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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나날
01/26/202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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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6/2020


경이로운 나날

경이로울 것이라곤 없는 시대에
나는 요즈음 아침마다
경이와 마주치고 있다

이른 아침 뜰에 나서면
창밖 화단의 장미포기엔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이 영글고,

산책길 길가 소나무엔
새 순이 손에 잡힐 듯
쑥쑥 자라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항다반으로 보는
이런 것들에 왜 나의 눈길은 새삼 쏠리는가.
세상에 신기할 것이라곤 별로 없는 나이인데도.
김종길 시를 읽었습니다

나에게 무슨 희망을 누가 쥐어지기를 기다립니까
내가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아무 것도 갖지 못합니다
노인의 오늘과 내일은 셀프로 합니다
내가 내 길을 닦고 그 길 위에 내가 서야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셨다.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2-23
12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13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14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5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7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18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늘의 묵상“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예수님 시대에 갈릴래아는 게으른 사람들이 모여 불법을 저지르는 곳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어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이 너무나 팍팍한 곳이었기에 남쪽 유다 사람들은 갈릴래아를 멸시하였습니다. 먹고살기 바쁘면, 품위 있고 고상한 시간을 즐기는 것은 사치에 가까운 것이지요. 요샛말로 ‘누구는 편안히, 즐겁게 살고 싶지 않겠냐?’는 푸념이 갈릴래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를 선포하신 곳은 바로 갈릴래아였고, 공생활의 대부분도 갈릴래아에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가난한 곳이었고, 예수님께서 만나신 이들은 대개가 아프고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제자들도 그러하였습니다. 내세울 만한 능력도 기술도 명예도 없는 그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인류 구원의 역사를 써 내려가시기 시작하셨지요. 개천에서 용 나듯 또 다른 성공 사례로 예수님의 공생활을 언급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예수님께서는 부유한 도시나 성공한 이들의 생활 방식에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예루살렘이나 갈릴래아의 큰 도시, 예를 들어 세포리스와 같은 큰 도시에서 벌어지는 삶의 구체적 언급은 복음서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읽고 접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과 사회적 약자들의 만남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구원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의 부자와 성공한 사람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각자의 삶의 처지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를 선택하신 이유는 가진 자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이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고, 그 연민으로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사람답게 살기 바라시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삶의 처지를 살피는 것에 지치지 말아야겠습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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