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은 너무해 ^^
11/10/2014 23:51
조회  2533   |  추천   23   |  스크랩   0
IP 107.xx.xx.200



그렇게 오래전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생각했다,우주는 끝이 있을까, 없을까...

현대 과학자들은 우주는 유한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이어 다중우주, 여러 우주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존재는 있음인 동시에 없음이듯이 논리와 비논리 말고 다른 것도 있다

아마 그 다른 것들에 의해서 세계는 흘러갈 것이다

블랙홀이 존재하듯이 경계가 있다

경계와 경계를 뚜렷하게 표현하고 있는 그 내부보다 인간은 너무나 빠르게 늙고 죽는다

경계와 내부라는 자성없는 대단히 물리적이면서도 비물리적인 이곳,

바로 다른 것들에 의해서 흘러 가기 때문에 인간의 브레인이 적응할 수 없는 곳이다

경계....그것을 생각하면 그런 이유로 슬픈 중생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중생은 손오공이 아니며 그저 중생일 뿐이다


모든 세계를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리면 모두 분말로 변해서 모든 형체가 하나의 모습이듯이

무한한 미증유의 세계 역시, 연기를 깨치면, 사실은 무상의 실체임을 여지없이 심미안으로 보게된다


그러나 여기 고요하게 자리잡고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

중생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종류이지 극락의 행복은 아니다(정견)



어느날, 하늘의 별들이 절반정도 쏟아져서 사라진다면 모든 중생들은 대단히 놀라워 할 것이다

그러나 2주 혹은 20개월후 또는 20년, 200년이 지나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어느날, 목성이 점화되어 2개의 태양이 하늘에 나타난다면 모든 중생들은 대단히 놀라워 할 것이다

그러나 2주 혹은 20개월후 또는 20년, 200년이 지나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어느날, 중생의 50%가 갑자기 사망한다면 모든 중생들은 대단히 놀라워 할 것이다

그러나 2주 혹은 20개월후 또는 20년, 200년이 지나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어느날, 다중우주에 이상한 현상이 발생해서

하늘의 공간이 여러개로 쪼개지고 중첩되어

무엇의 그 무엇의 연속은 연속인데,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명체인듯 하면서 생명체도 아닌,

뭐라 도대체 표현할 수 없는 비물질 형상들이

중생의 머리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목적으로 운동아닌 운동을 한다면 중생들은 대단히 놀라워 할 것이다

그러나 2주 혹은 20개월후 또는 20년, 200년이 지나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중생은 너무해 ^^



 Greenbird 






어느날, 고타마 붓다는 마하가섭과의 대화에서 2가지 견해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 대화에서 고타마 붓다는 존재론(existence)의 견해와 비존재론(nonexistence)의 견해가 있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용어로는 존재론의 견해를 상견(常見: 영원하다는 견해), 비존재론의 견해를 단견(斷見: 단멸된다는

견해)이라고 하며, 이 두 견해를 극단적인 견해라는 의미에서 변집견(邊執見) 또는 변견(邊見)이라고 한다.


고타마 붓다는 사람들이 이들 두 견해로 사유하는데 익숙해져 있는데 이 두 견해에 얽매여 있는 한,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는 작용을 하지 않는 것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므로 열반에 이르게 하는 원인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자유 또는 해탈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우주는 시간적으로 영원하며 공간적으로 무한하고,

자아와 육체는 별개이며,

여래는 육체의 죽음 후에도 계속 존재한다는 명제들은 존재론의 견해이다.

반면 우주는 시간적으로 영원하지 않으며 공간적으로 유한하고,

자아는 육체와 동일하며,

여래는 육체의 죽음 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들은 비존재론의 견해이다.


이 두 견해들은 고타마 붓다가 활동하던 당시에,

인도의 여러 종교적 · 철학적 학파들에서 주장되었다.


존재론의 견해는 대체로 브라만교가 지닌 견해이며,

비존재론의 견해는 대체로 유물론자와 쾌락주의자들이 지녔던 견해였다.



고타마 붓다가 이러한 존재론와 비존재론의 도그마적인 그물망 속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을 때,

고타마 붓다는 다음의 두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첫째는 두 견해가 논리적인 추론을 따라 "절대적 또는 극단적으로" 발전했을 때 가져올 윤리적인 결과이며,

둘째는 "절대적 또는 극단적" 존재론과 비존재론의 견해가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절대적 존재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즉 영원론자들은 자아는 항상하며 불변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자아는 성질상 불변이기 때문에 육체는 죽더라도 자아는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타마 붓다는, 이러한 주장이 맞다면, 육체의 행위는 자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될 것이므로

육체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상관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즉, 자아가 영원하고 불변이므로 육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건 자아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유로 발전하여, 육체를 통해 비도덕적인 행위를 해도

전혀 자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견해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견해는 인과의 법칙 또는 연기의 법칙에 의거하여

도덕적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견해와는 합치하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자아와 육체는 동일하며 자아는 육체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소멸된다는 견해를 가진 경우에도,

이러한 주장이 맞다면, 삶에서 육체의 행위를 제한해야 할 필요가 없게 되므로

육체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상관 없게 될 것이라고 고타마 붓다는 말한다.


즉, 육체를 통해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그 과보가 이어질 다음 생이 없으므로,

무슨 수단을 동원하건 살아있는 한 삶을 최대한 쾌락적으로 향유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극단적인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타마 붓다는,


"절대적 또는 극단적" 존재론과 비존재론의 견해가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 또는 법칙인 인과의 법칙,

즉 연기의 법칙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즉, 여러 인과 연이 존재할 때는 세계가 존재하고

그 여러 인과 연이 존재하지 않으면 세계가 소멸하는데,

"절대적 또는 극단적인" 상태로 존재론과 비존재론이 발전할 경우,

이러한 인과의 법칙, 즉 연기의 법칙에 어긋나는 견해를 낳게 되고

따라서 그 견해는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모습과는 합치하지 않게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고타마 붓다는 사물들의 성질에 대해 "절대적인" 언명을 하는 것을 피했다.

고타마 붓다는 형이상학의 절대적 범주의 개념들은 사물들의 실제 모습과는 합치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Mozart
Mozart(Mozart)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1.31.2010

전체     426620
오늘방문     162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9 명
  달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