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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거부하는 개독교인 (?)
02/24/2015 05:27
조회  5009   |  추천   37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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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본질을 외면하는 개신교 사람들             

- 극도의 인본주의로 치닫는 것은 아니기를... -

 

시편 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사람이 없단다.

이상한 일이다.

찬양드릴 사람의 수가 고작이란다.

연합 찬양대가 부활절 칸타타를 드린다지 않는가.

아무리 작게 잡아도,

120여명이 넘어야할 전체 찬양대원들의 머릿 수인데,

고작 50 여명 뿐이다.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없다.

 

교육부의 400여명을 빼더라도,

1300 여명 성도가 실질적으로 섬기는 교회이다.

1부, 2부, 3부 대원들의 수를 합하고, 

토요 새벽 찬양대까지 함께한다면 140여명이 족히 넘을 터인데....

주 예수 그리스도

영광의 부활하신 날을 기리는 찬양의 선봉이

어찌하여 옹색하기 그지없는

[머릿수 채우기]에 전전긍긍하게 되었을까?

 

부활!

믿음의 핵심이 아닌가?!

우리네 믿는 자들에게 가슴 떨리는 의미이자,

수천년 역사의 [기독교 정체성] 한 가운데 우뚝 서있는 한마디,

모든 고난과 수고, 박해와 질곡을 훌쩍 뛰어넘는,

소망과 하나님의 약속, 나아가서는 승리의 페러다임조차 녹아 든, 

단 한 마디의 농축된 엑기스이다.

딱딱한 교리를 논하지 않더라도,

개신교 신자에게 있어,

이만큼 중요한 하나의 사건과

이만한 깊이의 의미를 담은 절기가 있던가?!


교리의 완성과 기독교 원리의 측면에서,

아기예수 오신 성탄절보다도 비중있는 날이 부활절이다.

믿는 사람이 어느 누구로부터라도,

6하원칙에 따르는 어떤 질문들을 받는다해도,

넉넉히 그리고 충분히 제시할 수있는,

철학적 답변들의 중심을 차지하는 단어이다.

 

 

 
 

2천년전

로마 치하의 이스라엘에서

나사렛 예수께서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오르사 다시 사심으로

세상을 구원 하시다

 

 

노래하자!

그런 구세주의 영광의 부활을 기뻐하자는 것이다.

독생자까지 죽이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리자는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고 찬양을 드리자.

우리가 고작 할 수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호흡이 다할 때까지라도

벅차게 노래를 올려드려보자.

 

무슨 이유가 그리도 많은 것일까?

처해진 형편과 놓인 상황을 말하지 말자.

누군가의 말대로 [생계에 지장이 있음]이나,

천재지변 (Acts of God) 이 아니라면,

우리 모두 할 수있는,

아니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어야 한다.

 

무수한 말 뿐이다.

찬양은 온데간데 없고,

온갖 말들이 난무하는 것이 사실이다.

대원들 간의 반목,

리더들에 대한 불만,

찬양대간의 삐뚤어진 경쟁 의식

노래를 잘해야만 된다는 그릇된 인식

...

 

사람만을 보는 것은 아닌가?

위를 보자.

영광 받을 존재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을 찬양하자.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려 드리자.

성경은 말씀을 통해 무엇이라 하고 있는가?

 

2부면 어떻고 3부면 어떻한가?

수십년 해오던 찬양의 소임을 내려놓고, 서있는 사람은 무엇을 기다리는가?

생업 때문에 이른 시간 찬양대를 섬긴다는 사람들은, 빠져도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1년 365일중 단 하루 아닌가?

새벽 찬양대는 어찌하여 광고조차도 없는지?

개발원장이나 성가대장은 왜 함께 찬양할 수없는 것인가?

지휘자, 부장, 그리고 총무는 열심인데, 대원들은 왜 뒷짐만 지고있는지?

노래를 잘해야 한다고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것은 아닐까?

못한다고 괜한 컴플렉스에 스스로 자괴하는 사람들도 있는가?

열린 찬양대는 왜 전통성가대와 함께 노래할 수없는가?

"부활절 칸타타는 누구든지 참여하여 부를 수있다"는 그냥 말뿐인 것인지?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부활절에 드리는 찬양은 성도들과는 무관한 행사라던가?

해마다 칸타타 찬양 당일날에, 고작 찬양대원 가족들 일부만 객석 자리를 채우는 것은 웬일일까?

레위가 12지파를 대표하여 찬양을 드렸다고, 하나님은 이슬라엘 민족 전체의 찬양으로 받지 않으셨을까? 

 

 죄와 십자가,

부활과 구원, 다시오심, 그리고 새하늘과 새땅,

나아가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됨은,

신자들에게는 더 이상의 설명이 없이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말들이며,

너무도 친숙하지만 여전히 설레이기 이를 데없는 표현들이다.

무엇을 하여서도 아니고,

자격이 있어서도 아닌데,

오직 선물로써 주어지는 이 모든 은혜를 어찌할 것인가?

우리가 정말로, 기껏 무엇을 할 수있는 지를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떻할까?

그것도 부족하다면,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말씀이라도 한번 따라 봄이 좋지 않으리오.

 

 

 

 

시편 150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주여!

어찌하여 오늘은

저 십자가 위에서

우는 모습을 하시나이까?

 

 

- 살며 사랑하며 -

 

Daybreak, Feb 24, 2015 

온전한 부활절 찬양을 기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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