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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분수를 모르고 날뛰다 목 짤려 죽은사내
01/16/201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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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분수를 모르고 날뛰다 목 짤려 죽은사내

조선후기 18세기 무렵 평안도 지방은 대청무역(對淸貿易)이 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갈수록 더욱 활발해져 이 기회를 이용 큰돈을 번 이른바 거상(居常)들이 다수 등장하게 되었다. 역노(驛奴)출신으로 대청무역으로 큰 부를 축척한 이희저는 평남 가산군 역노로 출발하여 이후 말단 무과에 등재한 쾌남이었다. 체격이 거대하고 통이 커서 대담무쌍한데다가 한번 결심하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해내는 호걸로 인정받는 부자이면서도 쾌걸로 가산일대에 세력이 컸다. 또한 이희저의 친척다수가 평안도내 주요 열 개의 읍에 대상인으로서 자리를 잡고 있어 도내에 영향력이 매우 큰 인물이었다.

역노출신이 이정도 성공하였으면 만족할 줄 알아야하는데 이희저의 끝없는 과욕은 결국 멸문지화를 부르고 만다. 평안도 용강군 출신 홍경래는 일찍이 불우한 자기처지를 비관하여 전국을 떠돌며 전국의 기인, 도사 등을 만나며 세상을 구경하며 ‘이씨왕조를 이어 정씨가 계룡에 신흥왕도를 건설하게 된다’는 정감록을 토의하며 자기사람을 모으려했다. 홍경래가 경신년에 우연히 가산군에서 세상에 불만을 품고 은거하며 의복,풍수,천문,지리,병법을 깊이 연구하여 이에 통달 자칭 제갈공명이라는 우군칙을 만나 의기투합한 끝에 세상을 한번 뒤집어 볼 역성혁명을 꿈꾸게 되었다. 그 중요한 방편으로 홍경래와 우군칙이 끌어들이려 한 인물이 바로 위에 언급한 이희저였다.

이희저만 끌어 들인다면 도내에 호응할 인물들이 많고 그 영향력 또한 대단해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이희저는 양반은 아니지만 이미 자수성가하여 높은 세력을 지닌자라 이런 불장난 같은 위험한 일에 쉽게 뛰어들 인물이 아니기에 이희저를 포섭할 계책을 깊이 연구하게 된다. 희저는 자신의 큰 성공에 만족하지 못하고 금력(金力)뿐만아니라 권력(勸力)마저 바라다 패가망신하는데 이는 홍과 우의 간계 때문이었다. 홍과 우는 군칙의 아내를 유명한 점쟁이로 가장 시킨다. 주변에 여러 사람을 끌어들여 군칙의 아내가 용한 점쟁이라는 소문을 주변에 퍼트렸고, 결국에 자연스럽게 이 소문을 들은 이희저의 아내가 군칙의 아내를 유명한 점쟁이로 알고 집으로 불러들여 운세를 보게하는데 성공한다.

군칙의 아내는 희저의 아내에게 “이집에는 10년 안에 대운이 오는데 성씨에 水가 들어있는 사람과 호응하면 대발할 것이다” 라고 예언한다. 홍경래의 성이 홍(洪)씨임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 후 1년이 지난 뒤 이번에는 우군칙이 주변 사람들의 천거를 받는 것으로 하여 이희저의 집을 방문하는데 유명한 지관자격이었다. 군칙은 희저에게 선친의 묘를 선정해주면서 “이 묘지는 당대에 대복이 터지는 터여서 아마도 이집의 큰 은인이 이집을 방문할 것이며 어른께서는 그 은인을 도와 큰 권력을 지닌 명문대가가 되실겁니다.” 라고 예언하였다. 1년 전 아내로부터 들은 이야기도 있고 또 이번에 군칙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거듭 듣게 되니 심지가 굳은 희저도 내심 기대하는 바가 생겼다.

이미 가산땅의 세력가가 되었고 도내에서도 영향력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건만 희저에게는 항시 역노출신이라는 콤플렉스가 숨어 있었고 금권(金勸)은 손에 쥐었으나 양반 호족이 아니어서 권력(勸力)과 명예가 아쉬웠던 것이다. 이런 치밀한 사전작업을 거친 뒤 드디어 홍경래가 스스로 신사(神師)임을 가장하여 이집을 드나들며 여러해 희저를 현혹한 끝에 드디어 생사(生死)를 함께하기로 맹세하고 혁명동지가 된다. 희저가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게 된 것이다. 물론 수년에 걸친 홍경래와 우군칙의 사기 협작에 가까운 회유가 있었지만 자기 그릇을 모르고 감히 나라를 훔치려는 과욕을 부리게 된 것이 크나큰 실책이었다.

이들은 이희저의 집이 있는 다복동을 거점으로 삼고 각지의 여러 호응세력과 비밀리에 연대를 맺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운산 촛대봉 밑에 광산을 열고 광산노동자를 모집한다는 명목으로 유랑걸식하는 유민과 천민 그리고 가난한 농사꾼 등을 모아 비밀리에 훈련시켜 봉기군의 주력부대로 삼았다. 봉기군은 처음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거병한지 열흘 만에 관군의 별저항도 받지 않고 가산,곽산,정주,선천,철산 등 청천강 이북의 10여개 지역을 점령하였는바 이는 각지의 내응세력들의 적극적인 호응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다. 그리고 반란의 주모자인 홍경래,우군칙,김사용,김창시 등은 몰락 양반,유랑지식인들로서 <정감록>에 심취한 자들이어서 자신들의 승리를 의심치 않는바있었고 10여년동안 꾸준히 호응세력을 치밀하게 심어온 준비된 조직적 반란이여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몰락,유랑양반들의 사상적 바탕과 조직력, 이희저의 막대한 금력(金力)이 결합된 혁명군은 반격에 나선 관군에게 박천,송림,곽산,사송야 전투에서 크게 패배하고 일단 정주성으로 퇴각하여 고립된다. 4개월간이나 정주성에서 저항하던 농민군은 결국 관군의 화약매설에 의한 성의 폭파로 진압되고 생포자 1,917명과 홍경래 등은 모두 목이 잘려 죽게 된다. 주모자들의 가족들은 역모죄의 연좌제에 따라 3대가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었음은 당연했다. 역노라는 천한 신분에서 가산지역의 세력가로 벼락출세했던 희저는 자신의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바람에 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어버리게 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역사적 사실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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