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ape
아가폐(agaape)
한국 블로거

Blog Open 03.26.2013

전체     95566
오늘방문     70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665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달력
 
한쪽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예수님( 마가복음 3:1-6 )
03/03/2018 23:02
조회  934   |  추천   0   |  스크랩   0
IP 1.xx.xx.204

2018년 3월 4일


                                       한쪽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예수님


말씀: 마가복음 3:1-6


       본문에는 ‘한쪽 손 마른 자’가 나옵니다. 마가복음 2:23-28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장하여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그때 안식일 논쟁이 일어 났습니다. 또 다른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6:6절에는 그가 “오른손 마른 사람” 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사람은 손으로 많은 일을 합니다. 손으로 글도 쓰고 위대한 예술 작품도 만들고 문자도 전송합니다. 그런데 한쪽 손 마른 사람은 더군다나 오른쪽 손이 돌돌 말렸으니, 얼마나 ‘불편’ 했을까요? 예수님은 한쪽 손이 말라 콤플렉스가 있고 불편한 사람을 돕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은 한쪽 손 마른 자를 고쳐 주시고자 하시는 것일까요? 이를 통하여 예수님이 말씀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들어가신 회당장 안에 어떤 사람들이 함께 있었습니까? 2절에 “ 예수를 고발하려 하는 사람들” 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6절에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예수님이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한쪽 손마른 사람을 고치시면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안식일 법을 어긴 죄’로 고발하고자 함이요, 고치시지 않으면 ‘사랑의 구주가’ 아니다 힐난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법조문을 내세워 송사할 구실을 만들고 꼬투리 잡으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6절에 ‘예수를 죽이고자’ 의논 하였습니다. 바래새인들은 겉은 종교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내면은 한쪽 손마른 자에 대한 사랑이 메마른자요, 약자를 이용해 예수님 고발해서 죽이려는 미끼로 쓰려한 위선자였습니다.

그러니 지금 예수님이 들어가신 회당은 말씀을 나누는 은혜로운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살벌했습니다. 이런 형편 속에서 예수님은 고발하려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묻습니까?


1.  핵심 가치를 물으시는 예수님


    3절에 “한 가운데 일어서라” 누가복음 6:8절에는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 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이라고 나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잡아 죽일 꼬투리를 잡고자 하는 것을 다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다 주시하는 상황에서도 한쪽 손 마른 자에게 “ 한 가운데 일어서라 ” 명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긴장하며 주시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무엇을 물었습니까? 마태복음 12:10절에 “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안식일 법’을 걸고 넘어졌습니다. 예수님 지금 불법을 행하는 거죠? 라고 추궁한 것입니다. 법조문을 걸고 넘어져 ‘고발 하려는 사람’ 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질문을 되물으십니까? 4절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마태복음 12:11절에 추가된 질문입니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 내지 않겠느냐?” 예수님은 왜 안식일 법을 어기느냐는 사람들에게 ‘법조문이냐 생명이냐?’ 핵심가치를 물으셨습니다.


    안식일 날 자기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그 양을 구해 낼 것입니다. 법조문 보다 생명이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질문은 ‘법의 정신’을 잃고, 법조문에 얽매인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율법적 관점을 핵심가치로 깨트리신 것입니다. 동시에 ‘참 안식일은 어떤 날인가?’ 가르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2:12절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한갖 미물 짐승도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건져 내 살려 주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천하보다 귀한 사람은 더 말할 것 없습니다. 짐승도 구덩이에서 건져내어 살리는 것이 동물 복지요 자비라면, 영혼의 소유자 사람은 더욱 그렇게 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참 뜻이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3:16절에 “그러면 열여덟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18년 동안 귀신에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펴지 못하는 한 여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때 회당장이 안식일에 예수님이 병을 고쳤다고 비난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외식하는 자들아’ 책망하셨습니다. “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 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목적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사단의 매임에서 풀어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 곧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하시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것은 사탄에게 매여 있던 ‘아브라함의 자손을 풀어 주는데 있다’ 는 것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바로 이 일에 있었고, 예수님 자신 또한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그 일을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그래서 참 안식 속에 들어온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공경하게 하십니다(요 5:23). 마가복음 2:27절에 “또 이르시되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예수님은 ‘참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날임을 알려 주신것입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핵심 가치는 안식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려 하는 일이 사람을 올무에 가두는 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안식일이라 해도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구덩이에 빠진 짐승은 건져내는 것이 바로 안식일의 바른 정신입니다.


