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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에 자취를 남긴 조선의 선구자들: The Trace of Early Korean Pioneers in Boston
06/05/2019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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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ace of Early Korean Pioneers in Boston

View in English via Google translation, Click here, some inaccuracy though.

 

135년전에 한국에서 온 첫 유학생이

보스턴 Govenor Dummer Academy에 등록했다.

원래 유학생으로 온게 아니고,

고종 황제가 보낸 민영익을 전권대신으로 한

8명의 보빙사(친선사절단)에 수행원으로 따라온 26세의 유길준이었다.

대한제국은 1882년 미국과 수호통상 조약 체결,

초빙의 답례로 보빙사 報聘使 일행이

1883년 최초로 미국 땅에 첫 한국인의 발자취를 남겼다.

 



보빙사절단은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에 기착,

시카고, 워싱턴, 뉴욕을 거쳐 오랜 여행 끝에 보스턴에 도착했다.

미국 대통령 Chester Arthur를 뉴욕에서 만나

국서를 전하고 양국간의 우호를 다졌는데,

대통령에게 큰 절을 해서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들은 보스턴의 만국박람회, 시범농장, 방직공장, 또 다른 도시에서

전기회사, 철도회사, 소방서, 우편제도, 전기시설, 등 공공기관을 시찰하고

미국의 교육제도에 대하여 소개받았다.

이를 계기로 조선제국에 우정국 설치, 경복궁의 전기설비, 농업시험장등이 설치되고

교육제도 확립, 선교사들의 조선 파견 등의 계기가 되었다.

 


앞줄 왼쪽부터 퍼시벌 로웰홍영식민영익서광범중국인 통역 우리탕,

뒷줄 왼쪽부터 무관 현흥택통역관 미야오카 츠네지로,

수행원 유길준무관 최경석수행원 고영철변수,




수행원으로 온 젊은 유길준의 행적이 특기 할 만하다.

유길준 (兪吉濬, 1856-1914)은 혼자 남아

국비 장학생이 되어 고등학교에서 수학했으나,

갑신정변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 유럽을 거쳐 1885년 귀국해야 했고,

귀국 후 1885년 말부터 7년간 가택연금을 당한다.

 


그의 기록과 자료가 보스턴 북쪽 Peabody Essex Museum PEM에 남아 있어,

그의 행적을 더듬어 Salem에 있는 PEM을 방문했는데

2003년에 전시 되었던 모든 자료가 도서관에 Archive 되어 있어

online자료만 볼 수 있었다.

 



유길준은 문신이자 외교관, 작가, 정치가, 개화 사상가이다.

신사상과 의욕에 찬 파란 만장한 그의 일대기는 하나의 책으로도 모자랄 정도이다.

그는 모두 20권으로 된 서유견문 西遊見聞 을 저술

서양의 정치 제도와 문명의 실태를 소개 근대 계몽기의 지침을 제시했다.

한국의 실정에 맞는 자주적인 개화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갑오경장 甲午更張 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근대 한국 최초의 일본과 미국 유학생이며,

개화파로서 민주주의와 합리주의 사상을 주장,

대한제국의 사회 구조 개혁을 시도했으나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1910 8 29일 한일 병합 조약에 반대운동을 추진하다가 체포되었고,

전국민을 선비로 만든다는 목적으로 흥사단을 조직했고,

후에 도산 안창호가 이를 이어 받았다.

 



이후 김홍집 내각에서 1894(고종 31) 갑오경장 당시 단발령을 추진하였으며,

양력 사용, 신식 학교 건설 등의 개혁정책을 수립했다.

학교를 설립하고, 노동야학회를 조직하여 문맹퇴치와 국민 계몽에 앞장 섰다.

국문에 밝아 1895년 근대 최초의 한글 문법서, 국어사전인 조선문전을 발간하였다.

 

아관파천 俄館播遷 으로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1900년 귀국 하여다 일본 정부에 체포되어 4년간 구금당했다.

1905 11월 을사보호 조약이 체결되자 이를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다.

총독부의 회유와 일본 정부가 준 작위를 거절하고 여생을 마쳤다.

사후 흥사단을 이어 받은 안창호에 의해 애국자, 정치 지도자로 추모되었다.

 

2003 9월 PEM 박물관 

그의 스승이었고 이 박물관 초대 관장인 에드워드 모스 Edward Morse와의

인연으로 유길준 Yu Kil-Chun전시실이 열렸다.

조선 말기 왕실에서 사용된 복식 및 사대부 집안의 장식품과

유길준이 사용하던 갓, 모스에게 보낸 영어로 쓴 편지,

후손이 받은 Govenor Dummer Academy의 명예 고교 졸업장도 전시되었다.



