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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베드로를 취하신 예수님( 누가복음 5:1-11)
03/10/201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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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1일


                                             시몬 베드로를 취하신 예수님


말씀: 누가복음 5:1-11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부 베드로를 부르신’ 사건입니다. 이는 평범한 일처럼 보이지만 인류역사에 위대한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부르심을 통해 한 어부를 어떤 사람으로 변화 시키셨으며 그에게 두신 뜻이 어떠했습니까?


1. ‘잡은 것이 없지마는’ (5b)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러자 무리가 ‘게네사렛’ 호숫가로 꾸역꾸역 몰려들어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몰려든 무리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호숫가에 배 두척이 있는 것을 보셧습니다. 그 배는 시몬과 그의 동업자 야고보와 요한의 배였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어부로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어디에 그물을 던지면 고기가 잘 잡힌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물을 던지고 또 던져도 그물을 끌어올리면 빈 그물 뿐이었습니다. 그의 그믈은 빈그믈이고 그의 배는 빈배 였습니다. 


     그날 시몬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5b절에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 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이 고백을 볼때 지금 시몬은 어떤 상황 속에 처해 있는 것일까요? “ 잡은 것이 없지마는 ” 이 말은 빈그믈 인생, 텅빈 배의 인생이었다는 말입니다. 어부 로써 시몬은 그날 얼마나 깊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을까요? 그가 안일하고 게을러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 밤이 새도록 수고 ” 하였습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수고하며 ‘애 썼던 것’ 에 비하면 ‘잡은 것이 없지마는’ 너무나 ‘허무’한 결과였습니다. 전도서 1:2절은 말씀합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지금 시몬이 고기 잡고 있는 것은 ‘취미’ 생활이 아니죠? 취미였다면 고기를 많이 잡으면 좋고 안 잡혀도 그만이죠? 그러나 지금 시몬은 게네사렛 호수라는 직장에서 어부라는 직업으로 고기를 잡고 있는 것 입니다. ‘프로’ 어부 였습니다. 생계를 책임 지기 위해 지금 고기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그의 삶은 어떠한 것입니까? 5b 절에 ‘잡은 것이 없지마는’ 이 말은 한 가장 으로써 실패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절망’과 ‘좌절’ 뿐이었습니다.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이런 절망과 좌절이 오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간의 모습은 ‘절망’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났기 때문에 그 삶에는 어떤 희망도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타락한 인생은 절망 중에 태어나 절망 중에 살다 절망 중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망하고 좌절한 그를 예수님은 외면하지 않으셧습니다. 그에게 관심 갖고 다가오사 어떻게 도우십니까?


2. ‘말씀에 의지하여’ (5b-7)


    그때 어부들은 두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빈 그믈’ 이었습니다. 내 힘으로 몸부림 쳐도 주님의 도우심 없이 우리 인간의 노력은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주님께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5:6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예수님은 시몬의 배에 오르시며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셧습니다. 거기 빈 배가 두 척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베드로의 배를 선택하셨을까? 이를 ‘하나님의 주권’(the sovereign of God) 다른 말로 ‘값없는 은혜’(priceless grace)라고 부릅니다. 주님이 내 배에 오셔서 나를 부르시는 것은 ‘우연’이나 그냥 일어난 해프닝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부르심’(calling)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배에 앉으사 무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은 바로 우리가 절망의 끝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손을 놨을 그 때인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은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시몬은 배에서 그믈을 씻고 있었지만 귀는 어느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시몬에게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십니까? 4b절에 “ 깊은데로 가서 그믈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 지금 예수님이 주신 말씀은 시몬 입장에서 순종하기 어려웠습니다. 그가 처한 현실이 어떠했습니까? 밤이 새도록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또 2절에 ‘그믈까지’ 다 씻어 놓았습니다. 육신의 형편은 뼈마디가 쑤시고 온몸이 다 피곤합니다. 밤새도록 그믈을 내리고 끌어 올리느라 눈꺼플은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다시 그믈을 내리라니!’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몬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5b 절을 보십시오. “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 말씀에 의지하겠다고 결단했습니다. 6a절에 보면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즉시 손발을 움직였습니다. 그러자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믈을 끌어 올릴때 그 묵직한 손맛을 본 시몬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짜릿하고 환희와 감격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이따만한 고기’! ‘팔뚝만한 고기’! 가 그믈에서 팔딱팔딱 퍼덕거렸습니다. ‘와~~~ ’ 감탄이 절로 터져나왔습니다. 시몬이 예수님 을 주인으로 모셔들이고 주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했습니다. 그때 시몬이 놀라운 체험 말씀으로 ‘실패를 만회한 것’ 입니다. ‘절망’과 ‘좌절’이 물러가고 ‘희망’과 ‘환희’가 넘친 것입니다. 예수님 입에서 나온 말씀 ‘로고스’가 시몬에게 생생하게 체험된 말씀 ‘레마’ 가 된 것입니다.


