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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샤다이 ( 창세기17장 1-11 절 )
04/16/201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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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6일

                                                 엘 샤다이


말씀: 창세기17장 1-11 절

  

        약속은 묶는 것입니다. 한쪽과 다른 한쪽을 하나로 묶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을 하나로 묶는 것이며, 나와 남을 하나로 묶어 주는 고리입니다. 약속이 지켜질 때 둘은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시너지를 이끌어내고 약속이 지켜지지 못하면 에너지는 흩어지고 분산되어 힘을 잃습니다.

 

      남과의 약속을 어기면 신뢰가 깨어집니다.  사람을 잃습니다. 나와의 약속을 어기면 의지가 깨어집니다. 희망을 잃어버립니다. 따라서 남과의 약속도, 나와의 약속도 모두 생명처럼 지켜야 합니다. 약속은 늘 마주하는 상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약속은 늘 기다리는 상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든 인간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이죠? 그 신뢰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은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는 것입니다. 서로 약속을 잘 지키면 신뢰가 쌓입니다. 그러나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면 신뢰가 깨어집니다. 그래서 부부 관계, 친구 관계, 그 밖에 어떤 관계든지 서로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약속을 잘 지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럼 나는 약속들을 잘 지키고 있나요? 나폴레옹이 말 했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차라리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내게 손해가 되더라도 서로 약속을 잘 지켜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우리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좋은 관계를 갖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신뢰가 필요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지만, 반대로 하나님도 우리를 신뢰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신뢰하는데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본문이 우리에게 관계에 대해 가르쳐 주는 중요한 교훈들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신뢰가 깨질 때 관계가 멀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1절입니다.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바로 앞 16장 마지막 절은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이었더라”는 말씀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니 16장 마지막 절과 17:1절 사이는 13년 공백 기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즉 13년 동안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습니다. 아브람이 75세 때부터 86세 때까지 11년간 기록이 창 12~16장까지 5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 87세부터 99세까지 13년 간 성경은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학자 칼빈은 이 부분을 창세기 16장 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즉 창세기 16장에서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지 못함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교제를 잠시 중단하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6장에 아브람이 85세 때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아브람은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10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결국 마음이 지치게 됩니다. 창 16:2절에 사래가 속이 상해서 아브람에게 말합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자식을 안 주신다 생각하니까 사래도 속이 많이 상했겠지요. 아브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몸종 하갈과 사이에 이스마엘을 낳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창세기 16장 사건입니다. 여기서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는 사실의 반증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식을 낳았다는 점에서 아브람은 기다림이라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일로 아브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교제를 멀리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갈이 임신을 하면서 아브람의 가정에 불화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사래의 몸종 하갈이 임신 하니까 자기 주인 사래를 무시하였지요. 사래가 화가 나서 하갈을 학대합니다. 하갈은 학대를 피해 도망갑니다. 다행히 하갈이 집으로 돌아와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렇지만, 사래와 하갈의 갈등은 후로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할 때 하나님과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데 하나님이 우리와 관계를 세워 나가실 수 없겠지요. 관계는 상호적입니다. 그렇기에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신뢰한다 해서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두 사람 다 똑같이 서로를 신뢰할 때 비로소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손자병법’에 ‘ 중과불상시 ’ 거짓 소문을 퍼뜨려 상대편이 서로 믿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심리 전술이 있습니다. 같은 편끼리 서로를 불신하게 함으로써 내분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전략입니다. 이처럼 불신은 싸움에서 전략으로도 이용될 만큼 서로 관계에서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아브람으로서는 충분히 기다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브람은 하나님을 끝까지 믿지 못했습니다. 기다림이라는 하나님과의 약속에 인내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관계도 멀어졌습니다. 그러자 가족 간 갈등이라는 문제까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의심하고,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반면교사 이 말은 다른 사람의 실수를 통해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이지요. 아브람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러나 아브람과 같은 실수는 아브람 한 사람으로 충분합니다. 우리 가운데는 아브람과 같이 하나님을 믿지 못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도 멀어지고 어려움을 자초하는 분이 한 분도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분명하게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절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일시적으로 관계를 중단하셨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이 자기를 소개하신 ‘전능한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입니다.

  

            엘 샤다이는 '엘'과 '샤다이'의 복합어입니다. 엘은 하나님, 샤다이는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엘 샤다이는 곧 자족자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 말로는 ‘전능자’로 번역 되었습니다. 이 '엘샤다이'라는 칭호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실 때 나타내신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계시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실때는 ‘엘로 힘’ 전능자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 생활을 하면서 신음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여호와’로 알려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하시고자 할 때 그 이름을 '여호와'로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창세기 17:1절에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했습니다.

