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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둑을 찾아서 ...
02/29/202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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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넘치던 청춘시절에는 밥맛이 없다는 증세를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


누가 옆에서 밥맛이 없어서 밥 먹기가 싫다고 말하면


속으로 "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 나도 좀 밥맛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코 웃음쳤다 . 그런데 ..이 새봄에 나에게도 이런 별스런 증상이 나타났다 .



밥은 통 먹기가 싫고 ...과자 나부랑이를 찾는 나를 다스려 볼려고


라스베이거스에서 입맛 당기는 맛집을  찾아 나섰다 .


신문광고에서 점찍어 둔 집은 운암정이다 .


운암정은 간장게장을 특별 메뉴로 추가했다고


매주 주말 신문에서는 대서특필한다 .


그런데 ...광고만 요란하고 맛없으면 돈 아까워 어쩌나 ....


사실 여수에서도 서울에서도 간장게장 맛집을 몇 번이나


들락거려봤으나 강남 신사동 간장게장처럼 고급스런 맛을 내는 식당은 드물었다 .


그런데 신사동 간장게장은 내 수준에는 너무 비쌌다 .


아마도 3년전에는  1인분에 4만 5천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





손님이 올  때마다 찾아가는 라스베이거스 운암정은


그런대로 양심껏 비즈니스를 하는 식당이란 인상을 받았다 .


깔끔한 내부시설에 외국인들이 쇠고기를 $ 19.99 맘껏 구워 먹는


진풍경이 하나도 낯설지  않은 한식당이다 .




일본식당에서는 접시 1개당 2, 3불씩 추가하는 사이드 디시 .


나물 반찬 종류를  무한정 리필해준다 . 미국의 한국식당은 인심도 좋다.





내가 늘 즐겨 먹는 메뉴는 LA 갈비구이와 물냉면= $ 19.99이건만



오늘은 입맛 좀 살려보려고 간장게장을 주문했다 .



게장 정식은 $ 35.99. 좀 비싼 듯 하지만 밥도둑이란 말에 망설이지 않았다 .


내 몸이 봄맞이를 하는 듯  자꾸 면역력도 떨어지고 나른한데


밥보약으로 나를 기운차게 일으켜 보고 싶었다 . 

 

쌈밥과 함께 맛본 짭쪼름한 간장게장 ! 팁까지 $ 66정도 .


점심 한끼에 조금 과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신사동 게장만큼 별미는 아니었지만 미국에서 이 정도로 맛을 내는 간장게장집도


찾기 어려우니 그런대로 만족이다 .





운암정은 라스베이거스에서 크게 성공한 한인  Lee 선생이 경영하는 식당이다 .


Lee이름을 걸고 하는 식당이니만큼 신뢰감이 간다 . 워낙 돈 많은 분이라


식자재를 아낄 것같지 않아 마음이 우선 푸근하다 .



동양인이 라스베이거스에서 리커 스토어를 처음으로 운영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


Lee's Discount Store 라는 크고 높은 간판을 내세운 분이다 .


라스베이거스의 주류 거상 이해연Lee's Discount Liquor 라고 ..혹시 아느냐고


지나가는 미국인에게 물으면 넘버1. 이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


뉴스에서 읽은 그 분의 사업성공기는 흥미있다 . 사업하려는 분들께 


"배짱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 는 조언도 서슴치 않는 분이다 .



이 기회에


미국 주류유통 거상 Lee's Discount Liquor 에 대하여 좀더 알아보는 것도


유익한 일이라 생각해 검색창을 두드려 보았다 . 함께 읽어보자 .  
 
