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cyMoore
수필가:김혜자(nancymoore)
Washington 블로거

Blog Open 04.15.2016

전체     97384
오늘방문     123
오늘댓글     4
오늘 스크랩     0
친구     19 명
Blog News Citizen Reporter
블로그 뉴스 시민 기자
  달력
 
새 하늘 새 땅, 미국 서부 탐험을 도와준 사카가위아 여인 Part II
05/17/2019 05:11
조회  2344   |  추천   26   |  스크랩   1
IP 24.xx.xx.17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호사유피 인사유명  虎死留皮 人死留名)이란 말이 있다

사람은 죽고 난 후에 업적 이외에는 남길 것이 없으니 살아 생전 훌륭하게 

살아서 이름을 훗날에 남기도록 노력하라는 뜻이 담긴 말이다.






1803년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서부 지역 대 탐험을 위해 신뢰했던 자신의 개인 비서 

메이웨더 루이스(Meriwether Lewis) 대위를 지휘관으로 

원정대를 조직하였다


막중한 책임을 맡은 루이스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윌리엄 클락(William Clark)에게 공동 지휘 관직을 제안하여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루이스와 클락(Lewis& Clark)’의 탐험대가 구성되었다


그들은 미주리강 상류의 강한 물살, 인간을 주저 없이 공격하는 

공포의 큰 회색곰(Grizzly Bear), 인디언 종족 등의 온갖 난관을 겪으며 

서쪽 태평양으로 향했다.




루이스와 클락은 원정 도중 모피 사냥꾼 투상 사르보노(Charbonneau)와 

그의 아내인 인디언 여인 사카가위아(Sacagawea)를 만났다

이 여인은 훗날 미국 역사에 중요한 이름을 남긴 여인이다


투박하지만 또렷한 눈매를 가진 여인

미국 개척 사에 존경을 받는 원주민의 여인. 사카가위아라는 이름은 

인디언 말로 배를 띄우는 여인이란 뜻이다


어릴 적 히다차(Hidatsa) 부족에게 납치되어 

프랑스 출신 캐나다인 사냥꾼에게 팔린 여인이다

그녀는 16살의 임신한 몸으로 루이스와 클락의 탐험대에 일원이 되었다.





그녀는 길고 고통스러운 산통 끝에 아들을 낳았다

그의 이름은 장 바티스트 사르보노(Jean Baptiste Charbonneau)라고 

이름 불렀다


인디언이 차지한 지역을 통과할 때 갓난아이를 둘러 업은 

그녀는 앞 장을 서서 길을 안내 했고 가는 곳마다 

원주민 인디언에게 탐험대는 전쟁의 의도가 없다는 통역을 해 주었다


온화한 인상의 그녀와 순진한 유아의 모습은 

수천 수만의 인디언이 사는 지역을 

33명의 원정대가 싸움 없이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각 곳에서 군부대 최고의 병사가 선발되고 노련한 사냥꾼으로 조직된 

원정대였지만 험한 조류에 카누가 급류에 휘말려 귀중한 자료인 일기

기록과 물품 상자가 강물에 휩쓸려 내려가자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보고만 보고 있었다


사카가위아는 젖먹이 아들을 업은 채로 

강에 뛰어들어 

중요 서류와 물건을 건져온 용맹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들 산에서 채집한 식물과 풀뿌리로 떨어진 식량 대신 보충했고

병든 대원에게 약초를 구해 의사 대신 치료를 해주었다

또한, 험한 길을 잃고 방황할 때 직감적인 본능에 의해 

올바른 길을 찾아냈다





탐험대가 미 중부의 대 평원을 건너 로키산맥을 넘기 위해 부근 

쇼숀족(Shoshone Indian) 인디언과 거래하는 도중 그곳이 

바로 그녀의 고향이며 그녀의 오빠가 부족 장인 것을 알게 되었다

생이별했던 가족을 다시 만남 오빠의 호의로 

원정대는 말을 얻을 수가 있었다





탐험대는 그녀가 고향을 찾은 것은 다행 한 일이지만 

태평양까지 안내 인이 필요하여 그녀에게 안내를 간청했고 

그녀는 당연히 승낙하였다





루이스와 클락의 기록에 의하면 

그녀는 2년이 넘는 험난한 여행 도중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는 칭찬의 글이 적혀있다.


혹한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우여곡절 끝에 원정대는 결국 강 폭이 좁고 

물살이 급한 컬럼비아 강을 타고 드디어 긴 여정의 목적지인 

오리건 지역 태평양 연안에 도착하였다.



루이스와 클락은 약 5개월 동안 

각종 조사를 하고 돌아가는 여정을 준비했다.




 그들은 사카가위아에게 제퍼슨 대통령를 소개 하겠다는 간청했지만

그녀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가족과 부족과 함께 살기로 원하여 거절했다



한 번 왔던 길이라 돌아가는 여정은 훨씬 빨랐다.



백악관으로 돌아온 루이스와 클락은 그녀의 도움에 감사하여 

1800년대의 그녀는 가장 훌륭한 여인으로 추대했고 

오늘날까지 미국 역사에 그녀의 이름이 남게 되었다





1812년 사카가위아는 아들과 어린 딸 리제트(Lizette)를 남기고 

이름 모를 병으로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03년 루이스와 클락 탐험대 100주년 기념식에서 

그녀의 이름은 또 한 번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그녀는 여성의 독립성과 진취적인 기상의 상징으로 

1999년 아들을 업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그려진 

기념 주화가 발행되었다.

 

 

2001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명예 상사의 타이틀 

(Title of Honorary Sergeant, Regular Army) 증정되고

그녀가 묻힌 포트 와샤키 (Fort Washakie) 지역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She has become an important part of the Lewis and Clark legend in 

the American public imagination. 

The National American Woman Suffrage Association of the 

early twentieth century adopted her as 

a symbol of women’s worth and independence, 

erecting several statues and plaques in her memory, 

and doing much to spread the story of her accomplishments. 




그녀의 이름은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미국 역사상에 영원히 기록되고 있을 것이다.



Camas, Washington State에서

김혜자 블러그 뉴스 시민기자



새 하늘 새 땅, 미국 서부 탐험을 도와준 사카가위아 여인
이 블로그의 인기글

새 하늘 새 땅, 미국 서부 탐험을 도와준 사카가위아 여인 Part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