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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김혜자(nancy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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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여왕 Mary Queen of Scots (United Kingdom - Edinburgh, Scotland) 7회
10/11/201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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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향한 꿈을 안겨준다

몇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환상의 밤을 보냈다

창문을 열고 팔을 벌려 하늘을 안아본다

짙은 세월의 향기를 마셔본다


가는 곳마다, 보는 것마다 슬픔과 기쁨의 그림자가 숨어있는 거리

화강암에 세워진 에든버러 (Edinburgh Castle) 한눈에 들어온다

신선한 바람에 젖은 중세기 숨결이 나의 작은 가슴을 뛰게 만든다.



매력적인 도시 에든버러

'위대한 숙녀’ 또는 ‘북쪽 나라의 아테네’라고 불리우 

에든버러의 길을 걷는다

에든버러는 신시가지와 중세시대의 역사를 간직한 구시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나는 왕족과 귀족이 걸었던 자갈길 로열 마일을 걸어 동쪽 끝에 자리 잡은 

홀리루드 하우스 궁전 (Holyroodhouse Palace) 향한다


홀리루드 하우스는 1128년에 아우구스투스 수도원(Augustinian Monastery) 

으로 세워진 곳을 제임스 4세가 재건하여 궁전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지금은 여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II 세(Elizabeth II) 

즐겨 머무는 아름다운 궁전이다.





홀리루드 하우스는 역사적, 예술적으로 유명하지만16세기 후반 

엘리자베스 1의해 처형된 

여왕 메리 스튜어트(Mary, Queen of Scots, Marie Stuart) 

이탈리아 출신 애인, 음악가이자  비서인 데이비드 리치오(David Rizzio)와 

비극적 사랑이 전해지는 궁전이라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메리는 태어난 6 아버지 James V세가 죽자 

Scotland 여왕이 됐고

프랑스 명문가 기즈의 딸인 어머니 마리 드 기즈(Mary of Guise) 섭정(攝政) 했다.  

잉글랜드의 침략받자 어머니는 프랑스 앙리 2(Henry II of France)에게 

군대를 요청 한다


프랑스 왕 앙리 2세는 전쟁에 승리한  

어린 메리를 아들 프랑수아 2(Francis II of France) 

결혼 조건으로 프랑스로 데리고 갔다

어린 메리 스튜어트는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아름답게 성장했고 그녀의 미모에 반한 

프랑스 궁정 시인들은 찬미의 시를 썼다고 한다.


King James V, King of Scots

 

1558 메리는 프랑스의 왕비가 된다

그러나 병약한 프랑수아가 갑자기 죽자 메리는 고국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여왕으로 정식 취임한다


여왕 메리는 헨리 7 증손자인 유력한 왕위 계승자인 

사촌 지간인 헨리 스튜어트, 단리 (Sir Henry Stewart, Lord Darnley) 재혼을 한다

그들 사이에는 제임스 6세가 태어난다



프랑수아 2(Francis II of France) &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

 


같은 친척인 엘리자베스 1 튜더 (Elizabeth Tudor,1533-1603) 

잉글랜드의 여왕 자리에 앉는다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 헨리 8세의 둘째 부인이던 

불린(Anne Boleyn) 간통과 반역죄로 참수를 당했다.


앤 불린(Anne Boleyn - 천일의 앤)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를 물고 확고한 왕위 계승권이 있는 

메리와는 달리, 헨리 8세가 어머니 불린과결혼을 무효로 선언함으로서, 

엘리자베스는 공주이지만 사생아 취급을 받으며 왕이 되기 전까지 

목숨과 권력을 위해 피눈물의 세월을 보냈다


그녀는 개신교회를 지지했고 평생 독신으로 (마지막 튜더 왕가는 단절)

“나는 국가와 결혼하였다”라고 말을 하여 

국민들의 환영을 받은 처녀 여왕(Virgin Queen)이다


여자의 관계는 악연 중의 악연으로 수많은 전설과 역사를 만들었다.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 



과거를 돌아보면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비운의 여성이 존재한다

메리 여왕은 불같이 사랑하여 결혼한 번째 남편인 단리 경의 무능함에 싫증 났고 

비서인 리치오를 가깝게 것에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질투에 사로잡힌 단리 경은 만삭인 여왕의 목전에서 

리치오를 무려 56차례 찔러 죽이고 만다.



 


사실 메리 여왕은 풍요롭고 우아한 고급 문화가 발달한 

프랑스 왕국에서 6부터 13년간 살았기에 

형식상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었지 프랑스인이었다

프랑스 말과 라틴어를 썼고 스코틀랜드 말은 거의 했다

스코틀랜드를 섭정하던 생모가 병사하자 

개신교 신자인 백작과 귀족이 정권을 있었다


스코틀랜드 돌아온 가톨릭 신자인 메리는 종교와 정치적 고립으로 

물과 기름처럼 귀족들과 화합 할 없었다

인기 없는 외톨이 여왕이었다.


