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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러 오신 예수님 ( 마가복음 10:32-45 )
10/11/2017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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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8일

                                                    섬기러 오신 예수님


말씀: 마가복음 10:32-45


         예수님은 상반되는 두 가지가 만나 하나의 진리를 만들어 내는 ‘역설’을 통해 성경 핵심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성경에는 역설적인 가르침이 많이 나옵니다. 눅 9:24절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10:31절에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자가 많으니라‘ 등입니다.


       왜 예수님은 역설을 통해 신앙의 핵심을 가르치셨을 까요? 그것은 믿음의 본질인 십자가의 사건 자체가 역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중심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십자가 사건은 어리석은 방법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어리석은 방법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사랑이 만들어 낸 역설입니다. 모든 영광을 받으셔야 할 예수님이 이 세상에 가장 낮고 천한 곳에 오사 불의한 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건,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서 죽음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택함 받는 자녀 되게 하신 사건은 놀라운 십자가의 역설입니다. 이 놀라운 역설이 신앙의 중심입니다.

오늘 말씀의 논지는 ‘성도(그리스도인, 영적지 도자)는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섬기는 자리에 서는 자이다’ 입니다.


1. 두 제자의 인사청탁 (35-37)


    예수님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여짜옵니다.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니다. ” 예수님이 묻습니다. “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때 그들이 청합니다. “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두 제자는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좌우편 자리, 권력의 핵심부,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 청탁했습니다. 참 조급함과 이기적인 마음으로 예수님께 청탁을 한 겁니다.


    세상에 있는 두 가지 중력이 무엇입니까? 하나는 지구의 중심에서 끌어당기는 중력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죠? 다른 하나는 마음 속에서 우리를 끌어 다니는 이기심이라는 중력입니다. 이 또한 본성으로 벗어나기 힘듭니다.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중력의 법칙을 벗어날 수 있는 다른 법칙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무거운 비행기가 떨어지지 않고 하늘을 날죠? 비결이 뭘까요? 공기 저항을 줄이고, 프로펠러나 엔진 같이 떠오르게 하는 힘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기심이라는 중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하늘의 법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즉 성령의 능력과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법칙을 따라 자기를 내어놓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예수님처럼 다른 영적 법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고난의 길을 가는 예수님 옆에서 끊임없이 자기 생각만을 했던 제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습니다. 39-40절에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예수님은 두 제자의 요구가 무지한 요청임에도 불구하고 야단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으뜸이 되고자 하는 제자들의 열망 그 자체를 예수님이 부정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권위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닙니다.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권위는 선한 것입니다. 다만 하늘의 법칙을 적용하지 않고 권위를 얻고자 함이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아마 제자들은 ‘잔’은 축배의 잔으로, ‘세례’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전에 받는 정결 예식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잔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와 심판의 잔’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여,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여기서 예수님은 모든 인간이 당할 저주를 ‘잔’이라 표현 하셨습니다. 바로 그 ‘진노의 잔’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세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란 ‘죽음에 완전히 잠기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무지한채 답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고 야고보는 가장 먼저 순교 당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잔과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33,3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 하며 침뱉으며 채찍질 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일만에 살아 나리라’ 처음 아니고 벌써 두번 거듭 얘기 했고, 이제 세번째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 하신 겁니다. 이제 그 뜻을 알아 들을 만도 합니다. 그런데 두제자 마음에는 ‘높은 자리’ ‘큰 권력’ 이란 탐욕에 사로잡혀 예수님 말이 들어 오지도 않은 겁니다. 자기 생각에만 몰두 했습니다. 두 제자는 충분히 높은 자리에 올라갈 자격이 있고 권력이 있다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막1:17절에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부르심에 응해서 배와 그물 다 버리고 예수님 따라갔습니다. 지금 그들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제 뭔가 대가, 보상을 받을 때가 되지 않았어?’ 그런 생각을 한 겁니다. 예수님께서 영광 받고 왕이 되실 때 자기들은 ‘핵심 자리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하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베드로만 제치면 핵심 자리는 따논 당상 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들어 가기 전 두 제자가 선수를 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들은 다른 제자들도 불같이 화를 냈어요. 아니 ‘야고보와 요한, 자기들만 희생했나? 우리도 3년 동안 예수님 따라 다니면서 엄청 수고하고 고생 했는데 ‘지들만 좋은 자리 다 차지하겠다는 거야!’ 완전히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지요. 그래서 화가 난겁니다. 이렇게 자기 권리 주장하고 자기 권리 찾겠다고 나서자 평화가 사라졌습니다. 마음 속이 시꺼멓고 시끄러웠습니다.

