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오는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10/21/201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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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싹을 자른 통일부 장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1/2018102101664.html

                             

글 쓴이 :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남북 고위급 회담 취재에서 탈북민 출신 기자 배제
언론자유·人權의 싹 자르고 탈북민 보호라는 본업 버려
북한과 '코드' 맞추는 사이 언론과 민주주의는 죽어가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이 땅의 표현의 자유가 이렇게 몸살을 앓을 줄.

그것도 마치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행동해온 자칭 '민주 정부'하에서.

북에서 온 손님(현송월)의 육성조차 내보내지 말라거나 정부 공식 발표를 받아 쓰라는

기이한 '신(新)보도 지침'이 산성비처럼 하늘에서 내리더니

자신들의 관할도 아닌 유튜브를 제재하겠다거나,

정의조차 모호한 '가짜 뉴스'에 권력의 칼을 들이대겠다고 한다.

그들의 거침없는 남북 화합의 길에 남한의 자유 언론은 없어도 좋을 거추장스러운 물건 취급을 받는다.

며칠 전 통일부는 남북 고위급 회담 풀기자단에서 탈북민 출신 기자를 배제했다.

장관은 TV에 나와 "정책적 결정"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대변인 시켜서 에둘러 말해도 모자랄 부끄러운 결정을 장관이 직접 나서서 설명했다.

그는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는 것 같다.

한국기자협회 등은 성명서에서 "과거 군부 정권하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군부 정권이라면 불과 몇십년 전 일이다. 통일부 장관이 한 일은 그보다 훨씬 전,

표현의 자유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을 법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표현의 자유는

인간들이 표현하는 것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꾸준히 확장해온 투쟁의 결과다. 초기에는 왕과 귀족만이 누리던 자유가 시민과 평민으로 확장되었고,

여성과 유색 인종과 이교도로 범위를 넓혀갔다. 처음에는 불온한 생각을 처벌했고,

그런 표현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사전에 막았다.

그 후에는 기왕에 나온 말이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일 경우에만 처벌하다가

그것만으로는 표현의 자유가 부족하다고 하여

'직접 선동'의 가능성이 있을 때 처벌하는 것으로 다시 범위를 확장시켰다.

요즘은 '취향'이나 '예술' 혹은 '정치적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사상과 언어들이 넘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 길고 긴 역사에서

통일부 장관의 '정책적 결정'은 문제가 되는 표현이 애초에 나오지 않도록 사전에 막은,

언론 자유 미(未)발달사의 장(章)에 등장할 사례에 속한다.

영미법에서는 이를 '나쁜 경향(Bad tendency)'법칙이라고도 하고,

거슬러 올라가면 영국법의 '싹 자르기(nip it in a bud)' 전통에 그 뿌리가 있다.

문제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말하자면 어떤 생명이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 배 속에서 죽여버리는 가장 강력한 억제 수단이다.

근대 언론의 탄생과 궤를 같이하는 표현의 자유란 인간의 기본권이다.

영국에서는 17세기 존 밀턴의 사상을 시작으로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치열한 사변(思辨)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확장해나갔고,

이에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수정헌법 제1조를 만든 미국은

20세기 초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확장하며 언론 자유의 지평을 개척해 나갔다.

정리하자면 통일부 장관이 며칠 전 한 일은 대한민국을 수세기 전 미개국으로 되돌린 사건이다.

그가 자른 것은 탈북민 기자가 아니라 언론 자유와 인권의 싹이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장관은 모르는 것 같다.

표현의 자유나 저널리즘에 대한 대단하게 깊은 지식이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탈북민을 향한 연민과 이해가 조금만 있었어도 쉽게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죽음의 능선을 넘어 자유를 찾아 이 땅에 온 탈북민이 3만2000명이 넘는다.

대한민국 국민이 된 그들의 정착을 돕고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통일부의 본업 아니던가.

탈북민 김명성 기자가 자유세계에서 저널리스트로서 성공하도록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요주의 인물로 낙인을 찍었다.

남으로 온 북한 사람도 포용하지 못하는 정부가

무슨 수로 북에 있는 사람들과 통일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북한과의 교류 협력에 능한 정부일지 짐작은 했지만

대통령이 외신으로부터 '북한 대변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

민족을 중시하는 정권인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가 사회주의 독재 체제까지 용인하는 지경인 줄은 몰랐다.

여당 대표는 자신들이 투표로 당선된 유한한 정권임을 망각하고 50년을 집권하겠다고 호언한다.

통일을 위해서라면 자유도, 민주도, 인권도 다 버릴 기세다.

정부가 번번이 북한과 '코드'를 맞추는 사이

대한민국의 자유는 북한 수준으로 내려가고,

민주주의는 권력의 거수기로, 언론은 마우스피스로 변해가고 있다.

그렇게 자유가, 언론이, 인권이,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1/20181021016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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