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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김혜자(nancy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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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색으로 물든 편지
10/06/201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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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혜자

  한 장의 아름다운 그림엽서 속을 거니는 기분이 들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다뉴브 강이고, 땅속에는 온천수가 뜨겁게 흐르는 동 유럽 헝가리(Hungary). 자신들의 나라가 유럽의 배꼽이라고 주장하지만, 지형적인 위치 때문에 타민족의 지배를 끊임없이 받아온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은 민족이다. 남한의 면적보다 조금 작은 헝가리. 이름만 생각해도 서정적인 아름다운 그리움에 나의 가슴이 떨렸다.


 내가 헝가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키 순서대로 앉은 나의 책상 번호와 교실 뒷면에 붙여놓은 세계지도에 같은 번호가 붙여진 나라가 헝가리였다. 선생님은 자기 번호와 같은 나라를 학생 스스로 공부하도록 숙제를 주시고, 시간 날 때마다 한 학생씩 나와 발표하도록 했다. 어린 시절부터 내 머릿속에 잠재되었던 음악의 산실 헝가리를 동경하게 되었다. 여행하기 전부터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걸어야 할까? 궁금했던 도시다.

 



계절의 탓일까? 가을을 맞는 싸늘한 바람에 나뭇잎으로 엉켜진 강둑을 걸었다. 거리의 바이올린 악사가 연주하는 헝가리 무곡 (Hungarian Dance)이 바람을 타고 들려오기 때문이었을까? 길게 누워 서서히 흐르는 짙은 우수의 다뉴브 강물을 보니 까닭없이 슬퍼졌다. 애수에 찬 서곡이 느리게 시작하여 빠른 리듬으로 애환과 우수가 깔린 특유의 흥겨운 선율로 이어지는 집시의 무곡. 경쾌하면서도 묘한 슬픔이 있는, 고향을 잃은 소외된 자들의 외로운 미소가 흥겨운 음악 속에 곁들여있는 매력 있는 교향곡이다. 스승 로버트 슈만(Robert Schumann)의 부인 클라라(Clara)를 짝사랑한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가 생각 나서였을까? 운명적인 만남에 평생 독신으로 살며, 슈만이 죽은 뒤에도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평생 해바라기같이 바라보며 살았던 고독한 작곡가. 그래서 그런지 브람스의 곡을 들을 때 마다 음악에 흐르는 우수와 고독의 빛깔이 진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한 자리에는 반듯이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것 같다. 삶의 열정에 근원이 되었던 연인을 가슴에 담고, 자기가 존재하는 이유가 오로지 그 여인이었기에 슬픔도 한 단계를 넘어 표출 할 수 밖에 없었던 천재 작곡가. 타고 남은 감정의 에너지가 처절하게 부서지는 것은 파괴가 아니라 심오한 영혼이 담긴 교향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기에 브람스는 혼이 담긴 훌륭한 교향악을 후세에 남길 수 있었나 보다. 지금 그 천재는 어느 별에서 어떤 교향곡을 작곡하고 있을까? 생전에 클라라를 위해 작곡한 ‘브람스의 눈물’이라는 부제가 붙은 현악 6중주보다는 ‘브람스의 기쁨’이라는 새로운 교향곡을 쓰며 웃음 짓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에 대한 궁금증 보다는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서로를 이어주는 고리로 푸른빛 보다는 잿빛으로 보이는 다뉴브 강 위에 세워진 9개의 다리 중 가장 아름답다는 사슬 다리(Szechenyi Lanchid). 뽀얀 안개가 마치 부다페스트 (Budapest)의 영혼까지 베일에 가린 듯 신비스럽고 고혹적이다. 다리 앞 난간에 혀가 없는 사자의 동상은 붉은 노을을 받으며 어머니의 젖줄 같은 다뉴브 강의 정취를 만끽 하고 있었다. 해 질 녘이 되자 여기저기에 오랜지 빛깔의 등불이 켜지기 시작하고, 불빛이 밝혀지면서 도시는 또 다른 얼굴로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계절의 시계에 맞춰 약속처럼 옷을 갈아입은 옛 도시의 뒷골목을 걸었다. 밤을 하얗게 지새면서라도 눈에 모두 담아보고 싶은 황홀한 빛의 도시. 카페와 술집이 불야성을 이룬 골목길에서 예상치도 않게 무척이나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엉클어진 긴 머리에 키가 큰 피아노의 거장 프란츠 리스트(Ferencz Liszt)이었다. 그는 밤 카페가 즐비하게 늘어진 골목길에 앉아 목마름을 적시는 행인들과 여행객을 위하여 그의 가장 아름다운 소곡 ‘사랑의 꿈 - 녹턴 3 (Liebestraum #3)' 을 지휘하고 있었다. 리스트의 연주는 악마적인 기교가 있고 또한 잘 생긴 그의 외모 때문에 많은 여성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의 명성은 대단했고 베토벤도 리스트 연주에 감탄하여 손에 입을 맞추었다고 하는 헝가리 국민 작곡가다. 그의 이름을 딴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란츠 리스트 음악학교가 부다페스트에 있으며 음악가들이 꿈에서도 가고 싶어하는 곳이다. 우리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씨도 그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나는 부다페스트에 숨은 보석들을 찾아 낡은 건물과 뒷골목 길을 누비고 다녔다. 헝가리는 한국과 닮은 점이 많다. 서울 중심에 한강이 흐르듯 헝가리에는 다뉴브 강이 수도인 부다페스트 중심복판을 흐르고 있다. 두 나라 함께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지만, 외부의 잦은 침략을 받고 투쟁과 항거로 많은 슬픔을 겪은 나라다. 체구는 유럽권 사람과 비슷하지만 정서와 문화는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사람 사는 정취가 물씬 나는 부다페스트를 쉽게 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만난 젊은 청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주범인 독일은 싫지만, 그래도 독일의 정확성과 근면한 국민성을 배워야 한다’는 말에 절로 수긍이 같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허슬러 (J. Hustler)의 명언인 “인생은 언제나 부딪혀 경험하고 도전하는 사람에게 더 큰 영광을 안겨 준다”는 말이 생각났다. 다뉴브 강을 보고 도전 하는 헝가리 청년의 미래가 밝아 보였다. 또 다시 가 보고 싶은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의 기적을 바라며 다음 페이지에는 어떤 그림으로 헝가리가 그려 질지 설렌 궁금증이 밀려왔다. 다뉴브 강의 많은 발전과 도약을 기대하며 헝가리 여행의 책장을 덮었다.

 

헝가리, 다뉴브강, 부다페스트, 브람스,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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