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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xx족의 태양 김대중선생 (4편)
06/26/202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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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선동과 내란음모의 시절

1974 12, 가택연금중에 있던 김대중은 재야단체인 민주회복 국민회의 참여해 재야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1976 3.1 기념미사에서 윤보선, 함석헌, 문익환, 김승훈등 재야인사들과 함께 민주주의, 경제입국 구상 재검토, 민족통일 등을 주장하는 3.1민주구국선언 (일명 명동사건) 발표해 대통령긴급조치 9 위반으로 구속되어 징역 5, 자격정지 5년을 확정받아 진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의 투옥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이 고조되자 박대통령은 1978 12 그를 형집행정지로 석방한 가택연금으로 전환시켰다. 가택연금 상태에서도 그는 1979 3 1  민주주의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약칭 국민연합’) 결성해 윤보선, 함석헌 등과 함께 공동의장을 맡으며 재야활동을 계속했다.

1979 10 26 박정희 대통령이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살해되면서 유신체제가 붕괴되자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은 12월에 그를 가택연금에서 해제했다.

이어서 최규하 권한대행은 1980 2, 그를 사면복권시켜 주었다.


1980년초 서울의 시기에 그는 김영삼, 김종필 등과 함께 가벼운 몸으로 정치활동의 전면에 나섰고, 학원소요사태를 배후 주동하고, 학원소요의 위력을 과시하면서 최규하 정권의 즉각퇴진을 압박하다가 5 17 자정의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를 불러왔다.

이로 인해 그는 26명의 정치인들과 함께 체포, 수감되어 광주소요 기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9월에 그는 계엄사령부 군법회의에서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주동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1981 1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그를 즉각 사형시키자는 여론과 재야파들의 끈질긴 구명운동이 한동안 팽팽히 맞섰다. 그러나 전두환은 1980 레이건 대통령을 만나는 조건으로 1982 12 그를 석방했다. 미국으로 건너 김대중은 한국인권문제 연구소를 열어 해외에서 활동하다 1985 12 총선을 앞두고 귀국했다.


11) 김대중의 대통령 재직 저지른 반역행위

    1)      2001. 10. 10 김대중 정부는 30만명분에 해당하는  결핵백신을 북한에 비공식적으로 지원하는 바람에 국내에 한동안 결핵백신 공백사태가 이어져 국내 예방접종자들이 백신을 맞을 없어 전국보건소에서 한동안 소동이 벌어졌다.

결핵연구원은 이같은 사실을 외부에 노출하지 것을 전국 지부에 통보했다. 결핵백신을 북한에 몰래 주고 입단속을 시켰다는 뜻이다.

김대중의 마음에는 북한만 있고, 백신을 맞아야 하는 남한 어린이들은 없었으며, 생명이 위험한 결핵중병환자들도 없었다는 뜻이다.

2001. 11. 27. 동아일보 사설은 없다고 방치하는 나라라는 제하에 국내환자들을 팽개쳐 죽음으로 몰고 가면서도 북한에는 사정없이 퍼주고 있다는 사실을 질타하였다.

북한에는 있는대로 주면서 국민건강은 몰라라 하고 있다면서

파스공급이 중단되면 생명을 잃는 것은 물론 내성이 강해진 결핵균이 퍼져 다른 사람들의 건강까지도 위협하게 된다. 더욱 문제는 국내 10만여 결핵환자 가운데 1만여명에 이르는 만성 중증환자는 대부분 극빈층이라는 있었다.


    2)      국내 대공수사요원들을 집단으로 해체하였다. 김대중은 집권 33일만인 1998. 4. 1. 국정원 대공요원 581명을 강제로 해고하고. 민변 출신 변호사등 500여명을 검증절차 없이 특채하였고 대공경찰 2500,  기무사 대공요원 900, 공안전문 검찰 등을 대량 해직시켰다. 반공전선을 완전히 오해시킨 것이다.

2010. 1. 국정원은 김대중 정부가 직원들을 대량 해고하는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결정지었다.


3)   월간조선 2001 8월호는 좌익세력의 군대침투 실상이라는 기무사가 작성한 보고서에 대한 내용을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의 주적이라는 북한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았다. 이런 마당에 군대가 필요한가? “ 라는 등의 말로 정훈교육을 방해한다는 등의 우려사항과 함께  나에게 총알이 지급되면 우리  부대의 지휘관부터 먼저 쏘겠다는 적대적 발언을 하는 병사도 있다고 했다.                  

 

기무사는 자료의 서두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이 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렸다는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적시, 정부와 견해를 달리하고, ‘군을 무너뜨리지 않고는 남조선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북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군에 침투한 좌익세력들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더욱 노골적인 무력화를 꾀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발간 취지를 밝혔다.


