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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제비 세끼들
11/25/201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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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제비 새끼들?

                                                                 

  옥 할머니는 올해 연세가 막 칠순이 넘으셨다. 영감님은 몇 년 전 LA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버스에 치여 6개월 정도를 혼수상태에 있다 돌아가셨다. 합의금조로 받은 돈으로 방 세 개짜리 콘도를 사셨고 여기에 거주하신다. 옥 할머니는 매우 건강하셔서 지금도 건강식품과 화장품을 팔러 다니신다. 10 여년 전 부터 아는 이의 소개로 조금씩조금씩 해 오던 일이 이제는 규모가 제법 커져서 전문 직업이 되었다. 회원제 방식으로 운영되는 이 회사는 그 역사와 사업규모가 꽤나 큰 주류사회에서도 이름 있는 기업이어서 옥 할머니의 입지는 꽤나 탄탄하다 할 수 있다.

 

 옥 할머니가 필자와 연이 닿은 것은 할아버지가 다치시고 나서 병원에 계실때였는데 할아버지의 생존가능여부와 보상금 처리문제가 어떻게 진행되겠는가에 대해 문의하시면서 부터이다. 이 분은 자녀가 21녀인데 위로 아들 둘에 끝으로가 딸이다. 옥 할머니는 요즈음들어 갑자기 활기가 차고 삶의 의욕이 넘쳐 보이셨다. 그 이유는 자식들 때문이었다. 50, 48, 45세 되는 그 집 3남매가 모두 할머니 집에 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잘 되서 오게 된 것이 아니라 모두 인생에 패배하고 오게 되었다.

 

 큰 아들은 어릴적부터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질 나쁜 애들과 어울려 다니다 깡패가 되었고 교도소에도 몇 번 다녀왔다. 이러다보니 결혼도 하지 못했고 술집을 운영하다 쫄딱 망한 뒤 엄마 집에 들어 온 것이 어언 10년 전인데 10년 동안 한 번도 일을 해 본 적이 없이 그냥 옥 할머니에게 기생한다. 노상 먹고 자고 TV 보고 컴퓨터하고 또 먹구 자구 하다보니 덩치가 코끼리 만해졌다고 한다. 이런 덩치에 성질도 포악하니 감히 누가 건드릴 생각도 못한다.

 

 작은 아들은 꽤나 촉망받던 프로그래머였다. 금융관련 컴퓨터 프로그램이 전공이어서 월가에서 스카웃을 해 갔고 연봉도 무척이나 컸다. 꽤나 잘 나가던 시절 연애를 했고 상대는 변호사 일을 하는 여성이었다. 둘 사이에 아들을 하나 두었고 잘 사는 듯 하더니 작은 아들이 몇 년 전 갑자기 실직을 하고나서 부부싸움이 잦아졌고 작년에 이혼을 했다. 그런 혼란한 와중에서 작은 아들은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다가 그나마 완전 거덜이 났고 혼자서 여기저기 거지꼴을 하고 다니다 하숙집에 하숙비도 몇 달치를 못내 끝내 쫓겨났다. 홈리스를 할 것이냐 어머니에게 갈 것이냐를 두고 며칠 밤을 공원에서 세워가며 고민하다 너무 배가고파 엄마 집에 들렀다가 오늘만, 오늘만 하다 그냥 눌러 앉게 되었다. 자존심 보다 현실의 안락함을 택한 현명한(?) 선택이었다. 어언 1년이 다 되었다.

 

 막내인 딸은 어린 시절부터 연애 박사였다. 주말이면 나이트클럽에 출근 하다시피했고 어릴때부터 어디선가 ID까지 위조해와서 이런저런 유흥 클럽에 놀러 다닌 날나리 중 상 날나리였는데 한 달이나 길면 두 달 단위로 남자 친구가 바뀌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다 중도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신랑이 꽤나 유능하고 성실한 남자여서 천만다행이었다. 둘 사이에 딸을 하나 두고 재미나게 사는 듯 했는데 돈 잘 벌어 다 주는 남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려 식당을 한다고 나서면서부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LA 한인 타운에서 꽤나 큰 규모로 갈비집을 시작했는데 영업이 꽤나 잘 되었다. 다 좋은데 문제는 딸년의 바람기였다고 한다. 이런저런 남자들과 추문이 돌고 상당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한다.

