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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밖에는 답이 없다
11/07/2014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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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기 어려웠던 신선한 충격!                   

 

 

 

스윗 써랜더 (Sweet Surrender)!

기쁜 마음으로 잘못을 시인한다!

아니 이런 경우는 기꺼이 어긋나려했던 것을 즐겁게 받아드릴 수 있겠다.

그것은 희망을 갖게 된 탓이다.

전혀 가능치 못할 것이란 단언에 철퇴를 맞는 순간이었다.

 

10년간에 걸쳐 나름대로 열심으로 바쳐온 믿음의 자취에,

뭔 그리도 할말이 많았는지,

무엇이 그리도 맺힌 것이 많게 하였는지,

그간의 관찰과 깨달음, 고백과 간증, 그리고 비판들을 들어내 보리라!

누가 시키지도 않은 천명을 한지가 어느덧 40여일이 되었다. 

(예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할 당시 40일간 광야에 계셨다.)

글싣는 순서까지 떡 벌려놓고,

시간은 하루하루 필자의 세월을 좀먹고 있었다.

바빳지만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할 지를 몰라서는 더욱 아니다.

(스스로 버닝 디자이어 (Burning Desire) 운운해 가며, [할 말이 많다]고,

또 담대히 [있는 그대로 감당해 보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충이 있었기 때문이다.

 

 

늘어놓은 글 제목들을 보면서 한숨지으며, 고뇌를 씹었던  것은,

대부분, 아니 한결같이 부정적이며 쓴소리로 일괄하게 될

그 다가올 논지가 싫었던 것이다.

그 음울한 톤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한국 교회는 안될거야!" 

"고령화되는 우리 교회는 끝내 변화하지 못할 것이다."

솔직히 고백컨데, 최근 몇년동안 버릇처럼 내뱉던 말들이다.

이유와 원인, 당위성이야 왜 없겠는가만은,

'그것이 다 일수는 없어야 한다'

'어차피 나의 믿음의 세계가 아니더냐?'

 

 

image sourced from http://www.ebay.com/itm/Love-is-the-Answer-Albert-Einstein-Graffiti-art-/160565068440

 

 

짧지 않은 10년 세월,

나름대로 기쁨과 설레임으로 지나온 믿음의 세월이었다.

좋지 않은 면, 부정적인 모습, 

썩어빠지고, 나쁘기 이를 데 없는 것들만을 늘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의 실패를 이야기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허송세월이 무슨 자랑이 되겠는가?

기독교를 모독한다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침뱉는 것이 더욱 싫은 것이다.

만일 그리한다면,

나는 스스로 믿음의 기반을 잃을 것이며,

스스로를 시험에들어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 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위기의식까지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자신의 삶을 그렇게까지 몰아가,

황폐하게 만들기를 누가 원하겠는가? 

 

기쁜소식은 [말씀 사경회]의 강사로 오신,

권준 목사님의 입을 통하여 선포되었다.

그것은 믿을 수없을 만큼의 강도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권준 목사는 시애틀 [형제 교회]의 담임목사이다.

그는 미국 유학을 하며 신학을 공부했고,

한국에서 믿음을 키우며 목사안수를 받고,

젊은 나이에 시애틀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200여명이었던 교회를 10여년 만에 4000여 명의 믿음의 전당으로 만들 수있었단다.

워싱턴주에서, 엘에이나 뉴욕도 아닌 곳에서, 

한인교회에 그 만한 숫자의 신자들이 모일 수있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일까?

부임당시 그는 지기들로 부터 크게 만류함을 받았단다.

그 이유는 당시 200여명의 성도들이 섬기는 [형제교회]는

대부분 60세 이상의 노령자들로 모였고,

신자들간의 극심한 반목 속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세를 얻어 사용하던 교회공간을 내어 놓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해야하는 정황 때문이었단다.

그가 부임할 당시 목사인 그는 가장 어린 나이었고,

그와 동련배라 할만한 사람조차 하나도 없었단다.

 

문제는 이사할 곳을 놓고,

성도들 간에 한발자욱도 양보할 수없는 극도의 분열로 치닫고 있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느날 어느 권사님이 불러서 "급하니까 무조건" 만나자고 하시어... 갔더니...

'목사님 절대로 남쪽으로 이사하면 안됩니다.' "

또 어느날은

"아무개 장로님이 식사를 같이 하자 완강히 권하니... 기꺼이 응하였는데...

