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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한인 후손들
02/26/201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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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 선 '멕시코 한인 후손들'[LA중앙일보]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보내셨나니"
기사입력: 09.29.05 11:42

 

 

 
한 한인 후손의 아파트 입구에 부조된 태극마크(티화나)


 

 

1995년 쿠바를 방문했을 때 말로만 들어왔던 한인후손을 만났는데 그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 자매는 나와 동갑나기였으나 몸이 허약해 아이도 가질 수 없었다. 어렵게 집도 방문했는데 쓰러져가는 헛간 같았다.

 

그 자매의 어른들 즉 우리 선조들이 멕시코 땅에 첫발을 내린지 100주년이 되었다. 100년 전 멕시코 유까딴 반도의 에네껜 농장에서 많은 고생을 하였던 우리 선조들의 인생역정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어느 나라에나 처음으로 이민을 가는 사람들에게는 예상외의 고생이 따르는 것처럼 선조들의 멕시코 초기이민도 극심한 고생 즉 노예와 같이 혹사되고 우마와 같이 취급되었다. 에네껜농장으로 보내진 노동자들은 에네껜을 자를 때 가시에 찔리는 일이 많았으며 그 잎들을 잘라 섬유질 실을 벗겨내는 일과 메리다지방의 기후가 여름의 경우 섭씨 30(화씨 90)가 훨씬 넘는 밀림지대라 그 고생이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멕시코인 감독들의 수하에 놓여 졌는데 그들은 채찍을 들고 소나 돼지들을 몰듯 소리를 지르며 다녔고 저희의 명령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인정사정없이 매질을 해댔다.

 

그들의 노동으로 농장주들은 부귀를 누렸지만 농장의 노동자들은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 노동자들은 매우 낮은 임금을 받았고 생활용품도 그들로부터 구입해야 했는데 그 값은 비쌌던 것이다. 모국은 오래전부터 일본의 야욕 앞에 풍전등화와 같았으므로 한국정부에서도 그들을 도울 만큼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수중에 모아진 돈이 없었고 자유노동자로서 더 좋은 임금으로 고용되기를 원했지만 농장 주인들이 그렇게 너그러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부분 다시 낮은 임금으로 에네껜농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고 일부는 시멘트 광산이나 개간 사업지로 갔다. 더구나 1910년에 발생한 혁명 때문에 엄청난 혼란과 생계 위협에 휩싸여 제대로 정착도 하지 못하고 대이동을 시작 멕시코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 한인후손들은 지금까지도 메리다지역에서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 후손들도 있지만 멕시코시티를 비롯하여 멕시코 전역으로 흩어져 살고 있다.

 

메리다지역은 1995년부터 조남환 선교사가 흩어져있는 이민후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모아 한인회를 재조직하여 한글도 배우고 한국음식도 나누며 한인 후손으로서의 자부심도 심어주는 등 멋지게 뭉쳐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낙후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 후손들이 많이 있다. 물론 '낙후한 생활'이란 우리들의 기준이고 다르게 표현하면 현지인들처럼 동화되어 잘(?) 살아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 시티지역은 일찍부터 메리다지역을 벗어난 한인후예들이 UNAM(멕시코국립대학교) 교수 대농장주 등 다양한 직종의 비즈니스에 종사하며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미국 텍사스와의 접경도시인 후아레스(Ciudad Juarez)지역은 초기이민자인 유진태의 후손들이 똘똘 뭉쳐 그 지역의 정치 경제부문에서 폭넓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노라 유(Nora Yu)는 여러 관직을 거치며 현재는 연방 하원의원으로 후에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티화나지역도 일찍부터 한인후예들이 진출하였으며 한인후예 최초의 박사인 닐다 김 (Nilda Kim 여 안과)을 비롯하여 수명의 소아과 안과 치과 내과 의사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미 1970년에 이민후예들이 자체적으로 시내 중심부의 땅을 구입하여 1974년 한인회관을 완공하였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회관에 모여 서로 식사를 준비해 와서 회의도 하고 교제를 나누는데 이미 샌디에고(San Diego)에 진출한 한인후예들도 참석하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45:5-7)

 


최재민 선교사(213-675-7575)

 



 
 
 
티화나 한인 후손들이 직접 건축한 한인 회관.
1970년에 땅을 구입하였고, 1974년에 완공.


 


 

 
한인 후손 변호사 Marco Antonio Kim(티화나)

 



 

 
소아과 의사 Pedro Gabriel Chong(정) (티화나)


 


 

 
소아과 의사 Manuel Song(티화나)

 



 

 
한인 후손 최초의 닥터인 안과 의사 Nilda Kim (티화나)

 
 
 
 
 
 
국회의원 Nora Yu (후아레스, 2005년 사진)
 
 

 
 
멕시코시티에서 만난 한 한인후손.
마치 동네 아저씨 같습니다.
 
 
 
 
멕시코 이민 100주년 기념으로 한국 정부에서 지어준 한멕우정병원(Merida)
 
 
 
 
 
Campeche의 Manuel Lee의 집.
한번도 한국을 방문해 본 일은 없지만 여기저기서 본 자료들을 근거로
한국 모습을 가득 담아 지은 한옥식 주택.
 
이 집을 보면서 '아~~~ 모국이란 뭘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들도 언젠가 천국을 갈텐데 이렇게 한인 후손들이 조국을 그리며 사는 것처럼
 
우리가 볼 때는 저들이 완전히 멕시칸처럼 보이지만 한인 후손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 살되 천국을 그리며 살아야 되지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아래 청년처럼 그리스도인이라는 문신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리스도인임을 마음에 새기고....

 
태극마크를 문신한 한 한인 후손 젊은이(티화나)
 
 



 

- Tish Hinojosa - Donde Voy ~

이 Donde Voy에 대한 해설은 ↓  

http://blog.koreadaily.com/4mexico/135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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