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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고향 하늘 (상)
10/04/2017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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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선

  오늘은 주일이다. 예배 드리고 친교실에서 차를 마시는데 어떤 노신사가 내 고향도 이북이에요” “이북 어데 신데요?” “함경도 강제에요.” 하신다.

 

나는 반가움과 함께 가슴이 뭉클하여 눈물 같은 것이 흐른다. 우리가 고향을 떠나온지 너무 아득한 세월이 흘러 이제 고향 생각이 가물가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요즈음은 누가 고향 이야기만 해도 내 고향 그리움에 목이 멘다.



  

나는 평안북도 운산 고향에서 초등학교까지만 다니고 공부한다고 서울로 왔다. 고향에서 산 것은 열세 살까지이다. 네게 고향이란 아름다운 슬픔. 그리운 상념 그 자체다




그 어릴 때 나는 천리타향 고향을 떠나, 서울 정신여학교 기숙사 창가에 석양의 붉은 노을이 질 때, 북녘 하늘 바라보며 얼마나 부모님이 보고 싶어 눈물지었는지 모른다. 그때의 어린이들은 지금 아이들같이 영악하지 못하였으며 순박하고 철이 없었다



옛 정신 여자 중.고등 학교 건물

 

나는 생각한다. 나의 유년 시절 고향의 13년 동안의 비중이 내가 살아온 평생의 무게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이북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 허지만 어린 시절의 정신세계는 얼마나 아름답고 정갈한가!

 

인간은 선하게 태어난다.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은 낙원의 세계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어릴 때 아름다운 고향의 풍경화가 아득한 그리운 향수의 여운 속에 현란 몽롱하게 펼쳐진다.




 내 고향은 동양에서 금이 제일 많이 채광되는 평안북도 운산 북진구이다. 푸른 하늘 아래 높이 솟은 산. 험산 준령 허리엔 운무가 서려 흐르는 곳. 천혜의 아름다운 비경은 남한의 풍경하고는 그 운치부터가 다르다. 심산유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 기암절벽의 가을 단풍. 겨울 나뭇가지에 피어 있는 눈꽃 송이 햇빛 받아 반짝이며 바람에 흐트러져 날린다.

 


나 어릴 때 고향은 내 기억 속에 살아 있는 무릉도원의 낙원이다. 푸른 소나무 가득한 산기슭에 어린 내가 다니던 보통학교(초등학교)가 있다.

 


 살아오면서 가고 싶어 한이 맺힌 숙원은 커다란 돌배나무 하얀 꽃잎 바람에 날리는 마당에 기화요초 가득한 우리 집. 그곳엔 평생 보고 싶어서 가슴이 아픈, 두고 온 부모님의 얼굴이 있다. 또한, 넓은 학교 운동장에서 뛰놀며 같이 공부하던 교실엔 나의 어린 친구들이 있다. 나는 한글을 초등학교 2학년까지 밖에 못 배웠다.




 일제강점시대라 조선어는 다 폐지되었고 우리 담임선생님은 배우 그레고리 펙 처럼 멋지게 생긴 일본 분이었다. 그림을 그려 국전에도 출품하시는 화가였다. 특히 나를 사랑해 주셨으며 나의 표정을 몇 장이나 그려 주셨다. 그 교실이며 보고 싶은 선생님 회상에 잊히지 않는 생각이 또 하나 떠 오른다.




  어떤 태풍이 심하게 불던 날이었다. 창밖을 내다보시던 선생님이 학생에게 지금 이 비 오는 광경을 간단한 글로 적어내라고 했다. 모든 남녀 학생들은 단 한 사람도 틀리지 않고 대 폭풍우라고 똑같이 일어로 써냈다. 단 한 학생, 내 글만이 다르게 표현되었다. ‘쏟아지는 폭우가 좍좍 소리치며 창문을 때린다.’ 선생님은 나를 불러 교단에 세우고 큰 손뼉을 치며 칭찬하며 머리도 쓰다듬어 주셨다.


 우에노 선생님. 어린 친구들. 이제 긴 세월이 흘러 추억의 여울목에서 다 멀어져갔다. 그 후, 우리나라의 슬픈 운명은 단 한번도 만남의 숙원 그 한()을 풀어주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부모님, 어린 친구들 거의 다 하늘나라에 가 있을 것이다. 소리 없이 눈물이 난다.




견화유사(見花有思): 꽃을 보니 생각나네

김진규(金鎭圭)

 

梅花半落杏花開(매화반락행화개) :

매화꽃 반쯤지고 살구꽃 피고

 

海外春光客裏催(해외춘광객이최) :

바다 멀리 봄빛은 나그네 마음 재촉하네

 

遙憶故園墻北角(요억고원장북각) :

아득히 생각나네, 멀리 고향 담장 북편에

 

數株芳樹手曾栽(수주방수수증재) :

몇 그루 향기로운 나무 내가 직접 심은 것인데…

 

참고 문헌 김진규(金鎭圭), 「견화유사(見花有思), 『대동시선(大東詩選)에서』   조선 숙종 때의 문신 김진규는 거제도로 귀양 가서 반곡서원에서 그곳에 살구꽃이 피자 고향을 그리는 시를 지었다.





고향, 고향생각, 견화유사, 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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