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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xx족의 태양 김대중선생 (1편)
06/25/2020 21:41
조회  177   |  추천   3   |  스크랩   0
IP 172.xx.xx.228

1) 김대중과 그의 추종자들의 대국민 사기


* ㅎㅎ 삶은 소대가리도 웃게하는 김대중교도들의 코메디 (사람속이는 능력은 역시 출신이 중요한가 봅니다)


2) 인간성이 드러나는 xx족의 태양

1989 1 9 정치권에서 분향소 참배여부로 설왕설래할 때 당시 평민당 김대중 총재는 

주한 일본대사관 뒷문으로 비밀리 들어가 히로히토 일왕의 분향소에 조문했다. (경향신문 단독 특종기사)



3) 2010. 2. 23 경찰산하연구소 에서 KANIS 학회 유동렬 발표

대남공작을 주도하는 총사령부가 있는 북한 3호청사 지하에는 영웅관 있는데 김정일의 서명 (북한말로 수표”) 받아야만 출입할 있다고 한다. 거기에 들어 갔던 사람이 전해준 이야기로는

대남공작 영웅제1호는 성시백. 그에 대하여 북한노동신문이 1997 5 26 3개면을 할애하여 자세히 소개했다. 성시백은 김구를 포섭하여 김일성이 인민공화국을 수립하는 둘러리를 서게 했던 1등공신이었다.

그래서 영웅관에는 성시백의 사진이 제일 먼저 걸려있다고 한다. 성시백으로 부터 몇개의 사진을 지나치니 김대중의 사진이 걸려 있더라 했다. 증언자가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추자, 안내자가 하는

사람 우리 사람이야


4) [참수리호 군의관이 평가한 김대중]

2012. 6. 26 조선일보에는 6. 29 당시 군의관이었던 이봉기 의대교수의 심정이 토로돼 있다.  “당시 전사장병과 유가족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런 정부를 위해서라면 자신도 털끝 하나 다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김대중대통령이 당선됐을 드디어 군바리 가고 민주정치가 오는구나!” 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2연평해전 부상자를 돌보면서, 희생이 뭔지 배웠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군인의 희생이 있기 때문에 내가 편하게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지난 정권 떠올리면 이가 갈리고 분통이 터진다. 말고도 자리에 있던 군의관 모두 그랬다. 지금 종북 국회의원들을 보면 세금이 이런 사람들을 위해 쓰여야 하나 싶다. 종북 인사들은 나라를 지키는 사람에 대한 모독을 자주 하더라. 우리끼리 끝나고 맥주 한잔씩 때마다 2연평해전 이야기를 했다. 정말 너무 하지 않는냐고. 나라 지키다 젊은 사람들 죽어 나갔는 , 국군통수권자는 축구 본다고 일본에 가서 웃으며 흔들고 이러면. 사건 당시 전사자 빈소에 일반인들은  조문을 못하게 막았다. 유족들과 몇몇 군관계자들만 왔다 갔다. 유가족이 홀대받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정부를 위해서라면 조금도 다치고 싶지 않다 생각이 자꾸 들었다. 북한이 그리고 간첩이 원하는 것도 그런게 아닐까. 나라 젊은이들이 조금씩 그런 생각을 먹게하여 그래서 결국 안보가 무너지게 하고. 분열되게 하는 것이다.


5) [업코리아 기자가 김대중]

2004. 6. 28 네이버 뉴스 코리아 기사는 김대중은 대한민국 편이 아니었다라는 제하에 아래와 같은 내용을 실었다. “2003 7 10일자 주간지에 실린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 육필 수기는 김대중 정권의 조국에 대한 배반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2002 7 1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체육관. 6 29 서해상에서 북한의 계획된 도발로 사망한 윤영하 소령을 비롯,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장병 4명의 합동영결식이 열리고 있었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족들과 전두환 전대통령, 손학규 경기지사, 장정길 해군참모총장 각계인사 500여명이 참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리에 국가최고지도자이자 군통수권자였던 김대중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동신 국방장관을 비롯 국무위원 어느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중이었다. 6 29 서해교전으로 국민이 분노에 떨고 슬픔에 잠겨 오열하고 있을 한가하게 월드컵 폐막식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30 오전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한 것이다. 시민들의 분노가 메아리쳤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에게는 전라도가 있었으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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