총애한 시종이 죽은 , 여왕은 보스엘(Bosswell) 백작과 합작하여 

남편 단리 경을 살해하고 유부남인 보스엘 백작과 결혼한다

개신교 신자, 귀족들 그리고 여왕을 지지하던 가톨릭교도들까지 해명을 요구했다

불륜의 사랑에 눈이 멀어 정부 보스엘 백작을 도와 남편을 살해한 죄로 

신하들에게도 “나라의 수치라”라고 외면을 당했다


메리는 생후 10개월밖에 아들 제임스에게 왕권을 

양위하고 폐위를 당한다

외가인 프랑스에도 외면당해 고립된 메리는 

스코틀랜드에서 탈출하여 잉글랜드로 망명을 한다.  



여왕 메리 스튜어트



당시 잉글랜드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왕위에 올랐지만

개신교를 옹호했기에 전왕 헨리 8세의 사생아로 생각하는 

가톨릭 신자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잉글랜드 내부의 가톨릭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적자 혈통의 로마 가톨릭을 숭배하는 

메리 스튜어트가 잉글랜드의 전통 왕위 계승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잉글랜드 국내 가톨릭교회가 선동하여 메리를 여왕으로 추대할 것을 우려하며 

엘리자베스 여왕 1세는 그녀를 가택 연금하고 

이곳저곳 (城)을 옮기며 무려 18년이라는 역경의 세월을 보내게 한다.

 

사이 영국 가톨릭교도는 메리를 여왕으로 추대하는 음모를 꾸미다 발각된

메리는 재판에서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지만, 유죄 판결을 받는다


메리는 1587 추운 겨울 아침 Fotheringhay Castle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상징인 빨간색의 드레스를 입고 

목이 잘리는 참수형(behead)을 당한다


이로써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감정의 골을 더욱 깊어 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람은 라이벌보다는 성공과 실패의 극단을 보여준다.  

메리 여왕은 정열적이고 낭만주의로 의무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타인의 이목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같다


지혜롭게 신중한 현실주의로 뿌리의 편견을 뒤집고

말리는 권력 투쟁에 살아남은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는 비교도 되는 인물이다.




사랑에 울고 사랑을 뒤쫓으며 죽기 직전까지도 

여왕의 모습을 유지하고 귀족 의식이 강한 

비운의 미녀 왕비 메리 스튜어트의 일생은 이렇게 끝났다


여왕의 삶보다  여자의 사랑으로 살고 싶었던 그녀의 일생을 

문필가들은 “술수의 능한 요녀, 악녀”로 비난을 퍼붓기도 하지만 

불운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과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흥미로운 사건들로 재조명하여 보는 사람들도 많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종교 분쟁과 왕위 갈등의 희생자”로 메리를 논평한다.


그녀의 일생을 그리 오페라, 소설과 민요가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남몰래 흘리는 눈물 

작곡한 가에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 

“메리 스튜어트 오페라로 작곡했고

독일 작가 프리드리히 (Friedrich Schiller) 메리 스튜어트 소설을 썼다

또한 "For Mary" 멜로디는 메리 여왕 처형을 당하기 전날 밤에 

메리의 슬픈 운명을 노래한 스코틀랜드 민요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의 성당


유럽 역사상 최초의 단두대에서 처형된 비운의 여왕

그러나 독신인 엘리자베스 여왕이 죽자 유일한 후손인 

메리 스튜어트 여왕의 아들 제임스 6세가 영국 왕의 자리에 오른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는 에든버러성에서 윈저성으로 옮기고 

영국의 제임스 1세가 된다


제임스 1세는 어머니의 원수인 엘리자베스 여왕의 무덤이 있는 

웨스트민스터의 성당에 

비운의 어머니 메리 스튜어트 여왕의 유골을 이장했다



웨스트민스터의 성당에 안치된 메리 스튜어트 여왕



 가슴이 서늘하다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단두대에서 살아진 메리 여왕의 아들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이 됐다. 

역사는 돌고 돈다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누운  여왕을 그려본다.

어떤 마음으로 아들 제임스 1세는 원수지간인  여왕을 같은 곳에 잠들게 했는지

칼 끝에 핏 방울이 얽히어진 수십   사건을 내가  수는 없지만 

가슴 속 심장 사이로 흐르는 그의 마음이 궁금해 진다. 


고독한 자의 휘파람 소리처럼 바람이 숲을 흔들고 지나간다.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내려앉는다

오래된 벽의 흉터는 아물지 않았지만

별은 오늘도 빛나고 있.  





2018년 12월 개봉 예정인 Mary Queen of Scots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1세, 영국 왕 제임스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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