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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상의 멜로디와 창조주의 심포니”(누가복음 17:11-19절)
02/24/2018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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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5일

 

                                          “ 천상의 멜로디와 창조주의 심포니  ”


말씀: 누가복음 17:11-19절

     

         오늘 본문은 4 복음서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중 하나인 ‘나병환자 치유 이야기’입니다.  본문에 ‘예수님’과 ‘예배자’와 짧은 대화 ‘3 구절’이 나옵니다. 이 짧은 대화를 오페라로 작곡한다면 작곡가는 어떻게 '천상의 멜로디와 창조주의 심포니'로 구성하여  어떻게 예배에 성공 할수 있을까요? 


    예배에 성공하려면

1) 시작송 ‘간구의 노래 ’ 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은 나병환자 열명을 만났습니다. 열명 나병환자들은 멀리 서서 소리 높여 무엇이라 노래 했습니까? 13b절을 보십시오. “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10 명이 좋은 하모니를 이루어 주께 '간구의 찬양'을 올려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소리 높인 것은 예수님 바로 앞이 아니라  ‘멀리 서서’ 였습니다. “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왜 그들은 ‘꽤’ 멀리 떨어져서 주께 소리를 높였을까요?  자신들의 병 때문에 주앞에 서기 두려웠던 것입니다.  ‘나병’은  피부 감각이 마비돼 버리는 악성 피부병입니다. 심하면 코나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 흉측하게 일그러지는 천형입니다. 그래서 나병 환자는 레위기 13:45,46절에 보면 “ 나병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 외쳐야 하며 ‘진영’ ‘밖에’ 격리되어 살았습니다.


     작년 사역자 수양회때 소록도를 방문하며 ‘수탄장’이라는 곳을 가보았습니다. 이곳은 과거 직원지대와 병사 지대로 구분하는 경계지 였습니다. 병원에서는 감염을 우려하여 환자 자녀들을 직원지대에 있는 보육소에서 생활하게 했고, 병사지대에 사는 부모와는 이 경계지대 도로에서 한달에 한번 면회를 허용했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도로 양옆으로 갈라선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야 했던 이 장소를 환자들은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나병환자들은 이렇게 격리되어 한많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따라서 여기 멀찍이 떨어져 예수님을 부른 열명의 나병환자도 자기가 얼마나 비참한 자인가 잘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긍휼을 간구’ 를 노래한 것입니다. 10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입 맞추어 소리 높여 노래 부릅니다.♬주-여 우리 무-리를 불-쌍하게 여-기사♬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를 간구의 노래  (라틴어 찬양으로 “kyrie eleison ”) 라 부릅니다. 고전적인 예배에서 이 노래는 항상 예배의 앞 부분에 놓입니다.


    주님은 누구의 노래를 받으십니까? 자기를 ‘의롭다’ 여긴 바리새인들의 기도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셧습니다. 반면 자기 비참함을 깨닫고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가슴을 쥐어 뜯으며 애통히 회개하는 ‘세리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누가 ‘참 예배자’ 일까요? 자기 의를 내세우는 자가 아닙니다. 자기 죄와 불의와 허물로 영혼이 썩어 문들어지는 비참한 죄인임을 깨닫는자! 그래서 회개하며 부르짖으며 간구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자입니다. “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우리 예배가 이런 ‘간구의 노래’ 로 시작 되길 축원합니다.

   

     예배에 성공하려면

2) 화답송 ‘영광의 노래’입니다.


     예수께서 나환자들의 부르짖는 노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이르셨습니까? 14a절을 보십시오. “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치유를 간구하는 ‘예배자’와 ‘말씀을 선포하는 이’ 사이가 아직 멉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은 멀리서 간절한 심정으로 노래하는 예배자들을 보시고 “ 예배자들이여! 제사장들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 ” 노래 하십니다. 당시 나병 환자들은 자신들의 병이 완치되었을 때에만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고 자신이 살던 마을과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치료행위도 하지 않으시고  이미 다 치료된것 처럼 말씀하십니다. “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포인트가 무엇이죠?  주님은 누구에게 보이라 하십니가? ‘제사장들’이라 하셨습니다. 인간 ‘제사장들’ 만이 아니라 참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는 말씀입니다. 참된 제사장이 누구이십니까? 히브리서 4:14절에 “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라 ”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인간 제사장에게도 몸을 보여야 하겠으나... 참된 큰 대 제사장 예수님을 통해 치료 받았음을 믿고 감사하러 예수님에게 ‘돌아 오라’는 말입니다. 멀리 있던 그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즉 큰 대 제사장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오라’ 는 말입니다.


     당시 나병환자들은 병이 완치되었을 때에만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어떻게 화답했습니까? 15b절을 보십시오.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였습니다. 함께 간구송 을 함께 불렀던 사람들이 치료 끝나자  다 사라졌습니다. 주님은 주님께 가까이 나온 한사람 사마리아 인을 주목하십니다. 그는 주님의 영광을 봤습니다. 그래서 찬양합니다.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 


     불만이 큰 사람은  내면에 감사의 마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이 감사의 조건을 채워나가는 것에만 몰두한 채 살기 때문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늘 '감사하는 삶'으로 화답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아키바 랍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밤에 어느 마을에 도착했으나 누구도 받아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좋은 것 주시려 하시니 감사합니다” 감사 기도하고 산 언덕 위에서 잠을 잤어요. 잠이 안와 성경을 읽고자 등불을 켰는데 바람에 등불이 꺼졌어요. 그래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잠 자려 하는데 여우소리에 나귀가 놀라 도망 가자 닭도 날라 가버렸어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남은 것은 토라 성경 한권뿐이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하고 깊은 잠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침에 깨어 보니 지난밤에 도둑떼가 습격해서 마을 사람을 다 죽이고 있는 것 다 빼앗아 갔어요. 만약 등불이 켜있었으면 자기도 잡혔을 것이고. 나귀나 닭이 울어 댔으면 자기도 붙잡혀 죽었을 겁니다.  불 꺼진 것, 나귀, 수탉 도망 간것, 다 감사하니까, 감사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성도는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는 겁니다.