   이때 바리새인들 반응이 어떠합니까? 4b절 ”그들이 잠잠하거늘” 왜 그들이 잠잠했을까요? 어느 것이 옳은지 몰라서 대답 못 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잠잠한 까닭은 안식일 준수와 관련한 잘못을 인정하고 시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동안 그들이 가르쳐왔던 안식일 규정을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자니 자부심이 무너지고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진리는 밝히 드러났는데 받아들일 수 없어 잠잠한 것입니다. 이로서 그들은 ‘진리의 사람이 아니다’ 함을 스스로 드러낸 것입니다. 그들은 낡은 전통과 규례 고수를 진리보다 앞세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낡은 가죽 부대’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탄식 하셨습니까? 5a절에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완악함 때문이었습니다. 무지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면, 완악함은 깨달은 하나님 진리의 핵심가치 조차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전 삶을 고집하며 곁가지만 붙잡고 늘어지는 완악함 때문에 진리의 핵심가치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진리의 핵심가치는 안식일이 아니라 사람이며, 안식일의 핵심가치는 법조문이 아니라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 생활도 곁가지가 아니라 핵심가치를 붙들고 실천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2. 불편한 문제를 가진 자를 받아 주신 예수님


   지금 회당장 분위기는 살벌합니다. 그러면 ‘오늘만 날인가?’ 하고 손마른 자를 무시하고 외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주시하는 회당장안에서 손마른 사람을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한 가운데 일어서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마다 불편한 문제들을 다 가지고 있죠?


    겉은 멀쩡해도 속으로 들어가 보면 남모르는 자기만이 알고 있는 불편함의 문제를  다 가지고 있죠?

어떤 이는 외모 콤플렉스로,  혹은 사랑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이도 있습니다. 한나는 남편 사랑은 더 받았으니 자식을 낳지 목하는 콤플렉스로 한맺힌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 성경 사무엘서에 나옵니다. 어떤 이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콤플렉스도 있습니다. 어떤이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공항장애를 겪는 이도 있습니다. 혹은 가정 환경 배경 때문에 컴플레스를 겪는 이도 있습니다.

이때 바리새인들은 한쪽 손 마른 사람의 콤플렉스는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고 무시했습니다. 한쪽 손마른 사람처럼 장애를 안고 불편하게 살아 가는 자를 볼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리새인 처럼 무시는 하지 않더라도 혹 외면하지는 않았는지요? 


    그러나 우리주 예수님은 한쪽 손 마른 자를 외면하지 않으셧습니다. 관심을 갖고 그를 회당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영접해 주시고 받아 주셧습니다. 이 예수님은 헤세드 인자와 긍휼이 풍성하신 구세주 이십니다.


3. 한 손 마른 자를 살려주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안식일 법을 어긴다 주장하는 바리새인들의 비판에 조금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대신 예수님은 한편 손 마른 자에게 어떤 말씀을 주십니까? 5b절에 “네 손을 내밀라” 명 하셨습니다. '내밀라'는 뜻은 “오그라든 네 손을 펴라” 는 말씀입니다. 콤플렉스로 돌돌 말린 ‘심령을 활짝 펴 믿음으로 내 밀라’ 는 말씀입니다. 그가 “내밀자” 곧 “그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니 이전처럼 성하여 진 것입니다. 고발하려는 자들의 주시 속에서 예수님은 당당히 한 병든 영혼을 치유 하셨습니다.


   사 59:1~3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의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는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예레미야 애가 3:40~41절에는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말씀하십니다. 여기 ‘손을 들자’는 말은 손이 한 일을 회개 하자는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손을 들어 선악과를 따먹었죠? 불순종의 손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담의 후손인 우리도 손이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것을 회개해야 마땅합니다. 약 4:8절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하셨습니다. 이 ‘병든 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오그라진 손’을 주께 내밀고 치료함을 받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우리 오그라든 손을 주께 내밀어 치료를 받으면 주님의 은혜와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 회복 됩니다. 첫 사랑을 회복 하게 됩니다. 주의 의로운 병기로 회복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긍휼과 인자가 풍성하신 구주이십니다. 안식일이라도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제한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2:12b절에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안식일에 예수님이 한쪽 손 마른 자를 방관하지 않고 고쳐 주시는 것이 선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죄와 질병으로 부터 구원하사 참 안식 주셨습니다.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죄와 죽음, 사단의 세력에서 건져 ‘참 안식을 누리게 하는 것’이 안식일의 본질입니다.


