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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보면 껄떡대는 늙은이
02/20/201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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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보면 껄떡대는 늙은이

필자가 易學의 배움 길에서 만난 두 大家가 계셨으니 오수송 선생님과 도계 박재완 선생님이시다. 두 분 다 역학실력에 있어 최고수의 반열에 오르신 분들이신데 오수송 선생님이 도계 선생님보다 10년 연하이셨다. 두 분 다 연세가 많을 때 필자와 연이 닿았는데 두 분은 역학실력에 있어서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도가 높았지만 두 분의 인성이나 품격은 너무도 달랐다. 오수송 선생님은 40년 이상을 서울-강릉-춘천 이 세 곳으로 정기적으로 돌면서 사람들의 운명을 감정해 주곤 하였는데 정확도가 귀신같이 높아서 그 이름이 높았고 수입도 굉장했다.

어떤 인연으로 오수송 선생님을 모시고 다니며 상담하시는 것을 옆에서 도와드리며 배움을 가질 수 있었는데 선생님은 나이가 많으신데도 불구하고 항시 옷과 머리에 멋을 내고 다니셨다. 얼굴은 오종종하니 여자처럼 이쁘게 생기셨고, 입술도 붉은색이여서 나이에 비해 무척 젊어 보이셨고 체격도 호리호리한게 날씬한 체격이셨다. 허나 돋보기안경을 쓴 눈은 눈빛이 맑지 못하고 뿌옇게 탁하며 흐릿하여 관상학적으로 보아 호감이 가는 눈이 아니셨다. 전에 약하게 풍을 맞으신 적이 있어 걸음도 비칠비칠 힘이 없었고 손은 수전증으로 심하게 떠셨으며 입술한쪽이 풍의 흔적이 남아 침을 흘려 옷깃이 늘 젖어 있곤 했다. 허나 이런 상태에서도 어찌나 여자를 밝히는지 자신이 접한 여자가 평생에 3000명은 될 터이니 삼천궁녀를 지녔던 백제의 의자왕이 부럽지 않다고 흰소리를 하시곤 했다.

역학실력은 뛰어났지만 인품이 경박스러운 점이 많아 제자로서 수치스러운 적이 여러번이였으나 참고 배움을 받았다. 오수송 선생님을 모시고 어떤 곳에 도착하면 그곳에는 주로 부녀자들 여러명이 여관방이나 가정집 등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다가 순서대로 선생님의 운명감정을 받곤 했는데 젊거나 이쁜 여자에게는 특히 시간배려를 많이하며 친절하셨고, 쓸데없이 손금을 본다며 손을 주물럭거리거나 풍채를 재본다며 슬쩍슬쩍 몸을 만지곤 했다. 그분의 실력은 인정하겠으나 그 인품이 너무도 역겨워 한동안 참다가 때려치우고 다른 고명(高名)하신 분을 찾아보게 되었다. 당시 필자의 젊은 혈기에 생각하기를 “나도 공부할만큼 했고 남부럽지 않은 대학, 대학원까지 나온 지성인인데 역학 실력이 좀 있다하더라도 경박스런 저런 늙은이에게는 더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래서 새로 만나 뵌 분이 도계 박재완 선생님이시다.

이분의 영정은 지금도 필자의 상담실 중앙에 모셔져있을 정도로 필자의 참스승이시다. 도계 선생님은 필자가 뵙기에 지금까지 세상에 이름을 높인 역학 선생님 중에 가장 도덕적으로 숭고하며 청렴하신 선비의 기상을 지니셨던 분이시다. 이분은 17세 무렵 역학에 뜻을 두고 중국에 건너가 역학고수들을 찾아 불철주야 공부를 하여 이 분야의 대기가 되신 분이시고 그 이름이 높아 5.16 때 혁명군부가 도계 선생님을 찾아 혁명의 성공여부를 물었고 혁명 거사일까지 받아갔다는 것은 역학계에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체적으로 유명한 역학 선생님들은 상담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여야하므로 몸속의 기가 밖으로 너무 많이 유출되어 장수의 기본덕목인 ‘말을 적게하여 기를 모은다’ 와는 반대의 상황이여서 장수친 못하고 요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필자의 선생님이셨던 오수송 선생님과 도계 박제완 선생님은 장수를 누리신 경우이시다.

