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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혜자(nancy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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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dom
06/21/202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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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 보훈의 달 6월이다

현충일과 가장 중요한 기념일인 6.25가 있다

한민족인 남.북이 서로 총부리를 겨눈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전쟁이 

바로 한국전쟁이다


2차 대전이 끝나면서 한국은 1945 8 15일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꿈에 그리던 광복을 맞이한다

자유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과 공상 진영을 대표하는 소련의 냉전은 고조되며 

한반도로 갈등으로 이어진다






북위 38도 선을 경계로 남한은 미국, 북한은 소련군의 신탁 통치로 

단일 정부 수립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1950 6 25일 새벽, 북한군이 남북 군사 분계선을 남침으로 

6.25전쟁이 시작된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영웅을 탄생시킨다

D-Day 글을 쓰면서 많은 세계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세계 1차 대전은 West Point 출신, 미군 원정군 총사령관 블랙 잭별명을 가진 

존 퍼싱 (John Joseph Pershing)이 영웅으로 등장한다

당시 맥아더 장군도 퍼싱 장군 보좌관이었다.





 

세계 2차 대전은 West Point 출신, 맥아더 장군의 보좌관이던 

드와트 아이크아이젠하워(Dwight "Ike" Eisenhower)가 

연합군 최고 사령관으로 영웅이 탄생한다

그 후, 그는 34대 미국 대통령이 된다.




 

한국 전쟁 때는 스코틀랜드의 이민자 군인 가문의 아들, West Point 출신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이다

그는 West Point 수석( 평균 98) 졸업생이다.  




 미국 역사적으로 두 명의 대 원수 ( 6성 장군)가  존재한다

기갑 부대를 이끌어 세계 1차 대전에서 승리한 존 퍼싱 장군과, 

조지 워싱턴 장군이 6성 장군이다




1976년 제럴드 포드(Gerald Ford) 미국 대통령은 육군 준장이던 

조지 워싱턴을 대 원수 3계급 진급으로 6성 장군을 탄생시켰다

최초의 현역 대 원수는 퍼싱 장군 한 사람 뿐이다



1, 2차 대전에 출전한 조지 패튼(George S. Patton) 장군이 있다

한 때 조지 패튼과 아이젠하워 두 장군은 참모 총장 맥아더 보좌관을 지냈다

 

  


1, 2차 대전에 출전한 패튼 장군은 5성의 별을 못 달고 별 4성 대장으로 은퇴했다

그는 제1차 대전 당시 퍼싱 장군에게 발탁되어 미군 최초의 기갑부대 지휘관이 된다

패튼 장군은 시사 주간지 타임에 가장 칭송받은 장군으로 

이기지 못하면 한 명도 살아서 돌아오지 마라는 교훈을 남긴 저돌적인 장군

미국 전쟁사의 명 장군으로 기록된다. 


패튼 장군 역시 스코틀랜드 이민자 출신 집안으로 West Point 출신이다

싸움닭이란 별명처럼 그의 대담한 성격과 발언으로 아이젠하워

또는 동년배보다 진급이 늦었다


아이젠하워는 웨스트포인트 5년 선배인 패튼 장군을 가장 신임했다

독일 롬멜 장군에게 격파를 당한 미국 제2 사단 로이드 장군을 해임하고 

패튼 장군 전임한다





패튼 장군은 정신과 육체가 함께 타락한 애송이 군단이란 혹평의 군대를 

바퀴 위의 악귀(惡鬼)”라는 전투력 부대로 기온이 화씨 120도 넘는 

사막에서 2시간 동안 8마일 혹독한 훈련과 탱크의 정비 불량

가혹한 독설로 훈련을 시킨다.


기동전의 신봉자로 알려진 패튼 장군은 영국군의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과 

정반대의 성격으로 자주 전투 논쟁을 했다

불같은 열정의 패튼 장군과 차분한 몽고메리 장군의 투쟁에 

아이젠하워 장군은 중재역을 했다.


영국군 입성을 위해 진군 속도를 줄이라는 아이젠하워 총사령부의 지지를 무시하고 패튼 장군은 독일군의 완강한 전선을 돌파하고 독일 함락의 성공을 거둔다.

 

저돌적인 작전과 욕설로 유명한 장군인 패튼 장군은 전투 신경증으로 

병원에 후송된 병사를 때린 일이 크게 보도된다

언론에 보도로 그를 파면하라는 요구에 아이젠하워 장군을 곤욕에 빠트린다


패튼 장군의 과격한 행동의 결과로 1945년 사령관직에서 해임된다

미국 귀국 하루 전, 트럭과 정면 충돌로 목뼈가 부러지고 

전신 마비의 증상으로 60세의 나이로 그는 운명하였다

군인이 이렇게 죽다니!” 미국의 

전쟁 영웅인 패튼 장군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패튼 장군과 비교되는 적군이지만 독일의 유명한 

롬멜(Erwin Johannes Eugen Rommel) 육군 원수가 있다.