 

      세상 지도자들은 자기 권리를 더 주장 하고 자기 권리를 더 늘려 나갑니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더 중요한 자리 차지하고 완전 주인 행세 하는 것이지요. 조금 이라도 권력이 생기면 최대한 행사합니다. 제자들은 지금 그런 세상 마인드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 것입니다. 그러자 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모범 (45)


    반면 예수님은 어떠신 분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온 우주의 왕이십니다. 하나님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받으신 분이십니다. 얼마든 자기 권리와 권력을 주장하고 행사할 자격과 능력이 있는 분이세요.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 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사 철저히 인간들을 섬기셨습니다. 병든자는 ‘치유하심’ 굶주린 자는 ‘먹이심’으로 무지한 자는 ‘가르침’으로 섬기셨습니다. 심지어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 발을 씻기셨어요. 이로 ‘섬김은 이런 것이다’ 라는 본을 보이셨어요. 더나가 십자가에 자기 생명을 대속물로 내어 놓으시기까지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하늘의 권세와 권력을 다 가지셨지만 다 내 버리시고 오히려 낮고 천한 자리, 겸손한 자리에서 서서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섬기시되 자기 목숨을 내어 놓기 까지 섬겼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신 것이지요. 하나님이 당신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사 그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높아지기 원하는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하나님 나라 자리는 권리 주장하고 권세 부리는 자리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 자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일 하라고 주는 자리이다. 따라서 ‘고난’과 ‘희생’ 감당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자리이다. 말씀하십니다. 교회 자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에 집사, 권사, 장로, 목사가 있습니다. 그게 세도 부리는 무슨 벼슬이나 감투가 아닙니다. 다 ‘일하라’는 자리입니다. 일하는 중에 희생도 하고 고난도 하는 자리가 교회의 자리이지요. 따라서 하나님 나라 자리는 수고 해서 논공행상에 따라 공이나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죄인들을 섬기고 또 목숨을 내놓아 대속물이 되심으로 죄인된 우리가 구원 받았죠? 하나님 나라 자리는 주 은혜에 감사해서 하나님 나라 일을 하는 자리입니다. 희생하고 고난 받으며 기뻐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후에 그것 보시고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고 인정하시면 하나님 나라에서 상을 주시는 것이지요.


    예수님 제자는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성도도 마찬 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모를때 자기를 고집하던 사람들이었죠? 이제 예수님 만나고 죄사함 받았습니다. 이제 은혜에 감사해서 자기 고집 꺽고 예수님 본받고 예수님을 닮아 섬기는 자리에 서서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배소서 5장 21절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 우리가 인간관계를 통해 만나는 모든 이웃을 주님 대하듯 섬기십시오. 때로 보기 싫은 사람, 불편한 관계에 놓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 안에도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1989년 부커 상을 수상하고 1993년에는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제작한 안소니 홉킨스와 에마 톰슨이 주연한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남아 있는 나날 ” 입니다. 주인공 스티븐스는 ‘영국 귀족의 장원’을 자신의 세상 전부로 여기고 살아온 남자였습니다. 스티븐슨은 오랜 세월 달링턴 홀에서 달링턴 가를 섬기며 홀을 관리한 집사였습니다. 집사는 주인의 스케줄과 저택의 모든 흐름을 관장하는 역할까지도 겸임했습니다.

그런 스티븐슨에게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가 닥쳐옵니다. 저택 주인이 영국인 달링턴에서 미국인 패러데이로 바뀐 것입니다. 그때 위대한 집사 스티븐슨은 ‘새로운 변화’가 ‘어색함’ 그 자체가 됩니다. 달링턴 홀의 새 주인 패러데이의 호의와 권유에 따라 집사는 6일간 여행을 떠납니다. 6일간 짧은 여행이지만 달링턴 가에서 겪은 수많은 번민들과 자신의 결정을 되짚어 보는 시간인 동시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주인의 권유에 의하여 출발한 한 늙은 집사 스티븐슨이 여행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 보게 됩니다. 그때 집사 스티븐슨 이 찾은 뭔가 결여 부분이 무엇이었을까요?


