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가야 하는 이유
10/18/201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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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온 글입니다.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朝鮮칼럼 The Column  / 입력 2019.10.19 03:17>

광화문에 구름처럼 모인 건 위태로운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다

한 줌의 자유를 지키고 자유의 땅을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다


'검찰 개혁'을 위해 서초동을 가득 메운 시위대 사진을

만약 어떤 외국인이 외신(外信)으로 접했다면 대한민국을 대단한 독재국가로 상상할지 모른다.

마치 남미 군부독재 치하에서 사람들이 실종되듯,

가족 중 한두 사람 검찰에 잡혀가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저렇게 많은 사람이 나와서 촛불을 들까.


국가 권력인 검찰은 무고한 시민에게 온갖 정치적 탄압을 일삼고,

인권 보호 없이 잠도 안 재우고 조사하는 극악무도한 조직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막상 사람들을 보니 노란 풍선을 들고 색깔 있는 티셔츠를 맞춰 입고 방석 깔고 앉아 있다.

그런 여유를 부릴 사치스러운 주제가 아닌데, 이상하다고 여길 것이다.


노란 리본을 미키마우스 머리띠처럼 두르거나 태극기를 나눠 들고 흔드는 건,

시위 공화국의 세련된 소품 사용 문화라고 넘어가자.

그래도 걸리는 건 '검찰 개혁'이라는 논제다.

무엇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바꾸자는 구체성이 생략된,

"잘살아보세" 같은 이런 구호로는 어떤 변화도 이끌어 낼 수 없다고 논쟁 교과서는 가르친다.


'검찰 개혁'과 쌍을 이루는 '조국 수호'라는 논제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논쟁은 현 상태의 변화를 목적으로 한다.

지금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그대로 있으라고 데모를 하지는 않는다.

또 개혁은 과정이지 끝을 보는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물러난 법무장관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끝을 보겠다"며,

마치 돈키호테가 풍차에 달려들듯 몰아치다 홀연히 사라졌다.


그의 머릿속 "끝"이 무엇인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나도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무엇을 어찌 바꿀지 모르는 상황에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갈 수는 없다.

'검찰 개혁'과 함께 나란히 대통령이 주문한 '언론 개혁'도 마찬가지다.


그게 기자 입장의 개혁인지, 취재원 입장의 개혁인지, 사주 입장의 개혁인지, 광고주 입장의 개혁인지,

아니면 정권 입장의 개혁인지, 각기 머릿속에 다른 그림을 갖고 다른 조(調)의 노래로 목청을 돋우는데,

어느 장단에 맞춰 머리에 끈을 두르고 나서란 말인가.


사람은 언제 마음속 생각을 거리의 행동으로 옮기는가.

동물과는 다른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이 제시한 다양한 이론 중,

'사회적 저항 이론(reactance theory)'은 인간이 "자유가 위협당할 때 반응한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갖고 있는 자유가 위협당하거나 빼앗길 것 같을 때,

그 자유를 되찾기 위해 저항(행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한정판으로 나온 물건을 사고 싶어 하거나(나중에 살 자유가 사라지므로),

그냥 놔두면 할 일을, 시키면 오히려 멈추는(선택의 자유를 앗아 갔으므로) 것이 여기 속한다.


이론은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경험한 자유에 비례해 저항의 크기도 커진다고 말하고 있다. 잃을 것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군이 페르시아군을 크게 무찌른 이유도 비슷하다.

당시 아테네군은 자유인으로 구성되었던 데 비해 페르시아군은 징병당한 노예들이었다.

전쟁에서 지면 노예가 되는 걸 누구보다 싫어한 아테네 군인들은 결사 항전했고,

제2차 페르시아 전쟁을 역사에 남는 승리로 이끌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이 스스로 물러난 배경에 대해 광화문 시위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는데,

그 많은 사람이 국무위원 한 명 파면시키자고 그렇게 구름처럼 모였다고 생각하는 건,

미몽(迷夢)에 가까운 착각이다. 조국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

사람들이 광화문에 간 건 위태로운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반성 없이 오만한 사회주의 추종자가 법을 앞세워 나라의 자유를 제한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어서였다.


자기에겐 무한한 자유를 허하면서 남의 자유를 우습게 아는 위선을 꾸짖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이 광화문에 간 건,

수많은 사람의 사회적 행동을 신기루 보듯 무시하며,

국민의 절반을 유령 취급하는 대통령의 기막힌 대응이,

으로 어떤 무자비한 자유 억압으로 재현될지 두려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다.


이런 지도자가 이끄는 정부는 존재 자체가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다.

그래서 광화문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저항 공간이라면 어디라도 나가야 한다.

그나마 누려오던 한 줌 자유라도 지키기 위해, 자유로운 땅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 스스로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기 위해, 광화문으로 가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18/20191018030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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