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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고향 하늘 (하)
10/11/201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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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선

  우리나라 남한은 지하자원이 부족하지만, 북쪽엔 충분한 자원이 있다. 철광이며 석탄, 금광, 지하자원 많은 곳이 북한이다. 고종 33년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조선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들에 의해 경제적으로 많은 이권(利權)을 침탈(侵奪) 당했다.




청나라와 일본은 연해 운항과 어업권을 받아냈고, 미국은 25년간 28억 평 대지의 독점 금 채굴권과 무관세 통관, 법인세, 소득세 등을 면제받았다. 내 고향 운산은 동양 최대의 금광으로 매년 수백만원 상당의 금을 토해 냈다. 정확한 생산량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매년 300만 달러 이상의 금이 생산되었다 한다. 그 대가로 대한제국 황실은 생산량에 상관없이 매년 1 2천 달러 (2 5천원)을 상납 받았다.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지는 민족의 비극이요, 전쟁의 비극이다.

 


평안 북도 북진 운산 금광에서 일하던 한국인 노동자 모습


  미국의 사업가 헌트(L.S.J. Hunt)는 동양합동 광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금광 개발을 하였다. 미국사람은 (그때는 서양사람, 코쟁이라고 불렀다) 운산에 들어와 건물과 제련소 공장을 세우고 밤낮으로 쉴 새 없이 금을 캐냈다




 지금 생각 나는 것이 있다. 우리 고장에 금이 얼마나 많은지 저녁때가 되면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쌀 이는 함박을 가지고 강가로 간다. 물속의 모래를 파서 쌀 일듯이 하면 모래는 다 나가고 반짝이는 금싸라기가 어쩌다 걸리기도 하니 저녁마다 그 일을 반복하여 오랜 시간 금싸라기 모아 어린이 돌잔치에 실반지를 해주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니 우리 고향이 금이 얼마나 많은 곳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때 서양사람들은 좋은 집 짓고 우리가 본 적이 없는 차도 타고 다녔다. 이상하게 생긴 키 크고 파란 눈의 여자가 지나가면 무슨 구경 났다고 할로 할로 하며 아이들이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언어 소통이 문제였다. 그때 배재학당을 나오신 영어 공부를 하신 아버지가 통역관으로 운산에 오신 것이다. 아버지는 미국 선교사님 대비생 (지금의 장학생)으로 학교에 다니셨다. 운산 북진으로 오신 아버지는 초대 목사님의 따님이신 어머니(이화학당 졸업)와 결혼하는 인연이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었다. 아버지는 서울 출장만 가시면 시골서는 볼 수 없는 예쁜 모자며 목이 긴 검은 장화 같은 것을 사 오셨다. 학교에 갈 때 씌우시고 비 올 때 신기시니 나만이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이상한 차림이다.


 그것이 부끄러워 학교 근방에 가면 모자는 벗어 감추고, 장화는 구멍을 뜷어 물 샌다고 안 신고 부모님을 실망하게 했다. 그때의 내 나이 여덟인지 아홉 살인 것 같다. 지금 어릴 때의 희미한 기억들이 가지가지 동화 속의 그림같이 향수에 젖어 나를 슬프게 한다. 이제 내 몸에 석양빛이 짙게 배어드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고향. 꿈속에서나마 날개 달려 타임머신을 탄 어린이가 되어 그리운 고향 집 돌아갈 수 있을까? 세상 지도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한반도 지배 정책을 세 시기로 구분한다. “헌병 경찰 통치기(1910-1919), 문화 통치기(1919-1931)민족 말살 통치기 (1931?1945)로 되어있다. 나의 아버지는 해방되기 몇 년 전부터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다 쓸쓸히 가족도 못 본채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짙은 붉은 색 울음을 삼킨다.




 나에게는 일본 친구가 한 분 있다. 그녀는 과거에 법정에서 통역관을 하였던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그녀와 만나면 여러 가지 시국(時局) 이야기 모국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진다. 나는 대한민국 연예계, 스포츠계, 산업계의 위용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녀는 다 수긍한다. 그런데 정작  그녀가 되묻는 것은 ’너희 나라가 아무리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 해도 너희 한국같이 불행한 나라가 또 있는가? 같은 피를 나눈 동족끼리 항상 싸우고 둘로 쪼개져 있으니 그 해결을 먼저 봐야 하는 것이 아니야?’라는 반문이다. 나는 거기서 말문이 딱 막혀버린다.



 

남의 아픈 곳을 건드리는 것이 무슨 취미인가? ‘우리나라의 불행이 누구로 인해 기인한 것인지 아느냐?’고 반문하고 싶었으나 그냥 참고 긴 한숨만 쉬며 마음을 눌렀다.

 



 사랑하는 이북 동포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기아상태에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다니 불쌍하여 가슴이 아프다. 그 아름다운 이북의 금수강산이 먹을 것 없고 혹한 추위에 땔감 없으니 산천초목이 피폐하고 헐벗었다고 한다. 감옥 같이 폐쇄된 사회에서 바깥 세상 전혀 모르고 자기 사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으니, 우리 남한의 생활상과 비교해 보면 무거운 덩어리가 가슴을 누른다.


 



 북한의 인민들은 수 년전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에서 국민의 시위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재스민 혁명(Tunisian or Jasmine Revolution)의 민주주의 함성도 들리지 않는지? 인권유린은 언제까지 당할 것이며 구시대적 야만 사회 3대 세습을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인지? 더 나은 인간의 모든 갈망은 필연적인 것이다. 더욱 나은 통일의 갈망을 언제 이를 것인가? 내 인생 사그라져 가는데, 내 고향 그리움 변할 수 없는데…

 




고향, 남북한, 통일, 운산금광, 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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