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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몰리 말론의 영혼 (Ireland 여름 여행 - 2회)
08/19/201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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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Dublin)은 아일랜드어로는 ‘단단히 다진 땅의 도시’ 

또는 영어는 ‘검은 웅덩이’라는 

게일어(Gaelic Words)에서 유래된 말이다


더블린은 아일랜드섬 동부 리파 강 하구에 위치에 있고 

아일랜드 바다(Irish Sea)를 넘어 위도 상 동쪽 

영국 잉글랜드 리버풀을 바라보고 있다

유럽에서 3번째로 큰 섬인 아일랜드


들여다보면 볼수록 풍성한 이야기가 있는 더블린.





오늘은 아일랜드 민속 노래 속  

주인공인 몰리 말론(Molly Malone)를 찾아 나선다


녹색 잔디 위로 빛나는 햇살을 밟으며 세인트 스테판 그린 

공원(St. Stephens Green Park)을 지나, 서울의 명동 길거리와 같은 

그라프턴 거리(Grafton Street)으로 향한다


주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다는 더블린의 여름 거리

여기저기에서 음악이 흐른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음악을 참으로 좋아한다

아일랜드의 역사만큼 민요 노래도 많은 것 같다.


몰리 말론는 아일랜드 전래 동화에 나오는 인물로 Jeanne Rynhart가 

디자인한 동상이 1988년 더블린 Grafton 거리에 세워졌다





앞 가슴이 드러난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몰리 말론는 

한국의 콩쥐 팟쥐 처럼 만들어 낸 가상 인물이지만

영국 식민지 시절 궁핍했던 아일랜드 사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녀에 관하여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낮에는 일륜차 끌고 생선, 홍합, 조개를 파는 생선 장수

밤에는 Trinity 대학 근처에서 몸을 파는 매춘부이란 전설과 함께 

찰스 2(Charles II)의 연인의 예명이라는 설도 있다

낮에 생선을 팔던 아름다운 소녀는 열병으로 어린 나이에 사망한다


몰리 말론이 죽은 후

거리에서 생선 손수레 끄는 소리가 밤마다 들린다고 한다

역사를 상징하는 몰리 말론의 동상을 때로는 

‘매춘부와 수레(The Tart with Cart)’로 부르기도 한다.




몰리 말론의 노래는 우리나라 아리랑과 같은 멜로디고 

무장 독립 투쟁을 벌인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광복 군가(軍歌)로 사랑을 받는 곡이다


역사상으로 증거는 없지만 20세기 후반에 몰리 말론을 

실제 역사 인물이라고 가정하기 시작하였다

몰리 말론 동상을 세워진 1988 더블린 Ben Briscoe 시장은 

6 13을 ‘몰리 말론의 날’로 선포하였다.


 몰리 말론의 한()이 남긴 노래는 축구 경기에서 응원가로 

부르기도 하고 더블린 사람의 사랑을 받은 곡이다



궁핍의 가난으로 낮에는 생선 장사

밤에는 음산한 더블린 밤거리를 배회하며 몸을 팔았던 여인을 

더블린의 사람들은 역사 속의 자신들의 불행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몰리 말론의 동상은 가장 많이 촬영된 동상 중의 하나며 

그녀의 모습은 가장 뜨겁게 팔리는 인기 있는 기념품이다





아일랜드 12세기부터 영국의 식민지였다

17세기 영국 신교도 (개신교도)가 대거 아일랜드로 이주하며 

구교도(가톨릭교도) 원주민을 탄압하여 종교적 갈등이 더 심해졌다


1801년 아일랜드는 웨일스, 스코틀랜드처럼 

대영국제국의 일부로 완전히 병합돼 버렸다


그 후 아일랜드는 독립 운동에 불은 붙었고, 수많은 피가 또다시 

아일랜드 땅이 적신다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을 선두로 독립 운동 무장 투쟁(1969-1997)이

시작되며, 30년간 3,700여 명이 사망, 47541명의 부상자의  

 본격적인 영국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의 결과로 1921년 아일랜드는 남쪽 26개 주는 독립을 했고

신교도가 많은 북부 아일랜드 6개 주는 영국 지배령으로 남아

현재 북아일랜드라고 부르게 된다


그러나 북아일랜드 독립 투쟁을 주장하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단체는 

테러로 변했고, 영국은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강경한 진압에 대응하였다.



 

 아일랜드의 전쟁의 종식을 위해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Toney Blair)는 

북 아일랜드 수도 벨바스트(Belfast)를 방문하고 대중 앞에서 영국이 

저질은 모든 부당한 행위를 사과한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도 오랜 양국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테러의 위험을 무릅쓰고 2011년 아일랜드 방문했고 

독립 전쟁 중 사망한 광복군에게 조의 표했다

물론 반대하는 반항의 시위도 있었지만 

아일랜드 국민 1/3이 여왕의 방문에 마음을 열고 환영하였다


그 후, 마이클 하긴스 (Michael Higgins) 아일랜드 대통령과 

북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맞서 무장투쟁을 열린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사령관을 지낸, 1부 장관인 마틴 맥기네스(Martin McGuinness)를 

런던 윈저성으로 만찬 초대했다




아일랜드 정부 수반 이후 영국에 첫 국빈으로 초청을 한 

마이클 하긴스 대통령과 영국 여왕의 사촌을 죽인 IRA 앞에서 

영국 여왕은 ‘과거에 미래가 저당 잡혀서 안 된다’는 화해의 건배와 함께 

아일랜드 민요 ‘몰리 말론’ 광복 군가의 노래가 연주되었다.