    캐나다에 Maud Lewis 라는 실존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애칭은 Maudie 입니다. 1903-1970 년까지 산 그녀는 어릴때는 기형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자라며 관절염을 심하게 앓아 뒤뚱뒤뚱 걷고 행동이 불편하며 오른 손이 돌돌 말렸습니다. 오빠는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아버지가 남겨준 얼마 안되는 유산마져 처분해 가로채 갔습니다. 그녀는 친척에 의해 길러집니다. 1928년 24세때 그녀는 딸을 낳았는데, 식구들은 아이도 기형이라 속이고 다른 집에 입양을 보냈습니다. 숙모에 얹혀 살던 그녀는 ‘가정부 구함’ 이란 광고를 보고 생선 행상 Everett Lewis 집에 갔다가 그녀 나이 34세때, Everett Lewis 와 결혼 합니다. 그들은 Marshalltown 에 잠자는 다락 방이 있는 에버렛의 방 1개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남편은 거칠고 기형인 마우디를 무시하며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림 그리는 것은 허용합니다. Maud Lewis 는 페인트로 집 벽과 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엽서 그림을 그려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녀 작품은 색깔이 화려하고 따뜻하며 밝고 섬세한게 특징입니다. 그녀는 이런 말을 많이 했습니다. ‘내인생 전부가 액자속에 있어요’ 입소문이 나서 미 대통령까지 그녀 그림을 구매할 정도록 ‘Naive 화가’로 명성을 얻습니다. T.V나 신문에 소개 되고 유명세를 타자 친척이 찾아와 입양간 딸은 실제 장애우가 아니고 양 아빠 와 행복하게 산다는 고백을 듣습니다. 멀리서 자기 딸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지켜본 뒤 되돌아와 ‘자기는 많이 사랑받은 사람’이란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이 감동적인 실화 스토리는 장애인인 에이슬링 월시 감독에 의해 샐리 호킨스와 에단 호크 주연으로 영화화 되어 원제가 Maudi, My Love 였는데, 35회 벤쿠버 국제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고, 2017년 전주 국제 영화제 상영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내사랑” 이란 제목으로 상영된바 있습니다. 우리는 장애우를 볼때 불행할 것이란 편견을 갖고 무시하기 쉽죠? 그러나 이 영화의 실존인물 Maud Lewis 는 근육통과 관절염으로 손이 심히 기형이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살려 그림 그리는 일로이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고 수없이 붓을 들어 자기 마음에 있는 따뜻한 그림을 그려 다른 사람들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장애우에 대한 바리새인의 시각을 에수님 시각으로 고쳐야 합니다. 장애우도 똑같이 ‘하나님 형상’의 소유자입니다. 똑같이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똑같이 하나님께 사랑받을 자이고 우리들에게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조금 어느 한구석이 불편할 뿐입니다. 장애우도 하나님을 만나 오그라든 손을 펼때 얼마든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나누어 줄수 있는 축복의 샘터입니다.


     3월 9-18일까지 평창 패럴림픽이 개최되죠?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장애우들의 올림픽도 응원하며 격려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더나가 고침 받은 우리는 이제 ‘오그라든 손’을 펴서 ‘선한 일’과 ‘주의 일’에 힘쓰는 사람이 되것입니다.

이를 본 바리새인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6절에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평소 헤롯당과 바리새인들은 상극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이는데는 함께 손을 잡았습니다. 옛 형식을 고집하는 완악함 때문에 마귀의 앞잡이가 된 것입니다. 딤후 3:5절은 말씀하십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예수님은 자기를 함정에 빠트려 죽이려하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한쪽 손마른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자기 생명을 걸고 한쪽 손마른 콤플렉스와 불편한게 많은 장애우를 고쳐 주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요한복음 15:13절에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핵심 가치를 붙들고 메시야의 목숨을 걸고 한쪽 손마른 사람을 치유해 주셧습니다. 예수님은 진정 사랑과 긍휼 헤세드가 풍성하신 주세주이십니다. 오늘날 삼가 경계할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법 조문에 얽매이기보다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성경의 핵심 가치인 ‘선을 행하며’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쓰는 자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을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이 블로그의 인기글

한쪽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예수님( 마가복음 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