    시몬은 어느 정도 많이 잡았습니까? 7절에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동료들 배 두배에 가득 잠길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잡았습니다. 만선이었습니다. 9,10절에 보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세배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습니다. 빈 배 인생이었는데,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니 그 배가 가득차고 넘쳐 옆에 있는 배까지 두 배가 가득 잘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히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990년 9월 13일 인하대 공대 석사를 마친 Hwang Don Youn 선교사는 항가리 부다페스트를 경유하여 모스크바 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때는 아직 대한민국과 소련이 정식 국교를 맺고 있지 않은 때였습니다. 겨우 삼일 비쟈를 얻어 모스크바 대학에 들어가 교수를 만나 극적으로 모스크바 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허가서를 따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러시아 선교 문이 열리고 모스크바 대학에 첫발을 떼어 놓게 되었습니다. 그는 떠듬 거리는 러시아어와 어눌한 영어를 섞어 쓰며 모스크바 대학 물리대학 박사 과정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막 고르바초프가 사람 냄새가 나는 사회주의 ‘개혁개방’을 외치던 시대였지만 아무도 복음을 알려 주는 이가 없던 시대였습니다. 얼마전 스탈린 시대때 2천만명이 숙청이라는 이름으로 죽었던 살벌한 붉은 혁명의 시대였습니다.

 

   당시 쏘련은 막 사회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사상의 공백기 였습니다. 그러자 생수같은 복음에 목말라 있던 소련 대학생들이 마음 문을 열고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 주 예수를 영접하고 복음을 쏙쏙 받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수많은 모스크바 대학생들이 성경을 공부하며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 진리에 눈뜨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청주에서도 복음으로 준비된 강스테반 강마리아 선교사가 모스크바를 경유해서 발틱 삼국 리투아니아에 선교사로 건너가 수많은 대학생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황돈연 선교사는 대한민국 출신 모스크바 대학 1호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삼성에 취직하여 최고 연봉을 받고 잠시 근무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블라디보스톡에 한국인 학교 설립 개척자로 문을 여시자 즉시 순종해서 다시 삼성에 사표를 쓰고 블라디 보스톡 선교사로 나아가 현재 수많은 블라디 보스톡 젊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충성하고 계십니다.


     제가 제1회 러시아 국제 수양회에 초청받아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해보니 낮인데도 국제 공항 조명이 어두컴컴했습니다. 총을 찬 군인들 사이로 빠져 나오는데 긴장이 되고 식은 땀이 흘렀습니다. 지금은 자유로웠지만 당시만 해도 6.25때 쏘련 탱크가 밀고 들어와 우리나라 군인이 얼마나 많이 죽었습니까?