 

아돌프 히틀러의 경호 대장을 거쳐 제 차 세계 대전 때 기갑사단 지휘관의 

능수능란한 기법으로 사막의 여우(The Desert Fox)이란 별명을 가진 인물이다


1941년 리비아 사막 전쟁 때, 그는 폭스바겐 자동차를 탱크처럼 변조하여 

나무로 만든 틀에 색칠한 헝겊으로 위장하여 영국군을 급습했다

사막의 저녁 햇빛을 등에 업고 독일군 폭격기와 거대한 모래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전차 군대 공격에 놀라 영국군은 진지를 버리고 모두 도망했다

사막 싸움은 일방적으로 롬멜 장군의 승리로 끝났다.



 

최연소 50세 때 원수로 승진한 롬멜은  직업 군인으로 정치와는 거리를 둔 장군이다

히틀러의 유대인 부대 포로는 즉각 사살하라는 명령을 그는 무시했다


1942 10 23일 압도적인 물량과 총력의 반격으로 승산이 없는 전쟁으로 

판단한 롬멜 장군은 철퇴 허가를 히틀러에게 청했다


히틀러는 노여움이 폭발하고 승리 아니면 죽음이다

롬멜 장군 퇴장하라라고 냉혹하게 거절한다

그 후,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에 적발되며 저항운동 그룹 중 

롬멜 장군을 추대한다는 것이 발견된다


히틀러는 반역의 혐의로 롬멜 장군에게 명령에 따르면 

가족과 부하들을 용서한다는 약속과 함께 독약으로 죽을 기회를 준다.

 


그의 죽음은 군무 중 부상으로 심장마비라고 처음에 발표되었다

그 후 진실이 발표되고 신화 적인 롬멜 장군은 패전이란 책임을 지고 

음독 자살한 것으로 해명 된다


2차 대전  가장 큰 활약을 펼친 미국의 용장 패튼 장군과 

독일의 지혜로운 롬멜 장군은 각기 자동차 사고와 독배를 마신 

음독 자살로 일생을 마치게 된다

그가 쓴 보병 전술책은 높은 평가를 받는 군사 교본이다.




  휴전이다! 전쟁이 끝났다

국군 장병들이 참호 밖으로 뛰어나오며 환호성을 지른다.

1953 7 27일 마침내 전쟁이 끝났다

유엔군과 공산측 정전 협정이 오전 10시 판문점의 한 막사 안에서 조인 된다

협정에 따라 그날 밤 10시 정각에 약 3 1개월 동안 계속된 전쟁이 끝났다.

 

산하에는 숱한 전투비가 세워졌고 38선 철조망엔 긴장감이 돌고 

피로 물든 강산 곳곳에 묻힌 이름 모를 용사들의 비목과 유해가 

무심한 세월을 한탄한다. 지구 상에 유일한 분단 지역을 만든 6.25의 참상이다.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첫 공식 방한을 1960년이다

서울 시청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초상화와 기념 우표와 기념 담배를 만들었다




열렬한 환영 행사가 이루어졌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한국 경제적 지원과 

미국 한국 상호 방위 조약이 체결된다




몇 장 남지 않은 사진첩에서 그때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경호하셨던 

아버지의 감사장과 사진을 찾아냈다.

 


경무대 (지금의 청와대 뜰 앞에서)


역사의 한 부분으로 아버지가 남기신 기록을 본다

경찰서장으로 6.25 전투의 참전하신 아버지의 활기찬 섬광의 빛살이 

내 심장에서 정수리까지 뻗어 오른다.  





  아무도 예측 못 했던 6.25는 강물이 흐르듯  70년의 세월에 물결을 타고 흐른다

전쟁에 희생된 무명 용사들. 혈기 넘치던 청춘

하나 뿐인 목숨이 사라진 자리.  




젊은 날의 기억 따라, 모윤숙 씨의 시를 생각해 본다. 


산 옆의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포옴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 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죽음을 통곡하며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피 속엔 더 강한 혼이 소리쳐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과 가시 숲을
이순신(李舜臣) 같이 나폴레옹 같이 시이저 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 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머나먼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뻗어 가고 싶었노라




Freedom is not free. 

It Cost Somebody Their Freedom for Your Freedom.  

고맙습니다

진정 고맙습니다



  


Freedom, 한국 전쟁, 국군, 유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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