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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화해하지 못한 父子
02/05/202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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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내 화해하지 못한 父子

 

  이씨조선의 사실상 마지막 군주 고종(高宗)은 줏대가 없는 유약한 사람이여서 망해가는 종묘사직을 끝내 구하지 못했다. 아버지인 대원군 이하응의 오랜 세월에 거친 공작과 노력으로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기가 쎄고 성정이 강한 아버지 대원군 이하응의 섭정에 가려 허울뿐인 왕이었다. 그 후 결혼하여 민비를 왕후로 맞이한 뒤에는 대원군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여장부 민비의 치마 속에 가려 정사는 민비가 농단하는 상황 속에 핫바지 왕 노릇에 만족해야 했다. 알려진바에 의하면 고종은 1852725未時에 태어났다한다. 하여 사주팔자는 壬子年 己酉月 癸酉日 己未時가 되었다. 운은 순행하여 경술 신해 임자 계축 갑인 을묘로 흐른다. 대운수는 9를 쓰는 팔자이다.

 

癸水日柱를 강하게 하는 酉月에 태어났고 일지에 酉金이 자리잡고 년주에 壬水 子水가 자리잡아 태강한 사주이다. 용신이 지나치게 태강하니 이 강한 기운을 유출시켜 주어야하므로 식신상관인 을 용신으로 쓰는 것이 합당하나 사주팔자에 이 전혀 없다. 차선으로 시간에 있는 己土가 시지(時支) 未土에 뿌리를 두니 己土를 용신으로 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己土를 도와주는 의 기운이 없어 사주팔자가 크게 되지 못하고 미약해졌으며, 단지 덕이 많은 온후한 도덕군자형 사주가 되었다. 사주의 기운에 강한 기운이 없고 법 없이도 사는 매사 대화와 순리를 우선하는 학자형 사주팔자라 볼 수 있다. 이런 사주팔자는 火土의 운이 도래하여야 크게 발복할 수 있는데 운의 흐름을 살펴보니 일생에 火土의 기운을 만나지 못하는 운이다.

 

그나마 18세 이전까지의 운이 이후의 운보다 낫다할 수 있으니 이것저것 모르는 18세 이전이 행복했다 할 수 있는데, 이때까지는 아버지대원군 이하응이 섭정으로서 왕권을 행사하던 때였다. 사주팔자가 이 모양이니 왕이라는 지존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평생을 고단하게 살다가고 만다. 고종과 민비는 사이가 아주 원만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약한 성품의 고종과 여장부기질의 민비의 기세가 서로 맞았던 것이다. 이렇게 크게 의지했던 민비를 잃은 해가 1895乙未年이 다 운이라 할것 같으나 용신 己土乙木己土 沖을 하고 未土丑土하여 대흉해 보인다. 결국 이해에 을미사변이 일어나 민비가 일본낭인 집단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 일본 낭인놈들이 급작스레 궁궐에 침입하여 분탕질을 치며 민비를 잡으러 혈안이 되어 소란일 때 어느 군사 하나 나서서 이들을 제어하지 못했으니 망해가는 나라꼴이 한심지경이었던 것이다. 놈들은 결국 민비를 찾아내 살해하고 시체를 능욕한 뒤 이불에 말아 태우기까지 했다. 치가 떨리는 민족적 능욕을 당한 것이다. 1905乙巳年은 드디어 木火운이니 좋을성 싶으나 대운으로보면 寅木대운이다. 오히려 寅巳 삼형이 되어 대흉하니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어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만다. 고종이 54세에 이르면 대운으로 상관 운이다. 56세인 丁未년에 헤이그에 밀사를 보냈다가 일제에 의해 이를 구실로 강제퇴위 당한다. 임금 자리에서 쫓겨난 것이다. 64세부터는 대운에 접어든다.

 

더구나 1919년은 己未이다. 용신해라 좋을듯하나 卯木 合木되어 용신이 다른 용신으로 오행의 변화가 있으니 극히도 흉하다. 이때 드디어 독살당하고 만다. 이렇듯 용신이 다른 오행과 하여 忌神(기신)운으로 변화될 때가 극히도 흉하고 흉한데 이때 당한 것이다. 어쩌면 이토록 일생에 거쳐 좋은 운은 없고 불운한 운으로만 지속되고, 또 어쩌다 좋은 운이 오는듯하면 어김없이 다른 운이 작용하여 변질되어 악운으로 바꿔주니 참으로 불운으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아버지 대원군내외는 아들인 고종을 장가보내려고 할 때 제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이 외척이 발호할 수 없는 한미한 집안의 규수를 찾는 것이었다. 따라서 대원군 이하응 부인인 민씨와 먼 친척관계에 있던 집안이 몰락하여 고아신세가 되어 친척집에서 자란 민비를 적임자라고 생각하여 데려다가 왕비를 만든 것이다.

 

헌데 여우 피하려다가 호랑이를 불러들인 격으로 민비는 너무도 영악한 처녀였다. 왕비가 되자 왕인 자신의 남편 어리바리 고종을 제치고 섭정을 하며 기세를 올리는 시아버지가 눈에 곱게 보일리 없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했던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정권쟁탈전이 벌어진다. 결국 1873癸酉年에 대원군은 며느리와의 정권 다툼에서 패하고 정권을 잡은지 10년 만에 하야하고 만다. 정권을 잡은 민비는 몇 년 후 임오군란으로 급히 장호원 근방으로 피신하고 대원군은 이 기회를 이용 재집권한 뒤 행방불명된 민비의 장례까지 치러버리나 곧 청나라에 잡혀가 긴 감금생활을 한다. 이렇듯 어지러운 싸움 속에서 착하디 착하기만한 고종이 겪었을 고통은 불을 보듯이 훤하다 할 수 있다. 결국 아버지 대원군 이하응과 고종은 의절하고 만다. 죽을 때까지 서로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았다. 1898년 대원군 이하응이 사망했을 때조차 고종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끝내 화해하지 못한 父子였던 것이다.

 

차라리 고종이 왕이되지 않고 평범한 인생을 살았으면 아버지와 원수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사랑하는 부인을 왜놈들손에 살해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아버지와 부인의 싸움 속에 끼여 고통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왕이라는 지존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평범한 범부의 삶보다도 못한 굴곡진 고종의 인생사가 새삼 불쌍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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