[임동준12-02 08:25] 이해언 리스디스카운트리쿼(Lee's Discount Liquor) 회장은 말한다.
나는 멋지게 살고 싶었다. 앞으로도 멋지게 살 것이다.” 멋지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회장은 “Try”라고 답한다. “나는 끝없이 도전한다. 할 일은 너무 많다. 성공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영어 한 마디 못하며 미국에 첫발을 디뎠을 때도, 막 막한 환경에서 쓰리잡(3 job)을 뛸 때도 그랬다.” 리스디스카운트리쿼는 네바다 주에 17개의 주류전용매장(SSM 규 모)을 운영하는 라스베가스 1위 업체이다. ‘Lee’는 현지 스타기업 인이자 통큰 자선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좁다는 친구의 말 듣고 가족동반 보따리 싸다 1942년생, 우리 나이 72, 머리가 깨끗하게 벗겨진 할아버지의 둥근 얼굴에젊은 날 고생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소년처럼 해 맑은 미소와 청년 같은 몸, 누구에게나 반가운 눈빛을 건네는 모습 에 미국의 남녀노소가 반한다. 미국의 주류사회인 백인들은 물론이 고 흑인, 히스패닉, 동양인들 모두 그와 악수하고 포옹하고 나란히 서서 사진 찍는 걸 행복해 한다.


어떤 미국인들은 그를라스베가스의 아이콘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라스베가스의 오바마라고 도 한다. 그는 스타다. 유통업자나 기업인이 아니라 엔터테이너로 비친다.
 
그는 1980 39세의 나이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왜?

 브라질에서 온 친구 하나가한국은 좁다, 더 넓 은 세상을 보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그때까지 그는 중앙부처(보건사회부) 공무원이었다.


다만 사고가 자유분방하 고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공직 생활이 갑갑하긴 했을 것이다.


목적지는 뉴욕이었다. 중간에 라스베가스에 들렀다.


궁금한 도시였고 가까운 친척도 있어 잠시 신세만 지고 떠나 려 했던 것이다.


1980 8 11일 라스베가스 공항에 내렸을 때 숨이 턱 막혔다.


40℃를 웃도는 날씨가 온몸을 휩 싸며 호흡을 가로막았다. 오래 머물 곳은 아니라는 생각에 식구들을 잠시 맡기고 서둘러 뉴욕으로 향했다. 한국인 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직업 세탁소,


친구에게 기술을 배웠다. 아이고, 신음을 하며 1주 만에 포기했다.


다시 가족을 남겨둔 라스베가스로 돌아왔다. 호텔, 카지노, (Bar)… 관광과 향락사업으로 24시간 돌아가는 소비도시. 영어도 제대로 안 되는 탓에 취직할 곳도 없었다.


흑인들이 주로 하는 잔디깎이 보조로 일하며 눈치를 보다 30평 규모의 임대 매장을 얻어 술 판매업을 시작했다. 그것이리스디스카운터리쿼의 출발이었다.
 
첫달 매출 2400달러, 임대료도 나오지 않아 호텔 식당 청소를 하는 등 매일 쓰리잡을 뛰었다. 33년이 지난 지금, 그는 라스베가스 주류유통의 20%를 점유하는 네바다의 거상이자 현지 아이콘이 되었다. 매년 불우이웃에 기부하는 금액이 1억 달러, 지역의 유력 정치인은 물론 기업인들이 그와 교유하길 원한다.
 
그에게 무 슨 일이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 영어도 제대로 안 되는 가운데


백인들의 주무대에서 차곡차곡 성공신화를 만들었 을까.


성공은 어렵지 않다, 배짱있게 도전하라.


 이해언 회장의 성공은 한 스텝 한 스텝 단계적으로 밝은 노력의 과정물이다.


한국인 특유의 관찰력, 과감한 실행력 이 일단의 성공으로 이끌었고, 미국식 경영철학과 의미 있는 사회환원이큰 기업인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볼 수 있 다.
 
이 회장이 밝힌 기업경영 원칙 몇 가지를 그대로 옮긴다. Lee's Discount Liquor 함축 메시지 영어가 서툴렀던 시기, 술을 한 병 사러 한 매장엘 갔습니다. 가만 보니 술을 파는 데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더군 요. 이게 해볼 만한 업종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미국에서 가장 잘 되는 소매업들월마트’, ‘샘스클럽’ ‘코스트코등이 모두 가격할인을 내세우고 있더군요. 그래서디스카운트를 내걸고, 말하자면 박리다매에 승부를 건 것이죠.
 
Advertise 미디어 광고 마케팅 십분 활용 미디어는 중요합니다.