 

  옥 할머니 표현을 빌자면 단골로 다니는 손님 중 얼굴 반반한 남자치고 안 붙어 먹은 놈이 없을 정도여서 인근 업소에 소문이 자자했고 씩씩거리며 주인년 어디있냐고 팔을 걷어 부치고 오는 부인네들이 한 달에 한 번 꼴일 정도였다 한다. 이러다가 결국 남편에게 들통이 나서 서로 깨끗하게 합의 이혼했다. 사위에게 미안해서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며 사죄했다고 하신다. 어찌보면 사위에게는 정말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위안하신다. 이런 난리통을 치르다보니 갈비집 영업이 제대로 될리 없고 결국 헐값에 처분하였는데 이런 저런 빚을 다 갚고 나니 돈 한 푼 손에 쥐는 것 없이 끝이 나고 말았다. 남편에게 다시 돌아 갈 수도 없고 나이가 많아 취직도 할 수 없고 식당에 웨이츄레스 자리를 알아봐도 경험이 없다고 써 주질 않았다. 혼자 사는 친구 집에 얹혀 살았는데 기간이 길어지자 친구가 자꾸 눈치를 줘서 죽기보다 싫었지만(?) 결국 엄마집에 오게 되었다.

 

 이렇게 근 30년 만에 3남매가 한 집에 살던 시절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옥 할머니 이웃에 사는 한국분들 중 이집의 사정을 아는 모든 이들은 옥 할머니를 불쌍한 늙은이라고 동정했고 자식들을 욕했다. 지들 잘 살 때는 몇 년에 한 번 들여다보지 않더니 지들 필요하니까 늙은 엄마를 뜯어먹고 산다고 인간 같지 않은 자식들이라고 싸잡아 욕했는데 옥 할머니는 이런 한심한 상황이 오히려 즐겁다는 듯이 예전보다 더욱 활기차고 일도 더욱 더 왕성하게 해 나가셨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과 국을 끓여놓고 이것저것 반찬을 만들어 놓으신 뒤 오전 늦게까지 자빠져 자는 자식들을 깨우지 않고 조용히 나오신다. 출근하셔서 이런저런 업무회의와 영업계획을 세우고 난 뒤 오전 9시쯤 집으로 전화를 해서 자식들을 깨운다. 셀러폰으로 하지 않고 꼭 집 전화로 한다. 이집 전화기는 옛날 구식이어서 소리도 무식하게 무지무지 크다고 한다. 3남매 중 누군가가 일어나서 받을 때 까지 건다.

 

  그리고 전화 받은 자식에게 국은 렌즈에 넣고 몇 분 돌려서 데워먹고 반찬은 어디어디 있으니 찾아먹고 나머지 형제도 아침밥 거르지않게 꼭 먹게 하라고 시시콜콜 잔소리를 하신다. 점심때가 되면 또 전화하셔서 이것저것 챙긴 뒤 퇴근 무렵 꼭 마켙에가서 자식들 해 먹일 이런저런 야채와 고기, 생선 등을 구입한 뒤 집에 돌아와서 이것저것을 해 먹인다. 그리고 자식들이 먹는 것을 흐뭇한 미소로 쳐다보신다고 한다.

 

 옥 할머니가 필자에게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이것들이 세상에 나가서 상처받고 아플 때 찾아올 곳이 어디 있겠어요? 애미 밖에 더 있나요? 요즈음 저는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요. 퇴근 무렵 장을 볼 때 너무 행복해요. 집에서 어린 제비 새끼들(?)이 먹이를 받아 먹으려고 저를 기다려 주잖아요. 요즈음 너무 행복하답니다!” 였다. 부모의 마음은 다 이런가 보다. 옥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필자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우리 모두 어머니께 잘하자! 돌아가시고 나면 제일 ()이 되는 것이 효도하지 못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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