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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때문에 망하는 팔자
07/07/20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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兄弟 때문에 亡하는 八字


50대 후반의 한 남성분이 필자를 찾았다. 며칠째 수염을 깍지 않았는지 덥수룩한 모습이 무척 피곤에 찌든 느낌을 주는 분이였다. 별 말 없이 생년월일시를 말하는데 1953년 음력 5월 14일생으로 시간은 정확치 않으나 새벽 닭 울 때라고만 들었다 한다.음력 5월의 해 뜨는 시간과 이분의 관상을 참고해보니 寅時(새벽3시-5시)경으로 보였다. 이 시간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형제가 많습니까?” 라고 물은 즉 “네” 라고 답한다. “만약 이 시가 맞다면 형제가 많고 형제간에 우애라고는 티끌만치도 찾아보기 어렵고 서로 물고 뜯는 팔자인데 맞습니까?” 라고 재차 물은 즉 “예 다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것이 다 나옵니까?” 라고 하며 신기해한다. 이는 필자에게 특별한 재주가 있어 진단한 것이 아니고 사주 공부 기초만 끝낸 분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간단한 이치이다.

 

이 사주팔자에는 비견겁재가 너무 많은데 비해 재성과 관성이 너무 약하다. 이 경우 형제 수는 많으나 형제간에 서로 불목하고 형제를 원수처럼 대하게 된다는 자평의 기초이론에 근거한 판단이다. 이분은 전남 신안군 압해면이 고향이신 분이다, 가난한 섬마을 어부의 6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작은 목선을 타고 고기를 잡아 근근이 연명하여 집 앞에 있는 손바닥 만한 텃밭에 푸성귀로 실치 못한 찬으로 살아가는 고단한 인생이었다. ‘가난한 집에 새끼는 많다’는 말처럼 어머니는 열심히 자식을 낳았는데 총 열 명을 낳아 그 중 6형제만 살아남았다. 가난한 집안 형편과 섬마을 이라는 변변치 못한 의료시설 때문에 죽어가는 자식은 ‘지 팔자가 그런가보다’ 라는 정도로 묵묵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대체로 가난한 집의 형제가 우애가 있다고 했는데 어찌된 것이 이들 형제는 형제애가 지독히도 없었다.


이 집의 전통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목포로 팔려가는 거였다. 목포인근의 가내수공업 수준의 공장이나 어판장, 선주들에게 선금을 받고 자식들을 팔았다. 3개월이나 6개월치 선불로 임금을 받아내고 그 댓가로 1년치 노동을 제공하는 댓가였고 만약 이 약속을 이행치못하면 배로 물어주는 조건이여서 고용주 입장에서는 손해날 일도 없었다. 아버지는 이 돈으로 색주가에 가서 한껏 기분을 내다 조금 남은 돈으로 양식거리를 조금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2-3년에 한 번씩 치루는 집안대사였다. 2-3년에 한 번 꼴로 일을 부려먹을 만큼 머리가 큰 자식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형들 중에는 1년 근무 약속을 파기하고 도망쳐버린 사람도 있어 그때마다 집에는 큰 난리가 났고 곤경을 치루는 일도 몇 번 있었다. 막내인 이분도 집안의 전통(?)에 따라 목포의 한 제재소에 팔렸으나 한 달도 채우지 않고 서울로 도망쳐 아버지를 또 한 번 곤경에 빠뜨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지내는 어머니 곁으로 형제들이 가끔 들려도 보곤하여 형제간에 연락이 완전 끊긴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명절때나 집안일로 형제가 모이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서로 드잡이가 벌어지곤 했다 한다.


‘형제는 나의 원수다’ 라는 신념을 모든 형제가 지닌 듯 했다. 형제 모두 어쩌면 하나같이 사람노릇 못하고 사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가난에 찌들어 사는 형제들 모습을 서로가 보기 싫어 더욱더 서로를 멀리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가족에게도 큰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막내인 이분이 우연히 해남쪽 한 복덕방업소에 취업이 됐는데 이것이 이분에게 기회를 주게된다. 이때부터 어찌된 영문인지 서울에서 고급승용차를 타고 사람들이 이곳을 들랑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에 무슨 큰 방파제 겸 다리가 놓이고 공단이 생길거라는 은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별로 가치가 없어 보이는 임야나 밭들이 불티나게 외지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복덕방 보조원으로 일하던 이분도 구전으로 꽤나 많은 돈을 손에 쥐게 되었고 자신이 직접 복덕방을 차려 단 몇 년 만에 큰돈을 거머쥐게 되었던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 꼴’ 이 된 이분 옆에 형제들이 온화한 미소를 띄고 드나들기 시작한다.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다. 큰 형은 “작은 통통배라도 한 척 있으면 먹고 살 텐데...” 라고 하며 어머니를 앞세워 압력을 가해서 뜯어가고 둘째 형은 “전세집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먹고 살아 볼 텐데... ” 라고 하며 뜯어가고 셋째형은 술 먹고 남을 두들겨 패서 “합의 안 해주면 감옥에 가야 할텐데...” 해서 뜯어가고 넷째 형은 “개인택시 한 대 사주면 동업형식으로 매달 얼마씩 갚겠다” 고 하며 뜯어간 뒤 소식 없고 다섯째 형은 “결혼을 해야 하는데 결혼 비용과 사글세 방이라도 있어야하는데...” 라고 하며 뜯어가기 시작한 것이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바꿔가며 서로에게 뒤질세라 달려들었고 요구를 안 들어 주면 “개 새끼 소 새끼” 하며 “콱! 망해버려라!” “사고 나서 뒈져버려라!” 하는 식으로 저주를 퍼 부어 대었다. 그 앞장에는 항시 늙어 꼬부라진 어머니가 있었다. “니 형들이 저렇게 어려운디 잡것아 니 만 살면 다여!” 모친과 형제들의 압박에 그 많던 돈이 이리저리 새버리고 씨글벅적하던 부동산 경기도 썰물 빠지듯 가라앉자 결국 이 분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다.


이 분의 청년시절 평생 단 한 번의 기회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이런저런 인생유전에 이곳 LA까지 흘러 들어와 살다 나이 60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형 놈들 때문에 내 인생은 그때 조진거예요!” 평생을 형제 원망하며 이를 갈았을 이분이 문득 가여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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