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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김혜자(nancy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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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체온
11/21/201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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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동양의 파리라 불리던 만주의 하얼빈 (Harbin)은 내가 태어난 곳이다. 처음으로 세상과 만나 숨을 쉬고 햇빛을 본 곳. 꼭 함께 가자고 아버지가 말씀 하신 곳이다




  아무도 반겨줄 따뜻한 손길이 없어도 아버지의 유언 따라 가야만 했던 곳. 누구나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 호기심과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고향이란 말은 어린 시절과 연결되어있다. 유년기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아버지를 그리게 된다




  와싱톤 주에서 하얼빈까지 36시간이 걸린 길고 지루한 여행길이다. 아버지와 함께 와보고 싶었던 나의 탯자리. 아버지 대신 남편이 나의 손을 잡고 초라한 하얼빈 공항에 도착했다. 먼 길이지만 과거를 찾아 떠나기에 설렘과 기대와 흥분으로 피곤한 줄 몰랐다. 심장이 마구 뛴다. 새벽 1시가 넘어 중앙대가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지만 지칠 줄 모르는 눈망울은 초롱초롱하다




나의 첫울음을 듣고 기뻐하신 아버지를 상상해 본다. 서열을 따지는 경주김씨(慶州金氏) 집안이지만 아버지는 항렬(行列)을 무시하고 은혜로 태어났다고 혜자(惠子)라고 이름을 지어 주셨다. 나는 형제와 사촌과는 달리 족보에 돌림자가 없는 이름을 가졌다.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나를 무척 사랑하셨다.




남동생이 태어난 후에도 장손 보다 더 많이 나에게 신경을 쓰셨다. 손님이 오시면 앞에 나와 노래를 부르게 했고 칭찬과 함께 아버지 무릎에 앉아 식사하는 특혜를 누리며 자랐다. 아버지는 백두산 호랑이라 불릴 정도로 남에게는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셨지만 나에게는 풍성한 사랑으로 감싸주신 분이다. 이렇듯 나의 유년시절은 어머니보다 아버지의 사랑을 더 짙게 느끼며 보냈다




나는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는 미국인과 결혼을 했다. 아버지는 경찰서장이라는 직업에서 온 경향도 있지만, 미국에 혜택을 받아야 하는 한국 실정을 늘 가슴 아파하셨던 것이 큰 이유였을 것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미국은 우리에게 혜택을 주는 것만큼 한국에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간다고 늘 말씀하셨다. 가장 사랑하는 딸이 미국인과 결혼을 했으니 아버지는 나라만 뺏긴 것이 아니라 딸도 뺏겼다고 생각하셨다. 이렇듯, 나는 자식 중에서 가장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딸이 되었다




불효가 죄스러워 효도하는 길은 내가 잘 사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주한미군 고문 변호사인 남편과 함께 미국에서 한국으로 전근 왔지만, 그것도 아버지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가 없었다. 아버지 가슴에는 언어와 풍습이 다른 외국인과 결혼한 불쌍하고 가슴 아픈 딸이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식 곁에 있고 싶은 것이 부모들의 마음이건만, 아버지는 온 식구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됐을 때 미국행을 거절하고 한국에서 혼자 사시다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움과, 불효에 대한 뉘우침이 나를 하얼빈까지 오도록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영혼과 만날 수 있는 곳이 하얼빈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꽁꽁 얼어붙은 땅에 눈이 쌓이는 밤거리를 본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세찬 바람을 타고 온 천지를 나르며 춤을 추고 있다




누구에게나 고향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는 고향이 없는 고아처럼 느끼며 살았다. 나의 고향은 어디에 있나? 스스로 되묻기도 하며 고향의 향기를 애써 외면하기도 했다.

 



고향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또는 부모의 고향이 내 고향이기도 하다. 오래 정 느끼며 사는 곳이 고향일 수도 있고 정신적(精神的) 귀의처(歸依處)도 고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가장 오래 살고 있는 미국이 나의 고향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미국 속담에 ‘You can take the girl out of the country, but you can’t take the country out of the girl’이란 말이 있다. 누구나 환경은 바꿀 수 있지만, 뿌리는 좀처럼 쉽게 바꿀 수 없다는 이야기다.

 

내가 태어나긴 했지만, 기억이 없는 부모의 고향이 내 고향이 될 수 없다. 다만 유년기를 지낸 서울이 나의 고향으로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함께 보낸 학교 친구들과 나눈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세계화의 주역이 된 서울과 달리 형제와 친척이 없는 도시 하얼빈은 너무 낯설다.



 

더 이상  갈 곳도 없고 쉴 곳이 없다. 작곡가 홍난파의 노랫말처럼 나의 고향의 봄은 어디일까? 목청을 돋우며 불러 볼 고향이 딱히 없어 안타깝다. 찾아갈 고향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은 고향을 두고도 갈 수 없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고 살 곳이 없다는 근원 상실감(根源 喪失感)이 나를 또 다른 고아로 만들고 있다.

 

(조선문학 2017 10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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