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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초 머리털
07/07/201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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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71.xx.xx.143


머리 자른 날 / 수필가 구자분



아직 멀었다. 나를 버리기란, 나를 내려놓기란 도대체 얼마나 어렵고도 어려운 일인가.
시퍼렇게 살아서 꼿꼿하니 치켜들고 일어나는 자아. 누구나 자존감이 상처 입을 때 불쾌하다
못해 분노가 일게 마련이다. 그 순간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에는 평화, 숨을 내쉬면서 얼굴에는
미소를 띠라고 틱낫한은 이른다. 하건만 분노의 실체를 감싸 안아 맞아들일 수 있는
단계까지의 인격수양이 나로서는 어림없는 일이니 여전히 통제가 안되고 관리가
쉽지않은 감정. 더 정확히는 분노조절 능력이 형편없이 낮은 것이다.




꼭지가 돌도록 치솟아 오르는 분기, 그 화를 풀길 없을 때 나타나는 반응은 가지가지다.
닥치는 대로 물건을 내던진다거나 마구잡이로 고함을 지르는 이, 마구마구 먹거나 낙서를
하는 이도 있다. 사람됨이 미숙할 수록 치기어린 단세포적 행동을 보이기 일쑤, 그러나
독으로 가라앉은 마음의 불순물을 걸러내는 나름대로의 어떤 처방전은 반드시 필요하다.
분출구를 찾지못해 내부에서 들끓기만 하는 마그마는 언젠가 폭발하기 마련 터지기
일보직전의 위태위태한 용암 곁에 있다가는 필시 불길에 데고야 만다. 화상이
아니라면 하다못해 애꿎게 걷어차인 강아지꼴이 될 수도 있다.




분기충천의 순간, 타오르는 마음의 불을 끄려고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켠 적도 있었다.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를 복식호흡으로 이완시켜도 보았다. 더러는 도리없이 여겨 그래 전생의 업
*인샬라! 하며 순순히 받아 들이기도 했다. 오늘처럼 마침 머리라도 덥수룩 자라 추레하다면 주저없이
가위를 찾아들게 된다. 분노의 자기를 쳐내듯, 증오의 밑동을 자르듯 단호하게 그러나 담담히
머릴 자른다는 것은 가벼이는 기분전환의 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한편은 견디기 힘든
어둠을 안겨준 어제와의 작별의식이자 밝은 내일을 향한 정화의식이기도 하다.




미국 오기 전 단골 미장원에서 머리 자르는 기본 요령을 배웠겠다, 모양낼 계제도 아니겠다,
결정적으로 숱이 적어 혼자 손질하기에도 수월한 머리다. 그러니 별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우선 머리를 가지런히 빗질한 다음 적당히 손아귀에 몰아 쥐고 싹둑싹둑 자르기만 하면 된다. 1인치쯤의
길이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펴놓은 보자기 위에 흩어져 내린다. 마무리 손질로 머리를 고르게 다듬어
나가다보면 묘하게도 기분이 눅어지며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고 정돈된다.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해석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머리 자르기는 내 식대로의 화 조절법이다.




삼손이 지닌 괴력의 비밀은 머리카락에 있었다. 힘의 상징이기도 한 반면 불가에서
머리털은 무명초로 불린다. 머리가 자라면 번뇌의 근본인 어리석음이 증강된다고 여겨
출가사문들은 보름마다 한번씩 삭도를 든다. 삭발은 미혹과 세속적 인연의 얽매임을 끊기 위한
결단과 단절을 의미하는 출가정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출가란 단순히 집을 떠나는 것만이 아니라
속세의 욕망과 명리 등 팔만사천 번뇌의 근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것을 뜻한다.




물론 승려만이 아니라 시위에 앞장 선 이가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또는
록을 하는 뮤지션들도 유행처럼 삭발을 한다. 더러는 운동선수들이 주요 경기에 임하기
전 각오의 결의를 다지고자 삭발하는 경우를 본다. 이처럼 머리를 자르는 것은 일상적 삶을
떨쳐 버리고 새롭게 전환하고자 할 때나 아집과 교만을 제거하고자 할 때 시도가 된다.
삭발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내가 머리를 자르는 행위 역시 감성의 촉수를 누그러
뜨리는 방편이자 보다 본질적인 문제 곧, 자아를 깎아내는 일이 아니던가.




억압된 감정, 표출되지 못한 분노는 심장질환을 유발한단다. 스트레스성 호르몬인 코티졸은 동맥에
작은 상처를 낸단다. 화는 상처받고 싶지 않은 자기보호의 한 대처방안이기도 한단다. 그래서일까.
솟구친 화기를 제때 다스르지 못하면 열꽃이 돋다 못해 두드러기가 툭툭 불거지는 체질, 스스로
생각해봐도 성깔 한번 고약스럽다. 그러니 살아온 내력 그 자체라는 얼굴이 평화로울리 없다.

골이 깊게 패이도록 찌푸려진 미간에서 가까운 사람과 불편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나이가 되도록 마음 다스르지 못해 매사 못마땅한 일투성이인 양 불만족스런 표정이 새겨져
있는 얼굴, 얼의 꼴이라는 얼굴이다. 온화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좋은 인상을 만들려면 좀더 나를 버리고
나를 바닥에 내려 놓아야 하련만 아직도 쉽지 않은 그 일. 내가 썩어줌으로 그 죽음의 거름 속에서 생명의
씨앗은 움이 튼다했는데…. 짧게 깎여진 머리가 가뿐하긴 하나 내 속내를 들킨 양 열적기만 하다.

** 구자분/수필가/1949 년생 - 충남 당진, 전직 신문기자 **

1987 '문학정신' 제1 회 수필 신인상 수상. 부산 MBC 신인 문예상 수상.
주렴을 반쯤 열고, 산은 저 혼자일때 아름답다, 흔적을 지워가며, 물고기 종소리..

구자분님의 수필은 직접 읽은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퍼옮긴 글입니다.




글이란 것이 -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누군가가 뺃아내 줄때 그보다 더 속시원하고 기분이
좋을 수가 있던가 - 너무 더워 얼굴은 빠아갛게 익어 쭈그렁방탱이가 돼가는 뜨락의 피망같은데
신경질적으로 머릴 묶어 틀어 올리는 내게 ‘머리 한번 잘라보지?’ 조심스럽게 짝궁이 한마디한다.
‘놉, 몇 년에 미장원 한번 갈까말까 하는데 짧은 머릴 어쩌라구’ 무우토막 자르듯 툭 자른다.

http://blog.koreadaily.com/Splashp/1002502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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