 

         ‘엘 샤다이’는 ‘능치 못함이 없으신 무한한 능력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왜 제일 먼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말씀하신 것일까요? ' 하나님은 '엘 샤다이'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아들을 주시기 위해 그의 나이 99세 때 나타나셔서 일러주신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 이름이 '엘 샤다이' '전능한 하나님' 입니다.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마침내 아브라함 나이 100세, 그리고 그의 아내 사라 나이 90세 때 아들 이삭을 낳게 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힘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으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전능하신 하나님' 곧 '엘 샤다이'로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엘샤다이'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요구하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더러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고 하심은 이제 '엘샤다'이 하나님이심을 알았으니, 불신앙에서 떠나 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아브람이 13년 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갈과 동침했던 사실을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일종의 책망이죠. 이제는 옛날처럼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엘 샤다이 하나님을 믿고 흔들리지 말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8절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과거에 하셨던 약속들을 다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아들을 주셔서 후손들이 번성하도록 해주시겠다. 또 하나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8절까지에서 하나님은 ‘언약’ 이란 단어를 4번이나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이 그 동안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다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아예 이름까지 바꾸어 주십니다.

 

     5절에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꿔 주십니다. ‘아브람’은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열국의 아버지’라고 부르면 아브람이 이름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이 생각나겠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아내 사래의 이름도 사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사래는 ‘공주’ 또는 ‘왕비’라는 뜻입니다. 반면 사라의 뜻은 ‘여주인’ ‘열국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라도 이름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이 생각나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기억력이 어느 정도일까요? 19세기 독일 심리학자 에빙 하우스가 인간의 망각과 기억에 대한 연구를 했어요. 그에 따르면 사람은 무언가 배운 후 10분이 지나면서부터 망각이 시작된다 합니다. 그리고 1시간 지나면 배운 것의 50%, 하루 지나면 70%, 한 달 지나면 80% 이상 잊는다 합니다. 잊어버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복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로 이름을 바꿔 주셨습니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 약속이 생각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은 반복 학습법이 어디 있겠어요?

 

    이 사실에서 우리가 하나님 약속을 믿고 신뢰하기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간절히 바라나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이 어땠나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다시 아들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니까 17절에서 아브라함은 웃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창 18:12절에 사라도 속으로 웃었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 다 아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당시 아브라함 99세 사라 89세 둘다 몸이 늙어서 임신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주신다 하니까 두 사람 다 웃을 수 밖에 없었죠.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엘 샤다이의 하나님, 능치 못함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능치 못하심이 없는 엘 샤다이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특히 힘들수록 우리는 엘 샤다이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엘 샤다이’라는 말이 48번이나 나옵니다. 그 중 ‘엘 샤다이’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 욥기입니다. 욥기에는 ‘엘 샤다이’ 라는 이름이 31번이나 나옵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던 욥에게 필요했던 하나님이 바로 전능하신 엘 샤다이 하나님이셨습니다. 혹 어려운 일로 믿음이 흔들릴때가 있습니까? ‘엘 샤다이’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세 번째로, 우리도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9~10절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 약속을 지키라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도 약속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신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그 약속은 포경수술 할례였습니다. 창 17장에서 아브라함과 가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할례를 행합니다. 그렇다면 할례에 담긴 영적인 의미가 무엇일까요? 신명기 10:16절에 “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할례의 진정한 의미가 마음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할례는 살을 도려내는 것이나, 그 행위를 통해 하나님은 마음의 고집과 불순종과 옛 성품들을 도려내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체의 살은 도려냈으나 마음까지 도려내지는 못했습니다. 신약에 할례의 의미가 더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빌립보서 3:3절에 “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성령으로 봉사하고, 예수로만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삶, 이것이 진정 할례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구약이나 신약이나 할례 개념은 동일합니다. 살을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도려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9~14절까지 할례를 말씀하시면서 여기서도 ‘언약’이라는 단어를 6번이나 반복하십니다. 그만큼 약속을 잘 지키라는 강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도 잘 믿어야 되고, 하나님과의 약속도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점점 더 친밀하고 깊은 관계로 발전해갈 것입니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아무리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도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그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는 다 끝나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더 깊고 친밀한 관계를 이루어갈 수 있도록 힘쓰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사랑, 기쁨, 행복, 평안을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축복들을 이루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어떤 상황속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세워 가십시오. 우리 생각으로 도저히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을지라도 성도는 날마다 하나님과 더 깊고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는 자입니다. 한해가 저물어 가네요 지난 한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속에서도 엘샤다이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선효 집사님이 허리가 아파 다리가 힘을 잃었습니다. 서울대 의사는 수술해도 아무 효험이 없고 잘못하면 다리가 마비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기도하게 하셧습니다. 하나님은 연세대 병원에서 수술하게 하셨는데 바로 걷게 하시고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뛰게 하셧습니다. 엘샤다이 하나님을 높이 찬송합니다. 

  

   이제 우리앞에 아무리 불가능한 상황이 온다 할찌라도 저와 여러분 모두 엘샤다이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행복과 평안을 날마다 누리기 바랍니다. 또 도무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상황속에서 우리는 엘샤다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리는 축복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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