유길준이 기증한 갓, 19세기




유길준이 Morse에게 보낸 편지


생황

신부복 (활옷), 18세기

장승. 19세기

Sewing tray with fish and plants, 18세기

제주도 병풍, 19세기


 Nextar Ritual (Kamnot'aeng) 조선시대 1744


새로운 땅의 선구자의 길은 항상 고난이 따른다.

영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26세라는 나이에 고등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하고,

갑신정변으로 학교를 마치지도 못하고

귀국하는 길에 유럽의 곳곳을 다녀가며

새로운 것을 보고 받아들여 책을 써내고

조선의 개혁에 이바지 한

그의 노력이 새삼 과감한 선구자의 이미지로 닥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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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의 뒤를 따른 한인 이민역사를

보스턴을 중심으로 간단히 돌아 본다.

조선제국의 친설사절단이 미국에 첫발을 디딘 20년 후1903,

한국인의 미국 이민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이민으로 시작 되어,

1905년까지 총 7천여 명이 도착하였다.

이 중에 안창호, 이승만 등 다수의 유학생이 포함되어 있었고,

1907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하버드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은 기록을 비롯하여

1910년대에는 하와이 초기 이민의 자손들 (양유찬, 김계봉)

보스턴 유학이 이어졌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에는 일본이 유학 길을 막아

중국을 통해 망명, 출국하여 여권도 없이 밀입국한 신도 新渡 학생들이 있었다.

그후, 1924년 김활란이 보스턴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기록이 있고,

1930년대에 들어서는 다수의 유학생들이

주로 기독교 단체의 후원으로 하버드대학교, MIT, 보스턴대학교

등에서 수학했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년부터 1964년까지 한국인의

미국 이민자 수는 약 15,000여 명에 달했는데,

주한 미군과 결혼한 6천여명의 전쟁신부(War Bride)

5천여명의 전쟁 입양아들, 그리고 3천여 명의 유학생들이었다.

 

1952년의 맥카렌-월터 이민법안 McCarran-Walter Immigration Act의 발효와 함께

한국은 최초로 연간 100명의 이민쿼터를 부여받았다.

당시 미국 시민권이 없는 동양인들은

토지 구입, 노후연금 혜택이 없는 것은 물론,

인종 차별, 직업 제한, 많은 백인우월주의를 감내해야 하였다.

 

보스턴에도 적은 수의 한국인들이 정착,

주로 정부에서 파견된 공무원이나 시찰을 목적으로 한 대학처장,

목사, 그리고 유학생 등이 대부분을 이루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1953년 추수감사주일에 뉴잉글랜드 지역에서는 첫 번째로

보스톤한인교회 (초대 목사 박대선, 현재 이영길 담임목사) 가 창립되었다.

보스톤한인교회는 창립부터 약 20년간

뉴잉글랜드의 유일한 한인교회였고

이 지역에 여러 교회 설립의 뿌리를 제공한 어머니 교회였다.


(Ref: 보스톤에 옮겨 심어진 순례자들의 이야기: 보스톤한인교회 60년사)

 

1903 7월 하와이 오아후 섬에서 시작된 이민교회를 시작으로,

한인 미국 이민사의 첫장을 함께 한 초기 한인교회들은

신앙의 제단이었고, 동포들의 모임의 장소, 진정한 안식처였다.

우수개 소리이지만 중국인 셋이 모이면 식당을 차리고,

일본인 셋이 모이면 회사를 열고

한국인 셋이 모이면 교회를 세운다고 한다.

 지난 110년 이상 미국내의 한인교회는

조국의 광복, 2세 교육, 지도자 양성, 한인사회 발전의

구심점이 되었던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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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유길준 100주기 특별전


보스턴에 있는 Museum of Fine Arts 한국관에 역시 보빙사의 방문이 전시되어 있는데

Percival Lawrence Lowell 의 조선과의 인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퍼시벌 로웰 Percival Lawrence Lowell 1855-1916 

미국의 사업가작가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다.

로웰은 조선에서 약 3개월간 체류하였는데

기록을 정리하여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놓았다.

당시 유력인사인 할아버지가 Lowell시를 세우고곳곳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

Town Lawrence, Mt. Percival


 



PEM이 위치한 Salem 이란 작은 도시는

미국이 아직 영국의 식민지였던 1692

마녀사냥 Witch-Hunting이라는 어두운 역사가 드리워져 있는 곳이다.

종교의 자유를 추구했던 청교도들이 애매한 사람들을 마녀로 낙인찍고,

마녀재판으로 온 마을이 한동안 혼란에 휘말린 역사이다.

지금은 Salem Witch Museum을 비롯해서 온도시가

Tarot 점보기, Psychic Witchcraft로 관광사업으로 붐비고 있다.








이곳의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날라 다닌다.


Salem의  관광 명소 Salem Witch Museum

동상은 Roger Conant 1592-1670 

The First Settler of Salem 1626




보스턴, 선구자, 유길준, 한인이민, 보스톤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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