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cyMoore
수필가:김혜자(nancy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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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긴 여운 (餘韻)
08/05/201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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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상쾌한 아침이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 하늘은 파랗고 이쁘게 보인다. 이슬 맺힌 잔디밭에 사과꽃잎이 떨어져 융단처럼 수놓아 아름답게 보인다. 봄은 홀연히 왔다가 슬그머니 사라져가는 신기루다. 오늘은 모든 소식과 단절하고 싶다. 얼마 전에 다녀온 페루 여행을 정리하고 싶다. 전화통화나 인터넷도 되지 않은 세상과 단절된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 산길을 올라 내 오두막집으로 향한다. 곳곳에 화려하게 핀 꽃잎이 한 줄기 바람에 날려 작별인사를 한다. 반짝 피었다 사라진 잉카제국의 역사와 신화가 흩어지는 꽃잎과 같이 눈앞에 그려진다.

 

  하늘엔 독수리, 땅은 푸마 그리고 땅속 뱀의 지혜를 믿었던 잉카인들. 목숨을 걸고 쌓아 올린 마추픽추(Machu Puchu)를 남겨두고 어느 순간 모두 사라진 잉카인. 여행길에 구매한 엘 콘도르 파사 (El Condor Pasa)’의 깊고 애절한 멜로디를 들으며 침엽수림(針葉樹林)을 천천히 달린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사람마다 각각 다르다.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기쁨과 일상을 떠나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낯선 곳에서 홀로 맞이하는 를 찾기 위해 혼자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길에 좋은 음악이 함께 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다. 때로는 전혀 생각지도 않게 두근거리는 감성의 행운을 잡기도 한다. 이번 페루 여행이 바로 그런 여행이다.

 


  마추픽추는 불가사의 그 자체였다. 하늘의 끝이요 더는 날갯짓을 하여 도달할 수 없는 초 극의 공간에 시간이 멈춰선 느낌이다. 고산(高山)이기에 어디를 가나 구름이 내 눈높이에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머리 위와 발밑에 흐르는 구름을 손으로 잡아 본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에 한번 풍덩 빠져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한다. 수없이 사진으로 보았던 거대한 도시는 마치 태양을 묶어버린 거대한 돌기둥으로 남아있었다. 공중에 섬처럼 떠 있는 숨겨진 도시를 보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세상에 어떻게 아찔하게 높은 산봉우리에 비밀스러운 도시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의 웅장함을 어찌 내 눈에 다 담을 수가 있겠는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나의 작은 폐활량이나, 높은 안데스(Andes) 산맥의 기후와 희박한 산소 부족이 아니었다. 현란한 햇빛을 타고 벗겨진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의 정원을 보는 순간 태초부터 꿈틀거리던 땅속의 불길이 얇은 지층을 타고 화산처럼 솟아 나의 온몸을 덮쳐왔다.

 

구름이 몰려왔다. 돌의 도시는 녹청색의 빛깔을 띠고 구름 따라 매력적으로 펼쳐졌다.  신비함이 세계 7대 불가사의 하나로 선정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더해 주었다. 하늘을 이고 있어도 무거운 줄 모르는 공중도시의 정교한 석조 건축과 특유의 돌담을 본다. 돌에도 피가 돈다. 자연이 만든 숨결과 핏줄이 통한다. 오백 여년 동안 풍랑에 씻겨 깨어진 돌 틈에서 나는 잉카의 숨결과 아픔을 느낀다. 화산의 불꽃은 식었지만, 그 속에 흐르는 잉카의 꿈틀대는 의지가 보였다.  

  

 

산속 깊은 곳, 사람의 발길이 닫기 힘든 가파른 협곡 절벽 위에 서 있는 잉카의 도시. 어떤 목적으로 건설되었고, 어떤 사연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도시다. 황금을 꿈꾸던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이끄는 군대에 쫓겨 잉카인이 마지막으로 숨어 들어간 최후의 도시라는 추측뿐, 아무것도 확실한 근거가 없다. 그래서 그런가? 고대 삼대 문명이며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잊힌 제국 아스텍, 마야 그리고 잉카 중에 나는 잉카 제국( Inca Empire)에 기묘한 애정과 슬픔을 느끼며 돌아왔다.

 


여행은 시작보다 돌아와 생각할 때가 더욱 좋다. 황금 햇살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초록색 호수 위에 보석처럼 빛나는 물결과 어울려 춤을 춘다. 건너편 산 등에 걸린 무지개를 상상하며 나는 글쓰기를 시작한다. 온종일 안데스의 음악에 베여있는 한() 맺힌 슬픈 멜로디를 듣는다. 귀에 익은 우리나라의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단소나 일본의 전통음악인 샤쿠하치와 비교할 만한 잉카의 피리(Quena 케나) 소리가 낯설지 않고 정겨웠다.

 

 피곤한 눈을 비비며 녹색 노트를 손에 쥔 채 별들이 숲 속에 잠자고, 달님이 그림을 그리는 베란다에 나와 은빛 물결의 깊은 호수를 그려본다. 멀리 보이는 높은 향나무에 걸린 둥근 달 속에는 콘도르 (Condor남미산 큰 독수리)가 양 날개를 펼치고 천천히 나르고, 어디선가 잉카인 피리 소리가 내 마음 빈 끝자락을 후벼 놓는다. 인생은 순간이라는 돌로 쌓인 성벽이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잉카인들의 영광처럼 지상의 모든 것은 잠시라는 역사 속에서 살아진다. 이 순간도 세월 속에 흐르고 사랑, 청춘, 성공 그리고 생명도 잠시속에서 모두가 살아질 것이다.

 

  인생은 순간이다. 오늘 누려야 할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고백하고 싶은 사랑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순간이 모여 시간이 되고 시간이 모여 세월이 된다. 내일이 온다는 보장은 없다. 여행은 눈과 생각의 폭을 넓게 해주고 삶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여행에서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며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이 순간이 영원히 흘러가도 무엇인가 찾아 헤매는 설레 임의 특권을 누리고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를 발견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한다.








March 21 through March 29, 2016











마추픽추, 안데스 산맥, 잉카제국, Con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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