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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벽이 말을 한다면....
02/11/201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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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늦가을 서대문 형무소를 다녀 왔다.

옛날 감옥인 아닌,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바뀌어져,

조국을 위해 고초 당하고  목숨까지 바친 많은 애국지사들을  만날 있었다.

1907 일제 한국통감부가 세운 경성감옥으로,

1923 서대문 형무소로 개칭되었고, 

1987 박물관, 문화재로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변모했다.

대한제국 말기에 지어져 일제시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광복 이후 정치적 격변과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의 고난과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전시관, 중앙사, 12옥사, 공작사, 한센병사, 순국선열추모비,

사형장과 시구문, 격벽장, 여성옥사, 취사장등  여러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100여년 동안에 조선, 대한민국을 사랑하던 수많은 애국지사들, 

순국열사들, 이름도 모르는 이들의 행적과 

옥사 건물, 감옥방, 취조실, 고문, 사형방 시설 등을

보는 동안 마음이 무거워지고 숙연해 졌다.

우리에게 알려진 안중근, 유관순, 강우규, 이준, 김구, 이봉창,안창호,….

고등학교 동기친구  김근태 의원도 만날 있었다.

 




1911 105 사건으로 김좌진 장군을 비롯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고,

1919 3.1운동 때는 손병희를 포함한 33,  유관순등

3,000명의 조선인이 한꺼번에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

유관순은 여성만을 수감하는 여옥사( 유관순 지하감옥) 갇혀 있었고,

악형(惡刑) 시달린 끝에 순국하였다.



해방이 되면서 1945  서울형무소로 개칭,

시기에는 반민족행위자(反民族行爲者) 친일세력들이 대거 수용되었다.

1950년대에는 여운형을 비롯 수감자의 70퍼센트가 좌익계열이었다.

 

1961 에는 서울교도소로 개칭되었다가,

1967 7 7일에 서울구치소로 바뀌는 기간 동안에는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등과 같은 정치적 변동에 따라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기도 했다.

김두한 국회의원도 여러 수감되었고

국회부의장을 지낸 조봉암과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도 이곳에서 사형을 당하였다.

1974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문세광,

1980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가 이곳에서 사형을 당하였고,

1987년에 서울구치소가 의왕으로 옮겨질 때까지 형무소의 역할을 계속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알카트라츠 감옥이 관광지로서 인기가 있지만,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지닌 애국지사들의 이야기는 없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있는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USHMM)

보스턴의 New England Holocaust Memorial

6백만  유대인 수난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처럼 민족을 찾기 위한 항쟁의 역사는 아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의 벽이 말을 있다면…..

 




사실은 독립문역에서 출발하는 안산자락길을 오르기 위해

친구들과 만나기 전에 일찍 나가서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돌아 볼수 있었다.

안산 자락길을 오르는 동안에도

산길옆에서 애국지사들의 이야기를 읽을 있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은 한번 방문해 볼만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전철 3호선 독립문역 5 출구로 나가면 바로 보이는

 독립문과  주위에 조성된 '서대문독립공원' 일부이다.

중국에서 도착하던 사신을 맞기위해 세운 영은문과 모화관이 있던 자리에,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독립한 것을 상징하기 위하여 독립문과 독립관이 세워졌다.

1890년대 독립협회의 서재필 주도하에

프랑스의 개선문을 참고하여 모양새를 스케치했고,

 1896 스위스계 건축가 아파나시 사바틴 (Sabatin) 설계 시공,

1897년에 완공되었고,  현판은 김가진의 작품이라고 한다.

독립문은  1963 대한민국 사적 32호로 지정되었는데,

전면에는 영은문이  있던 자리에 기둥돌만 남아 있다.



김근태 (金槿泰)1947 2 14일에 경기도 부천 출생,

1965년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 서울대학교에 입학,

196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하여 손학규, 조영래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총사’로 불리기도 하였다.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운동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4,5 공화국 당시 민주화운동의 증인이라고 있는 인물이다.

 

1971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1974 민청학련 사건 등에 관여되어

고난의 청년기를 보냈다.

1983 민주화운동청년연합(약칭 민청련) 초대 의장이 김근태는

1985 서울대 민추위 사건 (깃발사건)으로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모두 갖은 고초를 겪었지만

김근태는 가장 심하게 당해 그의 지병의 원인이 되었다.

1996년부터 15, 16, 17 국회의원을 지냈고,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역임하였다.

지병 파킨슨 병이 고문으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고,

2011 뇌정맥혈전증으로 6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사후 2016 '민주주의자 김근태 ' 제정되었고,

민주주의자, 민주화의 대부, 세계의 양심수 등으로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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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서 "오등은 자에 ...."


지하철 3호선 5번 출구







역사전시관








 













유관순 열사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애국지사들

























이 사형장 문을 지나간 이들




시체를 내가는 문-시구문











여옥사






견학 온 어린이들



독립공원내 현충사






안산자락길




"근태가 살던 방이란다"



고 김근태 형의 유물


벽에걸려 있는 문익환 옹이 근태를 추모하며 쓴 시 "근태가 살던 방이란다" 1986



독립문의 모형이 되었던 파리의 개선문- 마침 몇일전 눈폭풍속에 다녀왔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독립문, 김근태, 애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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