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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발자취를 따라> 고흐가 사랑한 도시 아를
06/22/2018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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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의 발자취를 따라>-----------------------------------------

 

 반 고흐, 자기 귀를 짜르다!!


 불꽃의 화가 고흐가 사랑한 도시 아를(Arles)

 

                                         글: 장소현 (극작가, 미술평론가)

                                         사진: 김인경


                                      고흐 <야채농원> 1888년작


고흐를 만나러갑니다. ‘만난다고 하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를 더듬는 것, 그것도 단체관광으로 

슬쩍 스쳐지나가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두근거립니다.


인류 미술역사상 단연 최고의 인기 스타, 지독한 가난과 고독 속에서 불꽃같은 정열을 불태우고 

3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화가, 모든 것을 오로지 그림에 바치고 끝내 별이 된 남자

소설보다도 영화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산 사나이… 

고흐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참으로 많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감동적인 전설의 주인공, 신화가 된 예술가.


고흐는 10년 남짓한 짧은 작가생활 동안 900여점의 유화와 

1100여점의 드로잉, 수채화 등을 남겼습니다

10년에 900점이라면 매주 2점씩의 작품을 그린 셈이니, 정말 대단한 정열입니다.


그런가 하면, 그가 남긴 800통이 넘는 편지와 일기엔 뜨겁고 깊은 예술혼이 절절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의 편지들을 서간문학의 백미로 꼽힙니다.


그야말로 그림을 위해 살다가 그림을 위해 죽은 사람이지요. 고흐는 스스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고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


고흐에 인생과 예술에 대해서는 너무도 많은 글과 이야기들이 넘쳐납니다

소설로, 영화로, 전기(傳記), 노래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지요.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전 세계에서 발간된 고흐 관련 책을 모으면 수천 종류는 족히 될 겁니다

한글로 된 책만 해도 백 가지가 훨씬 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책들이 나오고 있지요. 반 고흐 신화는 아직도 진행 중인 겁니다.

그러니, 고흐에 관한 이야기를 여기서 다시 되풀이할 필요도 없을지 모르겠네요.


                                    아를 여름공원 입구에 있는 고흐 조형물


프랑스에는 화가들 때문에 유명해진 관광명소가 여러 곳 있습니다. 화가 덕분에 먹고산다고나 할까

예를 들어, 모네의 지베르니, 세잔느와 샤갈의 프로방스, 마티스와 이브 클라인의 니스등이 

대표적인 곳이지요.


아를과 오베르는 고흐 때문에 유명해진 고흐의 마을입니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작은 도시 아를과 생애의 마지막을 보낸 오베르는 고흐에게 매우 각별한 

곳입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 고흐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그의 예술세계를 조금이라도 

더 깊고 진하게 느끼고 싶어 합니다

그림으로 감상할 때는 느낄 수 없는 어떤 아련한 감동을 실감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를 여름공원


물론, 아를은 로마시대부터 유서 있는 도시이고, 오베르는 파리에서 가깝고 풍광이 아름다워서 

인상파 화가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유명하지만, 오늘날처럼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것은 

단연 고흐 덕택이지요.


고흐의 작품세계를 살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를 시대 이후의 작품들입니다

고흐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독창적인 화풍(畵風)이 완성되고 활짝 피어난 시기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잘 아는 불꽃처럼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강렬한 붓질과 선명하게 생동하는 색채 말입니다.


                      고흐 <노란 집> 1888년작 


고흐는 파리를 떠나, 18882, 아를에 도착했습니다

고흐가 아를에 도착했을 때는 눈이 60cm나 

내린 한겨울이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일본인 화가들이 그린 겨울 풍경화와 똑같았다고 

편지에 썼습니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아를의 아름답고 다양한 색채에 감탄했지요.

 

그리고 이듬해 5월까지 아를에서 지내며, 2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대부분 고흐의 대표작들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들이지요. 아를의 밝은 태양빛이 만들어낸 생생한 색채들이 

그의 작품에서 더욱 눈부시게 빛납니다.


아를 시절(18882-18895)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노란 집> <아를의 도개교

<밤의 카페 테라스> <밤의 카페> <자화상(고갱에게 헌정)> <반 고흐의 의자> <폴 고갱의 의자

<집배원 조제프 룰랭의 초상> <해바라기> 등등 유명한 작품이 너무나 많지요.


아를에 이어서 생 레미와 오베르에서 보낸 마지막 2년 반 남짓한 기간은 고흐 예술의 황금기이자

인생의 굴곡이 소용돌이치다가 한 순간에 툭 끊어져버리는 비극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고갱이 그린 고흐 초상


아를은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했던 마을이기도 하지만, 유명한 사건이 일어난 

전설의 장소이기도 하지요. 스스로 귀를 짜른 유명한 소동 말입니다.