솔직한 과거사의 반성

강한 나라를 옆에 둔 지리 조건으로 운명처럼 

영국에 침략을 당한 아일랜드


오랜 세월 동안 유혈(流血)로 얼룩진 어두운 기록을 덮고 평화를 

갈구하는 한 장의 역사를 덮고 다음 장으로 화해의 손을 잡았다.





 아일랜드의 역사와 민속 음악를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나라

과연 한국은 가공의 인물인 Molly Malone 같은 인물을 동경하며 

명동 복판에 동상을 만들고 그녀를 그리는 멜로디를 군가로 채택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도 비애와 한()의 맺힌 역사적 기록이 수없이 많다

일본의 위안부, 병자호란 때 인질로 끌려간 아낙네


최명길(崔鳴吉)의 지천 집(遲川集)의하면

청나라는 명 나라를 치기 위해 부족한 인력을 

조선 인으로 충당하려고 침략했다





조선은 삼전도(三田渡)에서 청나라에 

삼궤구고두례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을 당한 채 항복했다

 당시 청나라에 잡혀 간  조선 사람이 66여만 명이고 

그 중에 여인이 반을 차지했다고 한다.   

 

청나라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여인들은 남한산성으로 

도망갔고, 겁탈 수모를 피하여 많은 아낙네는 바다에 몸을 던졌다


바다에 떠 있는 여인들이 머리 수건이 마치 

연못 위 바람에 불어 떨어진 낙엽처럼 많았다고 전해 온다.





수많은 여인은 포로로 잡혀 몽골로 끌려가 첩이나 노예가 되었다

그중에는 노예 몸값을 지불하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행운의 여인도 있었다


1637년 인조 15, 환향녀(還鄕女 -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이란 

용어가 이때 생긴 말이다.


돌아온 여인은 정조를 잃었기에 차마 귀향하지 못하고 

청나라 사신들이 묵던 서대문 밖에 머물렀다


조선 왕은 여인에게 냇물에 몸을 씻겨 그들의 정절을 회복해 주었다

홍제천(弘濟川)과 홍은동(弘恩洞)의 지명이 이름이 이때 생긴 것이다.  





 여성의 직위가 격하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병자호란

나라와 여자를 제대로 지키지도 못한 조선 남자는 

볼모로 잡혀 곤욕을 치르고 돌아온 

환향녀를 냉엄(冷嚴)하게 거절했

 

인조 실록의 의하면 수많은 진정서가 올라왔다고 한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라며 

많은 진정서가 몰려 왔다. 


1638년 신풍 부원 장유(張維)는 ‘제 외아들의 처가 청나라군에 잡혔다가 

몸값을 주고 귀국하여 친정 부모 집에 머물러 있습니다

선조의 제사를 받을 수 없는 환향녀하고는 살 수 없으니 

새로 장가들도록 조정에 진정서를 올렸다.

 

보호하지 못한 자신들을 탓하는 대신 아녀자들이 

순결을 지키지 못하고 자살하지 못한 것을 탓했다.

 

또한 반대 입장의 상소도 올라왔다. 

'제 딸이 청나라에 사로 잡혔다 돌아왔지만, 사위가 새 장가 들려고 하니 

원통해 못 살겠다’는 진정서도 올라왔다


자기 아들은 환향녀를 받을 수 없고

사위가 새 장가 드는 것은 원통하다니…..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이 아닌가?.



지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지만, 수 없는 외세(外勢)에 치욕스러운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과 아일랜드


몰리 말론의 영혼을 사랑하는 더블린 사람은 축구 응원가로

또는 아일랜드의 광복 군가로 더블린 거리에 그녀의 노래가 울리지만




약소(弱小)국가에 태어나 

무능한 임금 밑에서, 못난 아비, 못된 남편을 만나 

인질로 끌려 온갖 수모를 당하고 돌아온 '환향녀'의 

낙인 찍힌 여인들은 갈 곳이 없었다


칠거지악(七去之惡)의 냉대와 학대를 받은 

그녀의 앞 길은 한숨과 절망 뿐이다.


 

 

마음이 어둡고 슬프다

환향녀의 옭아 맺던 밧줄과 고통은 살아졌지만 역사에 새겨진 

그녀의 한숨과 가슴앓이 울음소리는 삼각 산 골자기에 

뼈 아픈 역사의 한 조각으로 잠들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몰리 말론의 노래가 들린다.

지는 세월 몸에 슬픈 나이테를 두른 환향녀의 육() () 위하여

그녀들을 위로한 뜨거운 기도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조국의 하늘을 향하여 드려본다. 

  

그동안 불러그 뉴스 시민 기자의 글로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여러분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Camas, Washington에서,

김혜자 블러그 뉴스 시민기자

안녕




더블린 몰리 말론의 영혼, 병자호란, 환향녀(還鄕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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