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cyMoore
수필가:김혜자(nancymoore)
Washington 블로거

Blog Open 04.15.2016

전체     67174
오늘방문     96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21 명
  달력
 
세 자매의 추억 (United Kingdom - Scotland) 5회
09/28/2018 12:59
조회  850   |  추천   22   |  스크랩   0
IP 24.xx.xx.17


  김혜자       


사방이 탁 트인 초원의 고원이 한참 이어진다

경사진 초원에는 수십 마리 양과 소들이 묵직한 자태로 풀을 뜯고 있다

능선과 능선, 골짜기 계곡 사이로 여름의 절정기를 이루는 

보라색의 헤더(Heather) 꽃이 가득히 피어 있다

산과 들을 내려다보며 심호흡을 한다. 양들이 뜯어 먹는 잔디가 용단처럼 푸르다



작은 강과 경사진 초원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약 2백 년 전 문학의 성지인 

요크셔 지방에 하워스(Haworth) 마을로 달린다. 



좀처럼 다시 오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던 남편도 이곳을 떠나는 것이 섭섭한가 보다. 

아니 어쩌면 그리 원하던 곳을 보고 가는 나를 위로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하워스 마을로 가는 길이 빤히 보인다. 

꼭 다시 돌아오자고 말하는 남편이지만 

눈앞에 두고 못 가는 마음이 몹시 서운하다.




하워스 마을은 나의 어린 꿈이 담긴 곳이다

학창 시절에 내가 애독했던 브론테(Bronte) 세 자매가 살던 곳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두 친구와 가깝게 지냈다

때때로 우리 집에서 밤을 지새우며 공부를 했고 

읽은 책의 독후감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우리가 읽은 책은 세계의 명작 제인 에어(Jane Eyre by Charlotte Bronte),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by Emily Bronte),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The Tenant of Wildfell Hall by Anne Bronte)등의 책이었다.





아주 작은 것에도 웃음과 눈물이 나던 시절이었다

그때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은 우리의 마음을 울려 주었다

때로는 가련하고 때로는 강인한 소설의 주인공을 통하여 

우리는 소설가 세 자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도서실에서 그들의 재료를 수집하고 때로는 영문으로 된 책을 빌려다 

번역하느라고 애를 쓰며 밤을 새우기도 했다

서로 수집한 정보를 교환하며 우리는 언젠가는 

세 자매가 살던 곳을 같이 가보자고 약속도 했다








항상 조잘거릴 준비가 되어있던 시절. 체면이 필요 없고 있는 

그대로 서로를 쳐다 보아도 웃던 어린 시절

때로는 작은 일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했고

때로는 우릴 아프게 했던 소녀의 꿈이 담긴 지나간 세월

그런 내 애틋한 추억이 흐르는 마을을 바로 눈앞에 두고 나는 지금 떠나고 있다


하늘이 점점 흐려진다

끝없는 황야에 거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구름과 언덕이 트림 한다

바람 부는 대로 작은 키의 풀잎들이 춤을 춘다.





단체 여행의 단점은 여행하다 마음에 드는 장소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것이 흠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행동해야 하므로 여유 있는 시간이 적고 자유로움이 없다. 

나 혼자만의 리듬 체계를 만들 수 없어 아쉽다. 

볼 곳과 가고 싶은 곳이 많은데…. 

그래서 나는 개인 여행을 선호한다.

 



내가 옛 친구들과는 다시 만난 것은 졸업 후 12년 뒤에 일이었다

3년 간 남편의 직장이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

어떻게 변했을까

소문에 들은 대로 은행 근무하던 친구는 전화국 과장의 부인이 되었고

멋있고 키가 큰 공무원이던 친구는 군인 대령의 부인이 되어 있었다

모두 멋진 삶을 사는 친구들이었다


반갑고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의 만남은 이어졌지만 직장 생활 하는 

나 때문에 자주는 못 만났다

3년이란 세월은 아쉽게 지나가고 나는 하와이로 다시 돌아왔다.





그 후 6년 지난 뒤 다시 한국으로 발령을 받았다

대령의 부인이었던 친구는 사령관의 부인이 되었고

전화국 과장의 부인이던 친구는 남편의 승진과 함께 청담동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10명 중의 한 분의 사모님이 되어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나와는 환경과 조건이 너무 달랐다


우리의 만남은 청와대에 영부인과 봉사 생활에 바쁜 친구와 

건설 회사의 사모님과 취미로 골프를 치는 친구의 스케줄에 의하여 이루어지곤 했다.  





 한국 9년 근무하는 동안 시간과 반비례로 우리의 만남은 점점 줄어들었다

1988년 올림픽, 영어 통역 자원 봉사할 때 나는 귀빈 석에 앉아 있는 

친구를 다시 만났다


계절이 가고 오는 사이에 산천만 변한 것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워야 할 우정도 변질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날 어깨 동무 하던 친구와 난 눈 웃음으로 인사를 한 것이 

마지막 우리의 만남이었다





친구야 ! 같이 와 보자고 했던 요크셔에 있는 하워스 마을을 기억하니

한때 잠 못 이루며 읽었던 브론테(Bronte) 세 자매의 책을 너희는 기억하고 있니

홀로 외롭게 자란 고아(孤兒)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제인 에어”와 

가슴 시린 사랑의 이야기  “폭풍의 언덕”의 아름다운 구절을 기억하고 있니


에밀리가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세상을 등진 

검은색의 작은 소파에 함께 앉아 보자고 약속했던 

우리의 이야기도 아직도 기억하니?




검은 구름이 몰려온다

변덕스러운 날씨로 유명한 전형적인 영국 날씨가 이어진다.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버스 창문을 두드린다

잡초가 무성한 들판을 지나 산 등을 넘어 버스는 또 다른 세계로 달린다

낮은 능선 고개를 넘고 또 넘어간다

풀들이 물결을 친다





 소녀의 꿈에 그려진 동화 같은 하워스 마을과 

어릴 때 친구의 얼굴이 오버랩이 되며 바람과 함께 날아간다

희미한 기억 속에 추억으로 남아있는 친구

푸른 계절 보낸 앙상한 가지에 연처럼 걸려있는 우리의 이야기

먹먹한 가슴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 지나고 간 침묵의 아쉬움이 창가에 머무른다

정지된 시간 속에 그리움이 흐른다.







하워스 마을, 브론테(Bronte) 세 자매,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이 블로그의 인기글

세 자매의 추억 (United Kingdom - Scotland) 5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