 

     그렇게 수양회에 참석해 보니 수백명의 대학생들이 참석하여 말씀의 은혜를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에수님을 영접한 러시아 여대생들이 ♬ 예수 나의 귀한그 이름 예수~ 언제나 기도 들~으사 오 예수 나의 손 잡아 주시는 가장 귀한 귀한 그이름♬ 찬송을 러시아 어로 부르는데 천상의 합창처럼 아름다웠습니다. 할렐루야! 한 젊은이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들이고 그분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니 두배 세배가 아니라 수백배 고기가 가득 잡혔습니다. 수양관이 만선이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날 고기잡이는 대박이었죠? 여기서 영적인 깊은 세계로 들어 가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상식과 경험에 기초한 생각을 버리고 우리 내면을 빈배로 만드는 것입니다. 대신 주님을 주인으로 모셔들이고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주님께 내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를 맡긴다는 것은 모험이 뒤따르죠? 그러나 헤엄을 배우기 위해서는 물에 자기를 맡겨야 하듯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내 인생을 주님께 맡겨야 깊은 영적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잡고 주님께 맡길 때 상식과 경험을 뛰어 넘어 무한한 영적 세계를 헤엄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말씀이라도 말씀에 의지하여 나를 주께 맡김으로 기적을 체험하는 복을 누리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8-11)


    주님 ‘말씀에 의지하여’ 주님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시몬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8절에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 거울앞에 설때 나를 보듯 베드로가 주님앞에 설때 비로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죄인 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 시몬이 왜 죄인입니까? 이 죄는 도적적 윤리적인 죄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임하실 때 깨닫게 되는 ‘죄의 본질’ 입니다. 요한복음 16:8,9절에 “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 성령이 임하실 때 깨달아 지는 죄의 본질은 예수를 믿지 않는 거 ‘불신’ 이 죄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을때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만나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수의 모든 고기를 지으신 분이시며, 모든 고기를 그분 뜻대로 주관하시는 만물의 ‘창조주’ 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인 자기는 청지기 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 믿지 않고 살아온 ‘불신이 바로 죄 구나’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시편 51:1,2,11절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바울의 고백입니다. 디모데전서 1:15절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주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주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시몬에게 어떤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까? 10b절에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이르시되 무서워 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 무서워 하지 말라 ” 이 말씀은 메시야가 죄인에게 주시는 ‘사죄의 음성’ 이었습니다. 그간 창조주 하나님을 없이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아온 시몬의 모든 죄를 사하시는 ‘용서의 음성’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죄와 동시에 시몬에게 새 인생의 목적과 사명까지 주셨습니다. “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고기 잡는 일은 산 고기를 죽이는 일이지만 사람을 낚는 일은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값지며 아름다운일입니다. 이사야 52:7절에 “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는 믿지 않는 친구 5명을 전도하기 위해 부단히 기도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잘 아는 친구들이기에 전도할 때마다 비아냥과 조롱 당하기 일쑤 였습니다. 그러나 뮬러는 전도하는 번거로움과 전도 실패에서 오는 두려움에 아랑곳하지 않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에게 때를 잃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4명의 친구는 하나님께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1명은 무려 50년 이상을 전도했으나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장례식날 4명 친구로 부터 뮬러가 죽을 때까지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구원받기를 원했다는 말을 듣고 감동하여 마침내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합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동스럽습니까? 전도는 인간이 하는 것이지만 전도의 주권은 하나님께서 갖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 해야 됩니다. 그때 성령의 은혜가 임하면 그 영혼을 취하는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11절 “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평범한 어부들이 긴네사렛 호숫가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영접하고 주님을 배우고 따르는 제자의 삶을 출발한 것입니다. ♬ 갈릴리 호수 가에서 주님은 시몬을 부르셨네 ♬ 오순절 성령을 받고 땅끝까지 나가 주 예수와 복음을 전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인류의 스승이요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람을 취하는 삶’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살리는 길입니다. 죄로 지옥에 떨어질 인생들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갈 제자로 키우는 일이야 말로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한번 뿐인 인생입니다. 빈 배 인생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여 복 받은 인생이 되시고, 주 앞에 가는 그 날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영혼 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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