은 선민으로 선택한 이유는 타 민족 보다 이스라엘이 강해서도 아니고 위대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신명기 7:7절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 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은 수가 가장 적다. 보잘 것 없고 작은 민족이다,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은 선민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약한 민족을 선민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만 이스라엘을 바로 세우실 수 있고, 당신에게만 그런 능력이 있음을, 가작 작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세상 만방에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왼쪽에 있는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 ‘그분께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자기가 이스라엘은 세우고 자기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양 교만했던 왕이었습니다. 반면 베들레헴 양치기 출신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세워질수 있고 하나님만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은 겸손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다윗 왕국이라 불러 주시고 영원히 다윗왕국과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위로 아홉명의 이복형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다 그의 어머니 밧세바는 유부녀로써 다윗을 통해 아들을 낳은 불륜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은 서열상 여건상 왕위 계승에 나설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솔로몬에게 다윗의 왕위를 넘겨 주셨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은 개인이나 국가를 바로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런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짓고 그 집앞에 큰 놋기둥을 세우고 이름을 야긴’ ‘보아스라 지었습니다. 이는 야긴의 하나님, 보아스의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함이고, 백성들에게 야긴의 하나님 보아스의 하나님 이름을 새겨 주기 위한 집이라는 의미였습니다실제 야긴의 하나님 보아스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던 솔로몬 시대 이스라엘이 가장 강력한 통일 국가를 구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기에 솔로몬은 이 사실을 잠시 망각했습니다. 그의 생에 최 절정기에 자신이 이스라엘을 세운양, 자기 능력으로 강력한 나라를 세운 듯, 착각하고 교만해 진 것입니다. 처첩이 일천이 될 정도로 성적으로 타락했고, 우상 산당을 세울 만큼 영적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때 내적 분열과 외적 도전으로 그의 왕국은 약화되었고, 그의 사후 그의 나라는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야긴의 하나님 보아스의 하나님을 겸손히 믿을 때 그 인간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는 바로 세워졌고, 야긴의 하나님과 보아스의 하나님을 망각했을 때 그 인간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는 분열과 대립, 혼돈과 타락 속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두 기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 기둥들의 임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받치는 것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을 받치는 기둥들은 많이 있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받치는 기둥은 바로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놋기둥이었습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은 유지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솔로몬이 성전 앞에 세웠던 두 기둥입니다.

 

      요한계시록 312절에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당시 빌라델비아교회는 결코 큰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려운 환란 가운데서도 믿음을 잘 지켰을 때 주님은 빌라델비아교회에게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는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여러 문제에 휩싸여 그 기둥들이 기울어지고 무너지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기둥을 세우고 그것을 의지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과 물질과 조직 같은 엉뚱한 기둥을 세우고 그것을 의지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기둥이 되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것들입니다. 기둥이 무너진다는 것은 대형 사고를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거나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보이지 않는 성전의 두 기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두 기둥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두 기둥이야말로 야긴이며 보아스입니다.

 

     2019년을 시작하며 우리나라는 숱한 국가적 난제를 안고 출발하고 있습니다. 날로 심화되는 청년실업, 갈수록 추락하는 출산율과 경제, 모럴 해저드 수준에 빠져 드는 청와대와 공직 기강, 좌우 이념 대립으로 분열되어 가는 사회 모습등입니다. 그런데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강대국들은 호시탐탐 우리나라를 위협하고 경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절망 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야긴의 하나님, 보아스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민족과 나라와 일터를 바로 세우실 분은 하나님 뿐이시고 그럴 능력이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확신합니다.

 

     제가 태어난 1952년만 해도 우리나라는 6.25 동란이 막 끝나는 때라 보리고개’ ‘초근목피라는 말을 일상으로 듣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오천년 가난의 굴레를 벗겨 주셨습니다. 세계에 유래를 찾아 보기 힘들만큼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단시간내에 경제 대국 대열에 올려 놓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G-20국 일원이 되게 하셨고, 수출 6천억 달라 달성하는 경제 대국이 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이는 이땅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소수의 백성들을 인하여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이 나라를 일으켜 세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럴 능력이 하나님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천안함 폭침, 강화도 포격, 핵과 미사일 위협 앞에 우리가 총체적 위기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이는 축복의 날 우리가 야긴의 하나님 보아스의 하나님을 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안락과 번영이 마치 우리 자신이 구축한 것인양,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교만 했던 것입니다. 새해 첫주 주일입니다. 우리가 이런 자만과 교만을 회개함으로 2019년을 맞아야 겠습니다. 우리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신앙의 기초로 삼아야 겠습니다. 또 겸손히 하나님이 세우신다 야긴의 하나님!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 보아스의 하나님! 두 믿음의 기둥을 우뚝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때 우리 일터 와 가정 교회, 사회 국가 나라를 하나님이 바로 세워 주실줄 믿습니다. 교회가 사람들 보기에는 약한 것 같아도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 근원을 하나님께 둔 까닭입니다.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하여 특별한 장소이며 고전 6:19절에 우리 몸도 지성소라 불리 웁니다.

 

      무너진 캠퍼스 무너진 성경공부 무너진 조국의 교회를 야긴의 하나님이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럴 능력이 보아스의 하나님께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만 좇아가며 성령님만 의지하는 2019년이 됩시다. 야긴의 하나님 보아스의 하나님! 그런 믿음을 회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성전으로 다시 세워 주시도록 긍휼을 구합시다. 성령의 전인 우리를 통로 삼아 하나님이 우리 일터와 캠퍼스 교회와 나라를 바로 세워 주시길 기도합니다. 새해 하나님이 세워주신다는 야긴의 하나님 그런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보아스의 하나님을 체험해 나가길 기도합니다. 2019년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야긴의 하나님이 다시 세워 주시고, 능력 주 보아스의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능력을 다 체험 하여 간증이 넘치는 한해를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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