고흐는 아를이 마음에 들어, 이곳에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주위의 아는 

화가들에게 이곳으로 오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반응을 보인 것은 고갱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시큰둥한 반응이었다지요.

고갱에게는 그다지 솔깃하지는 않지만 별로 손해날 것도 없는 제안이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테오가 돈을 대주기로 했다는 겁니다.


아무튼그렇게 고갱이 아를로 와서 같이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두 사람은 

서로 잘 맞지를 않았습니다. 성격도 맞지 않거니와, 추구하는 예술세계가 너무도 달랐던 겁니다

그래서 티격태격 아웅다웅 으르렁


               영화 <열정의 랩소디> 포스터


(참고로, 어빙 스톤의 유명한 전기소설을 영화로 만든 <열정의 랩소디(The Lust for Life)>라는 

할리우드 영화에 이 장면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커크 더글러스가 고흐로, 앤서니 퀸이 고갱으로 

나옵니다

카우보이 영화의 유명한 총잡이들이 갑자기 예술가로 나오니 참 어색하고 당황스럽기는 합니다만)

 

급기야, 18881225일 분에 못 이긴 고흐가 면도칼로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 중에도 고흐는 자화상을 그립니다. (사건의 자세한 내막이나 전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어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고흐는 병원으로 옮겨지고, 고갱은 파리로 돌아가고 말지요

예술가 공동체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만 겁니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도 고흐는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참 대단하지요. 붕대를 감은 

자화상도 그렸고, 치료 받던 병원 정원도 그렸어요.


                       고흐 <귀 짜른 자화상>1889년작


참고로, 귀 짜른 사건이 벌어진 것이 그 유명한 노란 집입니다. 고흐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건물이지요. 이 건물은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맞아 지금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뒤의 건물과 철교, 고흐가 치료를 받았던 진료소, 밤의 카페 등은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코스로 각광 받고 있습니다

실제 건물 앞에 고흐가 그린 그림을 전시해 놓아, 비교해볼 수 있지요.



                               고흐가 귀 짜른 사건으로 입원하여 치료 받은 진료소


밤의 카페나 진료소는 고흐의 그림에 나오는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원래 카페의 벽면과 차양은 노란색이 아니었는데, 1990년대에 복원공사를 하면서 고흐의 그림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서 그림과 똑같은 노란 색으로 칠한 거라는군요. 그러니까 고흐의 그림을 

재현하기 위해 노란 차양과 노란 벽면으로 치장했다는 이야기지요.


아무튼, 그 건물들은 고흐의 작품 덕분에 영원한 생명을 얻은 셈입니다. 아니, 고흐를 사랑하는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게 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르지요.


고흐 <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작과 현재의 모습


치료를 마치고 병원에서 퇴원한 뒤에도 고흐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걸작이 연이어서 탄생했지만, 한편으로는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뜨거운 태양 열기에 익어버린 육체, 그림에 몰두할 때는 자신마저도 잊어버리는 몰아(沒我)의 

긴장상태 등으로 그는 서서히 파탄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위험한 미치광이로 두려워하며, 감금하라고 시장에게 연명(連名)으로 

청원을 하기도 했다지요.


                                    고흐 카페가 있는 광장


견디다 못한 고흐는 자진해서 생 레미에 있는 생 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정신병원에서도 고흐는 열심히 그렸습니다. 그야말로 미친 듯이 그렸지요. 언제 엄습할지 모르는 

발작과 싸우는 육체와는 달리, 그의 화면은 아름답고 힘차고 날카롭게 불타올랐습니다.


여기서 그는 다양한 그림을 그렸지만, 평소에 늘 존경해온 밀레나 드라클로아의 작품들을 복사하기도 

했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에서였을까요?

사람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고백하는 고흐는 특히 밀레의 작품세계에 공감하여

만난 적도 없는 그를 사부님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들이 나를 마음이 깊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하길 바란다.” 

고흐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런 소망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겁니다.


고흐 <낮잠> 밀레의 작품을 모사한 그림

 

아를은 고흐의 발자취 외에도 볼만한 곳이 많은 마을입니다

알퐁스 도데의 희곡이나 비제의 가곡으로 우리와 친숙한 곳이기도 하지요.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에 위치한 아를은 론 강변에 있어, 로마 시대에는 물자유통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곳이랍니다. 아를에는 고대 로마 유적이 잘 보존돼 있는데, 대표적으로 도시 중앙에 있는 

원형경기장원형극장을 들 수 있습니다.


                                                            아를 원형경기장


원형 경기장은 옛 시가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관객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타원 모양의 경기장을 2층으로 된 아케이드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투기장으로 

사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투우경기가 벌어진다고 하는군요.


                                                         아를 원형극장


원형극장은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서 무대 뒤쪽의 장식벽에 토대와 대리암으로 된 

원기둥 2개가 남아있습니다.

아를은 고대 로마뿐 아니라,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된 생트로핌 성당 등 

중세 유럽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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