'목사님, 북쪽으로 이사하면 큰일 납니다.' "

그 반목과 갈등의 골은 몇년간을 지속하였고,

교회는 영적으로 피폐하기 이를 데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는 것이다.

 

권준 목사는 이를 어찌 풀었을까?

그의 애절한 기도의 끝에,

하나님은 무엇으로 해결의 길을 열어 보이셨을까?

성령의 인도함은 무엇이었을까?

 ... 

 


[업데이트]


- 피치 못할 사정으로, 5시간 후에 마무리를 짓습니다 -

 


늘 살아온 데로,

오직 [아메리칸 드림]과 자녀교육이라는 충정(?)하나로 살다가,

이제는 안정된 기반아래 웬만큼 편안한 삶을 구가하게 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섬기는 [교회가 멀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크나큰 이해관계의 이쓔로, 뜨거운 감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동쪽으로나 서쪽으로 갈 수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었다.

교회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가운데,

성도들간의 반목 때문에 영적으로 더할 수없이 황무한 지경에 이르렀단다.


많은 시간의 연구와 노력, 토의, 기도와 간구의 시간이 흘렀다.

담임목사의 갈급한 기도 덕분이었을까?

하나님은 마침내,

광야에 내던져져 방황의 길을 헤메이는 양들에게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심을 저버리지 않으셨다.


2세들에게 어떻한 믿음의 유산을 물려줄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살 길입니다."

교회와 방황하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내에 놓은

권준 목사의 해법은,

"믿음의 아들과 딸들을 위해, 우리들이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의 외침은 성령의 역사하심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기 시작하였단다.

"그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래!"

그들은 서로 양보하기 시작했고,

반목하고 있던 사람들을 껴안기 시작했다.

교회의 분열은 끝나가고 있었다.


마침내 교회는 새로운 곳으로 옮겨 갔으며,

그 장소는 많은 사람들에게,

평균 40여분을 운전해야 당도할 거리에 놓이게 되었단다.

교회에서 가장 가까이 살기로 손꼽히는 곳에 살다가,

이제는 60여마일을 달려야 찬양대를 섬기고,

예배를 겨우 드릴 수있게된 필자로서는,

그 어려움이 적지 않음을 너무도 잘 아는 터이다. 


기적이 일기 시작했다.

젊은이 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떠나가는 2세들] (? 이에 대해 나중에 논해 보기로 하자) 이 속속들이 돌아오고 있었단다.

마치 떠나간 탕자를 맞는 아비의 심정이 되었다는 성도들은,

기쁨으로 충만한 나날이 되었고,

젊은이들을 위해, 아예 농구장(?) 과도 같은 공간을 만들어 놓고,

본 예배를 드리기도 했던모양이다.

성도들은 먼거리를 이동하며,

교회를 오가는 문제를 이겨 내었음은 물론이거니와,

믿음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한다는 사명에 불타기 시작했단다.

그들은 하나가 되었고, 자신들이 변화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기도하고 찬양하며 예배드리는 가운데에...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사경회에서 권준 목사의 말씀선포는 계속되고 있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한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기를 빼놓지않은,

강사는,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의 힘]으로 가능했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2세들을 위해 내어놓은 방안은 하나의 방법론이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켜간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어느날 예배를 마치고 예배당을 나오는 권사님을 뵈며..."

그의 사랑의 말씀 선포는 계속되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며, 악수하는 장로님을 대하며.."

"그들을 부둥켜 않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그렇게 사랑하게 되었고,

성도님들 또한 저를 그렇게 뜨겁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권준 목사의 간증적 예배는 끝으로 치닿고 있었다.




"제가 그분들을 사랑하고,

그분들이 저를 그토록 사랑하니,

제가 하자는 일들은, 모두 그분들이 진정으로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니 못할 일이 없더랍니다."



그의 전하는 말씀이 귓가의 청량제가 되어 들리고 있었다.

부정과 비판만이 아닌..., 

어쩌면 어두움으로만 치닿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한 신자의 삶과 그 돌이킴이,

새로운 희망과 긍정의 신선한 바램 속에서,

빛이 되어 넒은 예배당에 울리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신선한, 그리고 놀라운 충격이었다.

이제는 좀 더 밝음 속에서 반추할 수 있으리라.

덕분에.




 

 

사랑, 기독교 본질, 형제교회, 권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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