   여기 사마리아 사람은 어떻게 감사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예수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자기가 엎드릴 수 있는 대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가 경배의 대상을 만났다는 고백입니다. 데살로니가 5:18절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주님을 만나면 모든게 감사입니다.  '수도 꼭지만 열면 물이 나오는 것' 당연하게 생각하죠? 그러나 동파되어 수돗물이 안나오면 얼마나 불편합니까? 지난주 김동열집사님이 수고하여 수도가 잘 나옵니다. 그러자 조진숙 사모님이 ‘물이 나오니 천국 같애요’ 말하였습니다. 전에 반주기로 찬양할 때 박자 음정이 안맞아 얼마나 곤혹스러웠나요? 그런데 주께서 좋은 반주자와 충성된 싱어들을 보내주셔서 영혼이 호흡하며 찬양하니 얼마나 영광이 됩니까? 재정부도 주일 남아서 계산 다하고 섬기고, 매주 식사 교제하는 것도 뒤에서 봉사로 섬기는 손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인생을 살다보면 병이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시련과 환난을 당하여 예수님께 나와 예배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병이니 시련이나 환난까지도 감사한 것입니다. 감사로 찬양의 제사를 드릴때 참된 의미에서 ‘찬양’과 ‘예배’의 삶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영광송(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감사 찬양은 하모니가 아니라   오직  ‘독창’ 이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제사장’은 ‘예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또 진정한 제사장 예수님께 가까이 나가면 자기 더럽고 추한 나병을 깨끗이 치유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예수님께 가까이 나와 발아래 엎드려 복종하며 믿음으로 나음 받은 것을 ‘감사’로 화답 한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된 것을 기뻐 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해 주신 주님 발 앞에 엎드리는 법을 배우며 그분께 감사 찬송하며 ‘영광의 노래’로 화답하는 복된 성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예배의 성공자에게

3) “ 이신칭의 응답 송 ”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의 감사 노래를 들으시고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 하시고 그에게 어떤 놀라운 선포를 하십니까? “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

 

       사도 바울은 이를 로마서 1:17절에서 “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이신칭의) 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구약 ‘하박국’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한 것이죠?  “이신칭의”는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인간에게 들려 주는 노래’ 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감사하러 나온 ‘나병환자’에게 들려 주신 노래입니다. 예수님께 나와 육이 치유 받고 문제 해결 받은 자가 총 10명 이었습니다. 그런데 영과 육이 온전히 치료되었다고 참된 제사장에게 선언 받고 의롭다 인정받은 사람은 주께 가까이 와서 ‘찬양하기’ 를 그치지 않았던 오직 한명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10명을 치유하시면서 어떤 기대를 하셨을까요?  ‘간구의 노래’를 함께 부르던 그들이 다시 함께 돌아와서 치유를 주신 ‘주께 영광’ 돌리고, 주께 치유 받았음을 ‘감사 찬양’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 43:21 절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고 다 온전한 ‘회복의 선언’을 받는 것입니다.


   허나 아쉽게도 '육신의 나병'에서 나음 받은 9명은 노래하러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나음 받은 기쁨에 도취되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음 주신 주께 영광 돌리고 나음 받은 것을 감사 찬양하기 위해 나온 자는 온전한 하모니가 아니라 1명 뿐이었습니다. 


    ‘온전한 하모니’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교회는 서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음받은 모두 주님께 가까이 나아와, 하나님께 '노래하기를 그치지 않는 것' 입니다. 노래하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을 묵상하며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노래를  곡조가 있는 기도“ 찬양 ” 또 하나님께 자기 형편을 아뢰는 '기도' 라 부릅니다. 이렇게 주님의 몸된 교회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나음 주신 주께 영광 돌리고 나음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참된 찬양 참된 예배 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홀로 ‘감사의 노래’ 를 부를 이에게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신 칭의를 선포하시며 응답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서에 나오는 예배자가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찬송 ‘ 천상의 하모니 ’ 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교회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나누고, 천상의 하모니를 이루어 가라...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이야기 하십니다. “너희 믿음이 너희를 구원하였다.” 그 아름다운 주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천상의 하모니’를 이루기 원하십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감사하며 함께 양육 받으며 적용하기를 원합니다. ‘간구의 노래’를 불렀다면... 영광의 노래(soli deo gloria)도 함께 합창하기 원합니다.

♬주님께 영광을! 주님께 감사를! 주님께 찬양을! ♬ 할렐루야~~♬


   예배는 기도 찬송 봉헌 과 말씀 선포로 구성됩니다. 그중 찬송은 “간구의 노래”로 시작해서 “영광의 노래” 로 화답하며 주께서 “ 이신칭의로 응답 ” 하는 노래로 하모니를 이룹니다. 예배당에서 예배 드릴때 한 사람이 이를 적용을 하면서 은혜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도가 함께 이를 이루어 가는 것은 더 아름답습니다. 다같이 감사와 찬양과 영광이 함께 하모니를 이룰때 그 아름다움은 비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지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찬송하는 백성들입니다.  그렇게 예배 드릴때 우리는 ‘교회의 교회됨’ 에 따르는 즐거움과 축복이 무엇인지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천상의 찬송을 주께 드리는 복된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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