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팅 이벤트] 미국, 그 첫인상
11/01/201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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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그 첫인상

NaCl


아버지는 홀로 10년간 뉴욕에서 불법체류 신분으로 사시다가 하늘의 도움으로 농장사면 받으셔서 우리 네 식구를 초청하셨다. 유독 추위에 약한 나를 생각하시며 무조건 남쪽으로 내려가야 겠다고 생각하시다 이주하신 곳이 테네시 낙스빌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아버지와 낙스빌 공항에서 10년 만에 상봉한 것이다.

우리는 미국에 오자마자 낙스빌 다운타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청소하는 일을 시작했다. 차가 없어서 윗층 아파트에 사는 수퍼바이져의 미니밴에 얹혀 출퇴근하고 간간히 장도 보았다. 두 달이 지나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자 수퍼바이저가 내쉬빌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도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다.

수퍼바이저는 점점 우리 가족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그래서 차만 생기면 그로부터 독립하리라 마음 먹었다. 얼마후 우리는 76년산 여행용 밴을 1500불을 지불하고 구입했다. 차 내부는 양탄자로 깔려 있었고 에어콘은 망가져 있었다. 차도 생겼겠다. 그 해 여름, 연휴를 기해 아버지가 사시던 뉴욕에 그 차를 몰고 다녀 오기로 했다. 차에 대해 무지한 우리는 그런 고물차가 그 먼 거리를 견딜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지루한 I-40 고속도로는 오르락 내리락. 최고속도 50마일이 될까말까. 수시로 엔진오일을 넣어주며 가까스로 뉴욕 외삼촌댁에 24시간 만에 도착했다. 그당시 뉴욕에서 뭘 했는지 기억은 없고 돌아오는 길 델라웨어 고속도로 선상에서 오일팬이 터져 갓길에 차를 대고 경찰의 도움으로 택시를 잡아 공항으로 간 기억 밖에 없다.

택시기사는 선하게 생긴 흑인아저씨였고 우리는 신용카드가 없어서 비행기를 탈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돌아가려던 택시 아저씨를 붙들고 어떻게 할지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밤은 늦었고 일단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여 우리는 택시기사가 사는 흑인마을로 진입했다. 그 흑인기사는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고는 또 일하러 나갔다. 아침이 되어 우리는 그 흑인기사의 개인차를 타고 먼 길을 떠났다.

여섯 시간이 지나고 여덟 시간이 지나도 끝없어 보이는 길. 그 흑인기사는, "Where are you going?" 하며 도대체 어딜가냐고 겁을 집어 먹었다. 낙스빌에 도착하여 쉬는데 그 흑인기사는 이곳이 목적지가 아니냐며 이제 돌아가야 겠다며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껏 나와 동생이 운전해서 그 흑인은 피곤하지 않았을 것이다. 겨우 달래어 앞으로도 3시간을 가야 닿을 수 있는 내쉬빌로 향했다.

그 흑인기사는 이제 포기상태이고 넋을 놓고 있었다. 새벽 2시가 되어 도착한 아파트에 이번엔 그 흑인기사가 눈을 붙이고 우리 가족이 청소일을 하러 나갔다. 회사에서는 비상이 걸렸고 수퍼바이저들이 도와주러 왔다. 일이 끝나갈 무렵 건물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우리의 정신은 혼미해 졌다.

집에 돌아와 보니 그 흑인기사가 이번엔 자기를 델라웨어 집까지 데려다 달라는 것이다. 우리는 미안하다고 했고, 결국 그는 홀로 그 먼 길을 떠나야 했다. 나중에 후회가 된 것은 그의 전화번호를 받아 놓지 않은 것이다. 그가 잘 도착했는지 지금도 궁금하고 걱정된다.

미국 이민생활 21년, 그 초기에 우리는 이미 미국에서의 삶이 그렇게 녹녹치 않을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다. 겨우 2년제 대학을 10년에 걸쳐 졸업을 하게 된 것만 봐도 나는 그리 평탄치 만은 않은 삶을 살은것 같다. 한 번도 한국에 들어가 보질 못해서 이제 숨 좀 돌릴만 하니 내년이나 내 후년 쯤, 어쩌면 통일한국에 발을 디딜 수 있을까?

미국은 어찌됐건 땅이 참 넓다. 이민초기, 그 땅을 원 없이 달려 본것. 그 경험이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첫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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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 토요일, 한가한 가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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