내 가게를 알릴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써 봤어요. 찌라시를 만들어 뿌리기도 하고 문고리 에 거는 형태로 만들어 집집마다 걸기도 하고형편이 조금 나아지면서 지역신문과 벼룩시장 같은 정보지에 광고 를 내기 시작했고 여건만 되는 족족 광고를 했어요.


내가 유명해지게 된 계기도 광고 때문이죠. 고속도로변 곳곳에 옥외광고가 있는데 콘셉트를 재밌게 해서 꾸준히 하고 있어요. 내 얼굴이 그렇게 알려지면서 이젠 가발을 쓰고 싶 어도 못 쓴답니다.
 
Clean 고객의 반은 여자, ‘안전과 깨끗함조성 술을 술로만 보면 안 됩니다. 음료, 베버리지(beverage)로 봐야 해요. 또 고객 중 절반이 여자고객입니다.


우리 매 장 봐서 알겠지만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지요.


여자들은 환경에 민감합니다. 그들에게 서비스하려면 다 바꿔야 해요. 통로나 진열은 물론 등 밝기, 차에 실어주는 서비스 등등 모든 걸 여성에 맞추는 게 중요하죠.
 
Knowledge Up 지식 높이기 위한 직원 교육 꾸준히 공부하지 않는 비즈니스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우선 내 자신부터 술에 관한 책을 안 읽은 게 없고 새롭게 쏟아지는 정보를 끝없이 공부합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교육시키지요.


한 달에 1, 2회는 필수적으로 두 시간씩 교육을 합니다. 오너가 모르면 그 교육이 먹히질 않겠지요? 우리 직원들은 술에 관한 지식이 손님을 압도합니다. 가령 어느 지역 날씨에 변수가 생겼다 하면 그 지역의 올해 와인이 얼마나 줄어들 것인가, 지난해 출고 와인이 얼 마나 쏟아질 것인가를 유추하고 추가매입을 결정할 정도가 돼야 합니다.
 
After Service 무조건 바꿔준다 애프터서비스는 소매업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고객이 원하면 무조건 들어주는 자세가 필요해요. 우리는 디스카운 트를 전면에 내걸고 있으니까, 우리보다 더 싸게 파는 곳이 있다면 바로 조치합니다.


샘스클럽이나 코스트코 가격 보다 1센트라도 더 싼 값으로 바꿔줍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더 많이 매입하고 더 많이 파는데 못해 줄 리 없잖아 요.
 
Confidence 실패를 무서워하면 안 된다 실패를 안한 게 아니에요.


금융업에 나섰다가 실패하고 바(Bar)도 차렸다가 실패하고 그랬죠.


하지만 사업은 배짱 이 있어야 합니다. 실패하더라도 자신감을 갖고 해야 해요.


전망이 좋은 사업도 자신감 없이 하면 실패하고


전망이 안 좋은 업종이라도 배짱 있게 추진하면 성공할 수 있고 그런 게 사업입니다.


사업에는 은퇴가 없어요. 일은 죽을 때까지 하는 거죠. 돈을 벌고 못 벌고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평생, 내 돈이란 건 없는 거예요. 사는 동안 잘 관리하 는 것뿐이죠.


주변에, 사회에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내가 잠시 관리하는 것뿐이죠. 한국인들, 웨이크업(Wake Up)하 세요. 명퇴니, 은퇴니, 노후생활이니 그런 걱정 말고 지금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리스 디스카운트 리커 35경이로운 성장과 경쟁력의 비결
 
네바다주 최대의 주류 소매체인 리스 디스카운트 리커(Lee’s Discount Liquor·이하 리스 리커) 13일 창립 35주년을 맞았다. 1981 8 13일 스프링마운틴 로드와 존스 블러바드가 교차하는 사거리에 1200스퀘어피트 규모의플라자 리커로 문을 열어 강산이 세번 변하고도 남는 세월을 거쳤다.
 
한인 이민가정이 여기저기서 운영하던 작은 리커스토어와 다를 바 없던플라자 리커는 알파벳 순서로 가게 이름이 나오는 전화번호부의 맨 처음에 실리도록 ‘A Plaza Liquor’로 이름을 바꿨다가 80년대말부터 매장을 늘리며 창업주 이해언 회장의 라스트네임을 따 오늘의 체인브랜드를 갖게 됐다.
 