자료는

1) 좌익세력의 대군 투쟁의 역사적 맥락과


2) 좌익세력의 대군 투쟁실상 크게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좌익세력의 대군 투쟁실상 크게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좌익세력의 대군투쟁의 역사적 맥락에서는 광복 직후인 1946년에 발생했던 대구 군부 프락치 사건에서 부터 여순반란 사건, 그리고 6. 25전쟁 이후 최근까지의 좌익사건을 역사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들 프락치들이 1946 10 1일에 발생한 대구 폭동사건의 배후 지원세력 이었다고 자료는 단정지었다. 기무사는 자료에서 북한 김일성이 1966 10 노동당 2 대표자 회의에서 남조선 혁명조직들과 혁명가들은  국군사업 해야 한다. 교시했다고 소개하고, 군을 무너뜨리지 않고는 남조선혁명이 불가능하다는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 핵심 전략이라고 밝혔다.


한토마 (한겨레토론마당) 에는 보다 구체적인 내용들로 좌익세력의 대군침투실상 소개하였다. 좌익이라면 눈에 불을 켰던 조성태 장관은 2001 3 좌익으로 알려진 김동신 장관으로 교체되고, 6 30 보고서를 작성한 대공처장 (: 염완동 준장) 전격 경질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6.15 군의 좌익활동 대군와해작전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는 내용들도 있다.


자료작성에 관여했던 기무사의 간부는 [검거한 좌익사범 대표적인 활동사례 몇가지만 언급했다] [자료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우리가 파악하기로 군내에 침투한 좌익세력은 1000여명에 달한다] 말했다.

간부는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 핵심부에도 북한 김정일 추종세력이 있다는 첩보와 정보를 갖고 있으나 이것들은 정치적으로 민가한 사항이어서 자료에 언급하지 않았다] 면서 [일부 시민단체에 상당히 침투해 있는 좌익세력들에 대해서는 자료에 일체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뿐만 아니라 국가정보원에서 내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말했다. 간부는 북한의 [피바다] 극찬한 국방일보에 대해서 기무사가 조사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고기초자료 수집에 착수했다가 북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수뇌부의 분위기때문에 수사를 그만 적도 있다] 말했다. 기무사가 이런 내용의 자료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자료를 만든 주무부서인 기무사 대공처장이 지난 6 30 갑자기 전역하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조성태 장관의 뒤를 이은 김동신 장관 체제의 수뇌부는 자료의 제작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는 기무사 고급장교의 말은 더욱 상징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좌익세력의 대군침투 실상은 올해 조성태 국방장관에게 처음 보고되었습니다. 조장관은 보고내용을 책으로 만들어 지휘관들에게 배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조성태 국방장관은 좌익세력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잡아들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3 개각 새로 취임한 김동신 국방장관은 기무사 보고 내용자체를 처음엔 소극적으로 생각하다가 전임 장관의 지시에 따라 책자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전군지휘관 회의 발표해도 좋다고 허락했습니다.

김동신 장관 부임 , 수뇌부는 북을 자극하는 일이라면 소극적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이 우리의 주적이란 점을 분명히 밝힌 조성태 장관은 재임기간 내내 북으로부터 반통일 세력이라는 흑색선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김동신 장관 부임 이후 김장관에 대한 북의 비방선전은 별로 없었습니다. 6.25 전쟁 체포된 빨치산과 남파간첩 가운데 전향하지 않은 죄수들을 북송할 그들에게 꽃다발을 걸어 사람이 김동신 장관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3) 김대중 좌파정권은 1989 부산 동의대 도서관에서 경찰 7명에 화염병을 던져 사망케 혐의로 무기징역등 중형을 받았던  31명과 나머지 40명에 대해 민주화 운동자로 인정했다.


4) 대통령 재임시 대한민국 배타수역에 있던 독도를 한일 공동어업구역으로 할양함으로서 오늘날 독도지역을 더욱 분쟁화 시켰다.


5) 북한정권이 붕괘직전에 대북송금 45천만 달러를 뒷돈으로 대주어 살아나게 했다.


6) 북의 핵개발 사실을 숨기고 자금까지 대주었다.

 그는 북은 핵개발 능력도 의지도 없다면서 북이 핵개발하면 내가 책임진다햇다. 어떻게?

이정도면 부관참시해서 태양의 궁전에 모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7) 2020 초에 김대중이 미국에 숨겨 비자금으로 밝혀진 것이  15천만불


8) 미국에서 영업중인 유명 한국 슈퍼마켓의 실질적인 숨은 소유주.


9) 김홍업, 홍걸의 정선카지노의 대주주설 (무슨 돈으로?)


9) 조풍언,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을 앞세워 차세대 전투기 구매를 위한 보잉과의 F-X 사업을 비롯한 다음의 각종 무기구매거래 엄청난 뒷 수수

- 장거리 공대지 유도 미사일(AGM-142 Popeye) 도입(K 前공군참모총장, S)

- AN/ALQ-165 ASPJ 전자전 방어 교란 시스템 도입(조풍언, 기흥물산)

- 전투기 레이더 경고 수신기(RWR) 교체(L 예비역 준장, P)

- 렙콘 항공기 착륙 유도용 항공관제 레이더 도입

- 공군 공중지상 통신장비 도입

- 이스라엘제 Harpy 레이더 공격용 무인정찰기(UAV) 도입


이런 훌륭한 사람을 희대의 만고 역적이라 하면 안되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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