하지만 인덕의 차이만큼이나 죽음의 모습도 너무 달랐다. 오수송 선생님은 평생 가정을 돌보지 않고 수없이 많은 여자와 교접하며 버는 돈을 물 쓰듯이 낭비하며 서울, 강릉, 춘천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사셨다. 특이하게도 ‘한번 동침한 여자와는 다시는 동침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켜왔다고 하는데 춘천의 한 온천장 여관에서 평소의 자신답게 과부의 배위에서 생을 마쳤다. 즉 복상사를 하고 만것이다. 객사였다. 반면 도계 선생님은 항상 선비의 도를 지키며 학처럼 우아하게 사시다가셨다. 역을 통하여 道를 이루신 분이었다. 선생님은 91세까지 사셨고 가시기전에 후손들에게 “내가 O월 O일 O시경에 떠나게 될 것이니 절대로 병원에 데려가거나 산소 호흡기나 주사 등을 놓지 마라. 떠나는 길 번잡하게 하고 사자님들 기다리시게 하는 폐를 끼칠뿐이다” 라고 신신당부하셨고 떠나기 며칠 전부터 지인들에게 전화를 일일이 하셔서 “잘들 있다오게, 나 먼저 가네” 라고 인사를 챙기셨다.

선생님은 역학의 최고봉에 오를 정도의 실력이셨지만 언제나 겸손하셨다. 처음 뵈었을 때 큰절을 하고 “제가 얼마 전부터 역학계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해왔는데 중간에 막히는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수송 선생님께 잠시 배웠지만 제 머리가 아둔하여 많이 깨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역학공부를 제대로 해서 선생님처럼 깨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공부하면 되는지 길을 일러 주십시오” 라고 가르침을 청했더니 나이가 한참어려 자식이나 손주뻘 되는 필자에게도 존대를 하시며 “글쎄요? 그런데 나도 60년 이상을 계속 공부해왔는데 지금도 잘 모르겠는데요!” 라고 하신 첫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시면서 당신의 책 <명리요강>命理要綱을 건네주시며 이 책으로 공부하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시면서 “간단한 것은 멀리서 예까지 올 필요 없어도 전화로 물어봐도 되요” 라고 하셨다.

당시 대전에 거주하고 계셨기에 멀리서 긴 시간 들여오는 수고를 덜어주시려는 배려심이셨다. 이렇게 겸손하고 자상하신 도계 박재완 선생님은 91세를 일기로 소천 하셨다. 은은한 미소를 입가에 머무신 채로... 깨끗하고 복된 죽음을 맞으셨던 것이다.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단순히 정확하고 예리한 사주팔자 분석력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 큰 깨달음을 주셨으니 평소 입버릇처럼 하셨던 “평생을 공부하고 있지만 나도 모르는게 더 많은걸” 말씀 속의 끝없는 겸손과 부드러움, 남을 배려하는 세세한 인정이셨다. 즉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치고 떠나셨다.

선생님의 제자이면서 필자의 스승이기도 하셨던 돈화문 앞에서 영업을 하셨던 노석 선생님도 도계 선생님의 인품에 감동되어 스스로 제자를 자처하고 서울에서 대전까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신체 부자유자 이셨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대전에 열심히 다니셨다. 도계선생님은 노석 선생님을 도반(공부를 함께 하는 친구)이라 칭하셨고 노석 선생님은 도계 선생님을 깍듯이 스승으로 대하셨다. 이러니 필자는 도계 선생님의 제자이자 손제자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런 인연 속에서 역학계의 큰 산들과 인연이 닿을 수 있었던 것은 필자의 큰 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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