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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가 된 젊은 의대생 체 게바라의 전설: Legacy of Med-Student Che Guevara “The Revolutionary”
05/02/201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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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acy of Med-Student Che Guevara “The Revolutionary”

View in English via Google translation, Click here, some inaccuracy though.

 

한 의대생이 게릴라 혁명가가 되었다.

카스트로 Castro와 함께 쿠바 공산혁명에 앞장 섰던 체 게바라

Ernesto “Che” Guevara (1928-1967)이다.


Ernesto “Che” Guevara (1928-1967)

“Hasta La Victoria Siempre (승리의 그날까지)


혁명의 제2인자로서 권력을 잡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상황에서도

1962년 소련이 미국 공격용 핵미사일을 쿠바에 설치하는 계획에 과감히 반대,

소련을 ‘제국주의적 착취의 공범’이라고 비난, 결국

큐바를 떠나야 했고, 3국 콩고, 볼리비아의 혁명을 돕는 투사가 된다.

마국 CIA가 관여된 볼리비아 게릴라 전에 체포되어

재판도 없이 젊은 나이 39세에 처형 당했다.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50년이 지났는데도 그는 Time 이 선정한 20세기 영향력있는

100인 중에 하나로 남아 있고,

쿠바 아바나에도 그의 대형 실루엣이 혁명광장 건물에 부각되어 있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체 게바라의 모습은 카키 군복에, 베레모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수염, 날카로운 그의 눈동자이다.

 


쿠바 국기 옆에 체 게바라 “Hasta La Victoria Siempre (승리의 그날까지)




원래 국적은 아르헨티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194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대생이다.

혁명 후에 공적을 인정 받아 쿠바 시민이 되었다.

의대생일 때 모터사이클로 라틴 아메리카를 3번 돌면서

가난과 굶주림, 질병에 고통 받는 서민, 소작농, 광부들을 보고

사회 정치적인 구조적 문제, 상황과 모순에 분노,

사회개혁을 추구하는 젊은 혁명가로 다시 태어 났다.

 

의과 대학생 게바라와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


12,000Km 이상 달린 그의 노트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The Motocycle Diaries로 뉴욕타임스가 출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04년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

게바라와 같이 여행을 한 의대생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후에 게바라가 초청,

쿠바의 의과대학을 세우는데 기여한다.


 


여행 당시 아르헨티나는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페론 대통령과

두번째 부인 에바 페론 에비타가 집권하던 시기이다.

라티노 문화권의 정치 경계 없이 하나로 통합된

히스패닉 아메리카를 꿈꾸게 되었다.

의사 면허를 받고 떠난 세번째 여행 중

과테말라의 쿠테타를 목격하고 의사 가운을 벗어 던지고

무장 투쟁의 혁명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1954년 멕시코 종합병원에서 의사생활을 시작,

55년 망명 중이던 카스트로 Fidel Castro의 동생 라울 Raul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726게릴라 조직에 가담하게 된다.

195611월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에 상륙 게릴라전에 승리

쿠바 공산 정권 수립에 공을 세운다.



1960년 아바나 거리를 행진중인 게바라(앞줄 왼쪽에서 셋째)와 카스트로(앞줄 맨 왼쪽).



게바라는 정부 고위직으로 일했지만 권력을 악용하지 않았다.

비밀리에 묻혔던 게바라의 시신은 1997

쿠바 아바나에서 300Km 떨어진 산타클라라에 안장되고,

그를 흠모하는 참배객들이 몰리고 있다고 한다.



 산타클라라에 있는 The Che Guevara Mausoleum


그는 스타 혁명가이다.

좌파 우파 관계없이 사회의 모순을 대항하며

정의를 내세우는 집단들의 아이콘이 되어 있다.

그의 베레모, 텁수룩한 수염, 날카로운 눈빛의 사진은

혁명가의 초상이란 제목으로

가장 많이 애용되는  저항문화의 심볼이다.

체 Che 는  아르헨티나에 이주해 온 이탈리아인들이 쓰던 말,

'또는 '나로서는'이라는 뜻게바라의 별명으로 붙여졌다.

 


혁명가의 초상




쿠바 유엔 대표로 참석


혁명 직후 쿠바의 일반 대사로 해외에 파견되어

이집트의 나세르, 인도의 네루,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등

 비동맹 국가 지도자들과 만나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외교활동을 하고,

UN 총회에서도 쿠바 대표로 참여했으며

북한에서 김일성을 만나기도 했다.

이때부터 검은 베레모와 구겨진 군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현재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 사이에는 혁명 광장을 방문한 친구 두분의 인증 사진



혁명광장에 50년대 차를 타고 찾아 온 관광객들이 많다


쿠바 지폐 3 페소에 그려져 있는 게바라의 초상

 



쿠바의 아름다운 항구 도시 아바나에서

막연히 알고 있던 체 게바라의 전설을 다시 찾았다.

말레꼰 방파제에 부서지는 거대한 파도를 즐기는 쿠바인들을 보며

비록 공산주의자 였지만

인간의 기본 권리자유를 추구하던

젊은 혁명가 코만단테 체 게바라의 모습이 새롭게 닥아 온다.

  

체 게바라의 젊은 때의 모습


모터사이클 순례중  나병환자들이 만들어 준 뗏목을 아마존에 띄우고


게바라의 시신과 기념비가 있는 중앙의 산타클라라



The Motorcycle Diaries Official Film Trailer

음악을 멈추시고 영화 Trailer를 한번 보세요

유튜브, Amazon에서 이 영화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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