짧지 않은 세월이지만 리스 리커의 성장세는 가히 경이롭다.


지난달 오픈한 헨더슨 스토어까지 19개 매장이다. 10월에 듀랑고 지역에 20호 매장을 열게 된다. 라스베가스 지역에만 18, 유타 인근 메스키토에 1개가 있다.


19개 매장은 5~36천 스퀘어피트 규모다. 1개 스토어 당 평균 16천 스퀘어피트 규모이며, 연면적으로 계산하면 풋볼 구장 6개 이상이 들어설 만한 규모인 30만 스퀘어피트가 넘는다. 총 매출 규모는 1억달러. 매장 1곳당 연간 평균 500만달러어치씩 술을 파는 셈이다. 종업원수는 300여명에 달한다.
 
120여년 가까이 되는 미주지역 한인 이민사회 역사상 이만한 규모로


35년간 지속 성장한 기업을 찾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경쟁이 심하고 자본력에 좌우되는 리테일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리스 리커가 거의 유일하다.
 
마흔을 앞둔 나이에 이민길에 올라 베가스에 정착, 리커스토어를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으며 어느덧 70대 중반에 들어선 리스 리커 이해언 회장은감회가 새롭고, 감개가 무량할 뿐이라며 목이 멘다. 이른바 메인스트림 비즈니스라는 주류판매업을 다른 곳도 아닌 베가스에서 소수계 아시안이 이만큼 성장시킨 것은 가히 기적이라고도 불린다.
 
매장이 잘되니까 사법당국의 함정수사도 있었고, 세무당국의 시도 때도 없는 감사(오딧)도 수없이 거쳤지만 꿋꿋이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경영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이회장은 돌이킨다.
 
리스 리커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4년간 매장수를 12개까지 두배로 늘리며 급성장하다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매출액이 20%나 감소하는 등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틈을 타 2009년에는 미국 최대의 주류소매기업토탈와인이 베가스에 매장을 오픈했다.


토탈와인은 연매출 20억달러에 미국내 140여개의 매장을 거느린 주류소매체인의공룡이다. 리스 리커가 주춤하는 사이 자본력으로 시장을 잠식하려던 토탈와인은 여전히 베가스에서 매장 2개에 머물러 있다.
 
이회장의 장남 케니 리 리스 리커 사장은 마진을 최대한 줄이면서도 구매력을 줄이지 않는 공격적인 전략을 유지, 지난해 금융위기 이전의 매출실적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16호 매장에서 4년간 멈춰 있던 확장세도 17~19호를 잇따라 오픈하며 되살아났다.
 
이회장은 42년 충북제천 출생으로, 80 8월에 부인과 12여의 자녀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비즈니스를 찾던 이회장은 당시 Las Vegas에는 5천여 가지의 다양한 주류 종류와 리커 스토어의 규모가 대형인 것이 눈에 띄었다.


일반적으로 미국내 리커 스토어는 주정부의 통제하에 있지만, 네바다 주의 리커스토어는 소매상이지만 주정부가 통제하지 않는 구조였기 때문에 타주에 비해 술 가격이 낮아 타주에서 큰 고객들이 대량으로 구입하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들이 사용하는 영어도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이회장은 "나도 할 수 있다"면 자신을 믿기 시작했고,


리커 스토어 경영 기법을 알기 위해 종업원으로 취직을 하려고


수십 군데를 찾아갔으나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채용이 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운영자나 종업원이 전부 백인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할 수 없이 이회장은 경험은 없었지만 직접 경영에 부딪히기로 결정하고 월 $870의 임대료를 내고 1,200 sq ft.되는 건물을 리스 해서 리커스토어를 시작하면서 동양인이 라스베가스에서 리커 스토어를 처음으로 운영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 Lee's Discount Store 라는 크고 높은 간판을 세운게 시작이었다..
 
첫 시작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이회장 가족은 미국에 이민 온 것에 대한 후회감이 들면서 그동안
고생했던 설움에 부부가 부둥켜 안고 울기도 했지만, 비즈니스 맨으로 꿈을 이루고자 왔던 미국에서 한 두번
실패에 주저앉는다는 것은 그간의 노력을 헛수고로 돌릴 수는 없었다.
 
