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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김혜자(nancy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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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비
11/27/201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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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창밖에 안개비가 내리고 있다. 연분홍색으로 곱게 익은 단풍잎이 바람에 날린다.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 슬픈 침묵이 흐른다. 떨어진 낙엽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 든다.


 남강 선생님을 배웅하던 그 날도 오늘같이 안개비가 내렸다. 인명은 재천(在天)이라고 하지만 그의 젊음이 쉽게 사그라질 줄 아무도 몰랐다. 아무 곳에도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그의 흔적이 없다. 보냄은 늘 맞이함보다 앞선다. 길 밖에서 길을 찾아 떠난 그분을 생각하면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그리움이 가슴을 태운다.

 


일평생 사는 동안 누구나 한 번씩은 인생의 길잡이(Mentor)를 만난다. 나는 세 분의 길잡이를 만난 행운을 가졌다. 나를 태어나게 하신 아버지가 첫 번째 분이다. 세상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 나에게 어떤 환경에도 도전하는 용기와 지혜의 교훈을 심어주신 분이다. 아버지의 능력과 역량으로 풍요로운 유년 시절을 살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했다. 아버지의 무한한 능력은 나의 밑거름이 되어 나의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아버지는 내 삶에 산 교육을 심어준 표본적인 선생님이었다.

 


미국이란 세계는 내가 다시 태어나야만 했던 신천지이었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몸에 익은 문화와 습성을 버리고 백지에서 시작하는 출발점이었다. 나를 잡아주던 아버지처럼 남편을 믿고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다. 한 걸음씩 옮기며 유치원에서 중고등 대학을 거쳐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과장을 또 겪어야 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고정관념을 깨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길을 찾아 본능의 몸부림치며 피나는 노력과 인내로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았다. 뒤돌아볼 시간도 없이 앞만 보고 뛰었다. 노력의 결과를 만끽할 수 있는 지금의 생활. 그것은 현실을 직면할 수 있는 눈을 준 스승이자 남편인 그의 사랑과 나의 노력이라고 생각이 된다.



   내가 그분을 만난 것은 삼 년 전일이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었다. 어머니의 수필 책을 출판할 때 지인으로 남강 선생님을 소개받았다. 그분은 나의 고착화된 일상에서 또 다른 희망을 찾는 여정의 길을 열어 주었다. 문학에 관심이 있던 나에게 불꽃 같은 정열을 쏟아 부어주신 세 번째 선생님이다. 소통의 눈빛을 알 수 없는 지구 먼 곳의 거리지만 그의 도움으로 하루 8시간 때로는 10시간 꼬박 앉아서 글을 썼다. 보석도 갈고 닦아야 빛이 나고, 곡식도 껍질을 벗겨야 알곡을 얻는다고 나의 게으름을 채찍 하는 꾸중과 격려와 함께 사랑의 지도를 받았다. 차츰차츰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단어들이 균열된 틈새로 삐져나와 한거풀 탈바꿈을 했다.


 

 온 세상 햇살이 사랑으로 가득 열리는 날이 왔다. 출판 예정인 선생님의 수필집을 뒤로 미루고 그림엽서 속으로의 수필집이 출간되었다. 나의 피와 땀의 결정체이지만 남강 선생님의 특별한 열정이 아니었으면 새 얼굴로 탈바꿈을 한 문학 학도가 이 세상에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선생님을 나는 미국 우리 집으로 초대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약속한 날을 며칠 앞두고 홀연히 천국으로 떠나셨다는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나는 도저히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의 출판기념 여행길을 같이 보낸 그날이 바로 엊그제인데, 아직도 이렇게 뜨거운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데 그분이 가셨다니 현실을 믿을 없고 믿고 싶지 않았다




 어제가 뼈아프게 그립다. 불꽃같이 살다 가신 분. 그분이 남기고 간 빈자리가 너무 크다. 백 세 시대를 눈 앞에 둔 요즈음, 59세로 생을 마감하다니! 얼마나 고단했으면 젊음을 다 태우지도 못하고 그리도 빨리 가셨는지? 현실에 도전보다 죽음의 평화를 더 원하셨던가? 세상에서 못다 이룬 사랑을 정리하려고 6시간 동안 동해의 푸른 물살에 몸부림치다 떠나가신 남강 선생님.



용광로에 활활 타고 남은 그분의 체온이 아직도 내 손끝에 파고든다. 천국을 향하여 가시는 길. 목 놓아 절규하며 붙들고 싶지만 푸른 초원으로 뛰어가는 웃음 띤 얼굴을 누군들 막을 수 있을까? 가는 곳마다 정 ()을 뿌린 자리만큼 국화꽃 길게 장식된 길목에서 소리도 없는 슬픔이 물처럼 고여 얼룩진 마음을 흐느낀다.

 


정답이 없는 우리의 삶. 갈증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다. 믿을 수 없는 또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목이 탄다. 눈을 감고 잠깐 멈춰본다. 그의 불꽃 같은 정열이 수많은 별이 되어 하늘에서 반짝인다. 눈물로 쓰여진 수필. 눈물로 다시 쓰고 또 지워버린다. ‘수필가는 글로서 승부해야 한다는 세상의 마지막 부탁이 바람결에 들린다. 이것이 남강 선생님이 남기신 사랑임을 가슴에 다시 새겨본다



안개비가 날린다. 하얀 연기가 날리듯 한 조각 그리움에 목이 메어온다. 이제 선생님을 보낸 여름 끝자락이 지나고 있다. 끝내 가라는 인사도 못한 보낸 그분이 안개비 되어 가슴 속에 내리는 날이다.

 

문학시대 2017 가을호 게재


 

나는 별 하나를 찾고 있다.

밤 하늘 별도 나를 찾고 있다.

별과 나의 사이는 몇 광년이 될까

스승과 제자의 주고 받은 마음에는

시간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남강, 안개비, 그림엽서 속으로, 문학시대, #수필가 김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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