    스티븐슨의 삶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전 주인 달링턴이엇습니다. 옛 주인과 관계 속에 한분야에 뛰어난 ‘능력’과 훌륭한 ‘품위’는 스티븐슨에게 어울리는 긍지 였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황혼녘에 떠난 여행의 종착지 바다가 마을 웨이머스에서 자신에게 부족한게 바로 ‘유머’임을 깨닫습니다. 그는 새 각오로 ‘유머’를 연습해야 겠다 결말을 내립니다. 이를 통해 새 주인과의 소통 하려는 노력을 보입니다. 여행의 마무리는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되는 장소이자 ‘변화의 희망’을 보여 주는 순간으로 바뀝니다. 스티븐슨은 비록 외곬수이지만 ‘변화’를 수용하는 새로운 섬김으로 새로운 희망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침내 2017년 올해 저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에 선정되었습니다. 인간의 본연의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그의 세번째 소설 <-'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s)이라는 -> 책의 저자 일본계 영국인 가즈오 이시구로입니다. 저자는 집사 스티븐슨을 통해 새 시대 새 주인을 맞아 새로운 섬김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내가 주인이었던 데서 내려놓고 예수님을 새 주인으로 모신자로서 예수님 처럼 섬김의 자리에 서는 사람입니다. 자발적인 섬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섬기되 새 주인이신 하나님께 인정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바로 성도 들입니다.


3. 진정한 영적인 지도자 (43-44)


    43,44절에서 예수님은 ‘크고자 하는 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가 누구냐?’ 말씀 하십니다. 세상 크고자 하는 사람 으뜸 되고자 하는 사람은 권력 휘두르고 행사하는 사람이지요.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 크고 으뜸 되는 사람은 세상과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훌륭한 인격과 덕으로 사람들을 섬김으로 감동 감화 시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지난주 Channal A 관찰 카메라 24 ‘차를 판매하는 딜러의 하루’ 프로를 보았습니다.

출근하면 고객에게 줄 특별하고 다양한 선물을 준비합니다. 개인 사물함을 열어 구비되어 있는 수많은 구두와 넥타이 중 새것을 착용합니다. 전날 맨것은 신거나 매지 않는게 고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라는 것입니다. 긴장 백배 - 전시장 큰 손님 방문하다-라는 멘트가 나오고 수입차 7억짜리 ‘슈퍼카’ 가 수송기 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합니다. 차가 매장에 들어오자 딜러들이 도열해 있다가 일제히 스마트 폰으로 인증샷을 찍어 예쁜 이모티콘과 함께 고객들에게 전송합니다. 고객이 특수층이라 일반에는 홍보조차 하지 않는 답니다. 함께 시승해서 몇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차 장점을 홍보 합니다. 게약이 체결됩니다. 자동문이 열리면 차앞에 왕리본이 달린 차가 선물임을 말해줍니다. 고객은 감동을 받습니다. 오늘날은 세상 조차 예수님의 섬김의 리더쉽을 배워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안에 다 모여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회 안에서 부터 섬기는 훈련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받은 섬김 훈련으로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아름다운 것을 전파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놀라운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이지요. 교회 안에서부터 아주 작은 것부터 섬기는 것입니다. 내입장이 아니라 찾아오는 사람 입장세 서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 하는 일들을 연습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섬기고, 내가 먼저 깨끗이 하고, 정리하고 내가 먼저 섬기는 겁니다. 다른 분들 깨끗하고 안락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내가 다른 분들을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이지요. 우리 교회안에 아름다운 섬김으로 가득 찬 교회 되도록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부터 먼저 연습하고 훈련이 되어야 훈련된 사람들이 세상에 나가서 가정이든 직장이든 지역사회나 학교이든 어디서나 우리가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세상의 추악하고, 자기 권리 주장하고, 군림하는 것을 몰아내고 섬기는 아름다운 영향력을 미치고 세상을 변화 시킬 수가 있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철저히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자기 자리를 찾습니다. 조그만 권력이라도 생기면 휘 두르고 남을 억 누릅니다. 우리도 세상 가운데 살아 가면서 이런 세상 바이러스에 오염 되기 쉽습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고 닮아서 예수님 본연의 제자 모습을 되 찾아야 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분들을 섬기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부터, 이번 노회 목사님들 오실 때부터, 먼저 섬기는 연습을 해봅시다. 그래서 우리 교회 안이 섬김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득 차게 되고, 세상에 나가서 섬김으로 세상에 아름다운 영향력을 미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된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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