이회장은 다시금 자신의 꿈을 되새겨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사업체는 이미 계속되는 적자로 자금상황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이회장은 호텔 레스토랑의 버스보이로, 아내는 주방에서 근무하면서 사업체를 운영해나갔다.
 
이 시기에는 이회장 부부는 하루 2~3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해


극도로 피곤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결국 호텔 레스토랑에서 해고가 되었지만,


부부가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운영한 사업체는


19개월이 지난 후 월 매출이 3만불을 넘기 시작했다.
 
미국은 정직하게 땀을 흘리면 보상이 기다리는 사회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고,


한 번 힘을 받은 사업체는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라스베가스 리커업계에서 이미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이회장은 동종기업인들에게 10년 내에 네바다주에서 가장 큰 리커스토어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동종 기업인들은 리커 스토어를 경영한지 얼마되지 않은 동양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계획을 동종 기업인을 만나기만 하면 계속 이야기를 했다..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회의적이었지만 이회장 자신에게는 자신을 채찍질 하는 계기가 되었고, 헛된 이야기가 되지 않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고 사업은 날로 번창해나갔다.
그러나 번창해나가던 사업은 86년에 고비를 맞게되었고, 이회장은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을 돌아보면서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미국사회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참여해 협력과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회장은 한인사회에 주류사회와의 유기적 관계가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한인커뮤니티의 잠재력을 알리기
위해 라스베가스 시티, 카운티, 주 정부를 라스베가스 한인회장을 하는 4년 동안 쉴 새없이 다니면서
한인커뮤니티의 역량을 알렸다.
 
어려운 고비도 있었지만. Lee's 리커는 급속하게 성장을
했으며, 마침내 1989년에는 자체 건물을 신축하여 기업 대형화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첫 번째 매장을 판매한 자금으로 7,000sq.ft의 규모의 자체 건물을 완공하였고,


준공식에는 라스베가스 주요인사들이 대거 참석하기도 했다.
 
라스베가스는 미국내에서도 인구성장속도가 가장 빠른 도시인 관계로, Lee's리커의 매출도 지속적인 성장을 하게 됨으로써, 91년에는 20,000sq.ft, 95년과 97년에 12,000sq.ft 규모의 자체 건물을 오픈하면서 Lee's 리커는 이회장 자신이 동종기업인 들에게 이야기했던 최고의 사업체를 이루어낸 것이었다.
 
이후 이회장은 미국의 유명 월간지인 "Market Watch"에서
선정한 1996년 전 미국 슈퍼스타 소매상 탑 20에 선정되면서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했다.


96 7 18일자 라스베가스 리뷰저널은 두페이지에 걸친 특집으로 이회장의 아메리칸 드림 스토리를 소개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은 오직 열심히 일하고 자기 희생을 통해서 온다"


소제목을 곁들어서 이회장의 성공스토리를
사진과 함께 실었다,
 
 이회장의 사업성장은 끝 없이 성장했고, 1998년도에 미전역의 가장 성공한 소매상인 그룹인 WSGA(Wine and Spirits Guild of America)의 영예로운 새 회원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20여년전 언어도 문화도 다른 미국, 특히 동양인이 많지 않았던 Las Vegas에서 전혀 지식도 경험도 없는 업종에 도전하면서 감옥에 3번이나 가는 곤경사업체의 문을 한 달 동안 강제로 닫혀가면서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든게 성공의 비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60을 넘어 이제는 은퇴를 하고 편한 여생을 즐길 수 도 있겠지만, 이회장은 자신에게 일할 수 있는 열정이 있는 한 자신이 필요한 곳에 그는 서 있을 것이라고...  
 









나는 간장게장 + 쌈밥 = $ 66 내고 먹고


집에서 '게 사다가 담가먹을 것 괜히 사먹었구나 ...'


살짝 1초간 후회도 했는데 ....이래서 나는 큰 부자가 못되는


만년 짠순이 인 것 같다 . 부자들의 성공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배울 게 많다 .


밥도둑을 찾아서 ! 그런대로 짭잘한 봄날의 오후였다 .



간장게장 ,운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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