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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놈이 미워요!
12/09/201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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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놈이 미워요!

 

  오씨 자매는 어릴 적부터 나이 50 이 넘는 지금까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 살았다. 어디를 가나 항시 한집에서 생활을 했고 20여년 전 미국에 건너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둘 중 하나가 출가를 했으면 자연스레 떨어졌을 터인데 둘 다 시집 못간 노처녀이니 이것이 가능했다. 오씨 자매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예전에 강남이 본격 개발되기 이전에 오씨 자매의 아버지가 객지 타향에서 흘러들어와 신사동 일대에서 한강변 버려진 습지 땅을 개간하여 참외농사를 지어 지게에 지고 강을 건너 서울시내에 들어와 팔면서 생활을 꾸려나갔다.

 

위인이 워낙 부지런하여 새벽 동트기 전부터 밭에 나가 똥지게를 졌고, 밤늦은 시간까지 열매하나 하나에 정성을 쏟으니 남의 참외보다 때깔이나 크기가 뛰어날 수밖에 없었고 영양가 많은 똥을 부지런히 뿌려주니 육즙이 무엇보다 달콤했다. 이렇게 부지런히 모은 돈으로 조금씩 조금씩 밭뙈기를 늘려나갔다. 슬하에 아들하나에 딸 둘을 두었는데 이 딸 둘이 오씨 자매였다. 강남개발이 본격 시작되어 복부인들과 부동산업자들이 당시만 해도 시골구석인 이곳을 들랑거리기 시작했고 어마어마한 돈을 제시하면서 농사꾼들에게 땅을 팔 것을 종용했다. 이때 많은 이들이 고생스러운 농사일을 때려치우고 목돈을 쥐고 시골을 떠났다. 하지만 참외농사꾼 오씨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 않고 열심히 똥지게를 졌다.

 

이렇게 세월이 12년 흘러가자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오씨 영감은 큰 부자가 되었다. 우직하게 부린 고집이 졸부를 탄생시킨 거였다. 오씨 일가가 갑자기 큰 부자가 되어 행복해졌는가? 아니 정반대였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큰돈이 생기자 농사만 짓던 오씨 영감은 이 돈을 어찌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평생 지어오던 똥지게를 지지 않으니 육신이 편해진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아팠다. 평소 버릇처럼 해뜨기 전 새벽에 눈이 떠지니 그 새벽에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 안절부절했다. 큰맘 먹고 부부가 외출이라고 해보았으나 식당에서 밥 한끼 사먹으려니 그 비싼 가격에 눈이 화잔등 만해졌다. 텃밭에서 고추하고 오이 몇 개 뚝딱 따가지고 찬물에 보리밥 말아 고추장이나 된장 찍어먹으면 돈 한푼 안들이고도 배 터지게 먹을 수가 있는데 식당에서 비싼 돈을 주고 사먹으려니 도저히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꽁보리밥을 도시락에 담고 고추와 오이 몇 개를 된장과 함께 싸서 보퉁이를 만들어 허리에 차고 슬슬 걸어서 느긋하게 남산까지 놀러갔다 오는 게 부부의 유일한 낙이 되었다.

 

하지만 외아들인 오군은 달랐다. 어려서부터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보니 잔머리만 발달하여 늘 성실치 못했다. 이런 오군이 갑자기 돈벼락을 맞은 집안의 돈을 그냥 둘리 없었다. 몇날며칠 어머니를 꼬드겨 자신의 사업자금을 내놓게 했다. “영감! 다 큰 자식 놈을 언제까지 저렇게 백수건달로 내버려 둘 수는 없잖수? 은행에서 돈을 좀 찾아서 큰애 장사밑천을 좀 대어 줍시다!” 마누라가 하루 종일 붙어서 설득을 하자 지독한 오 영감도 손을 들고 사업자금을 대주게 되었다. 무식하고 말썽만 부리던 오군이 생각한 사업은 개발되는 강남을 드나들며 돈을 펑펑 써대는 부동산업자들과 갑자기 떼부자가 된 졸부들을 상대로 고급술집을 해보는 거였다. 못된 친구들과 어울려 이런 술집을 몇 번 드나든 경험을 밑천삼아 철모르고 뛰어들었으나 철없는 짓이었다. 조직 폭력배들이 그 세계는 꽉 쥐고 있어서 함부로 나섰다가는 언제 어디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될지 모르는 무서운 바닥이었다.

 

결국 한 푼도 못 건지고 그 많은 돈을 싹 다 날려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오영감 눈이 뒤집혀서 노발대발하며 팔딱팔딱 뛰다가 넘어갔다. 혈압이 터져 중풍을 맞은 거였다. 누워서 오줌 똥 싸는 오영감 옆에서 오군만 이제 제 세상을 만났다. 이제 눈치 볼 사람 없으니 모든 것이 지 맘대로였다. 첫 번째 사업을 만회하기 위해 나름 머리를 쓴다고 해서 시작한 다음사업이 당시 막 한국에 진출한 피라미드 사업이었다. 하지만 후에 법률이 바뀌면서 쫄딱 망하고 말았다. 이후 이런 사업 저런 사업 손대는 족족 망해 결국 집 한 채만 남기고 거지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업 아이템이라고 들고 오는 친구들이 죄다 양아치 사기꾼 건달 같은 놈들이니 진실 된 사업거리를 물고 오는 놈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이 와중에 오영감은 명을 달리했고 어머니마저 당뇨와 중풍에 쓰러졌다.

 

다행히도 집은 남았는데 이 집 명의만큼은 유일하게 오씨 자매 명의로 남아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매가 미국에 건너온 뒤에도 오빠 놈은 이집을 팔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다. 유일하게 남은 알량한 집 한 채 마저 못해먹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씨 자매를 괴롭혔다. 어머니가 오빠 놈 인질로 그 집에 잡혀있는 꼴이어서 오씨 자매의 선택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오씨 자매는 오늘도 오빠의 협박전화에 전전긍긍하며 산다. 세상에 죽일 놈들 너무도 많다! 예전에 어떤 놈이 필자를 찾아와 애타게 동생을 찾기에 참 우애가 깊은 형제구나!” 하고 흐뭇한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평생을 동생 등꼴 빼먹다가 동생이 이를 견디지 못해 도망가자 그렇게 애타게 찾은 것이어서 필자를 씁쓸하게 한일도 있다. 형제자매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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