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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조각공원 산책
10/04/201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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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을 방문한 친구 서영희씨와 함께 


백제문화 축제를 구경하고  88 올림픽 공원


조각작품들을 감상했다 .    세계적인 조형 예술 작품이 많고


잘 정돈된 공원 소나무 조경이 돋보였다 .





마치 영화 '라스트 캐슬'에 나온


'트루먼 교도소'  탑같은  철제 원통 조각이 시선을 끈다 .  










조금은 난해하고 어려운 현대 조각 조형물을 감상하며


드넓은 광장에 서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는 순간순간이 행복했다 .












올림픽공원의 역사  .


1988 서울 올림픽 개최를 위해 서울시가 사업비 1823억 원을 들여 1986년에 완공, 개장했다. 현재 서울특별시와 국민체육진흥공단[1]이 소유하고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한국스포츠산업개발이 관리운영하고 있다. 면적은 서울시 소유[2]와 공단 소유[3]를 전부 합쳐서 144.71 헥타르(약 43만 8천 평). 여의도 면적의 절반쯤 된다. 정확히는 서울특별시가 771,576 m2(53.3%), 국민체육진흥공단이 675,545 m2(46.7%)를 소유하고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문화관광체육부의 산하기관이기에 실질적으로는 시유지와 국유지가 반반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체육대학교와 성내유수지생태공원을 제외해도 전국에서 가장 큰 도심 속 공원이었다. 그러나 2005년에 시설규모 87만 평, 전체규모 369만 평에 이르는 울산대공원이 개장, 가장 큰 도심공원이라는 타이틀은 빼앗겼다.











1981년 독일 바덴바덴 IOC 총회 당시 198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대한민국 서울특별시가 유치확정됨에 따라 서울특별시가 올림픽 유치 및 대회 성공기원을 하는 취지에서 1984년 지금의 자리에 첫 착공을 하였다. 동년에 공사 도중 공사현장에서 백제 때 초기의 토성(土城)인 몽촌토성이 발굴되면서 한때 공사가 중단되어 늦춰졌다가 몽촌토성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토성과 공원을 한 자리에 존치하기로 결정됨에 따라 공사가 재개되어 1986년 공식 개장하였다








 몽촌토성은 공원의 하이라이트였다 . 신기하고 신비해 한참 머물렀다 . 


집으로 돌아와 네이버에서 알아본 내용을 소개한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과 오륜동 사이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백제시대의 토성(土城). 현재 토성 성벽 및 그 내부가 사적문화재로 공식 지정되었다.

한성백제때의 토성으로 북쪽에 있는 풍납토성과 함께 하남 위례성(城)의 주성(主城)이었던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외 선사시대 때 존재했던 움집터, 판축터, 지하구멍 등이 발굴되었고, 토성의 축조는 3세기경에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는 극히 단편적인 유물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에 추후 발굴조사 및 성벽 절개조사를 통해 바뀔 가능성이 농후하다.

서울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의 역 이름도 이 곳에서 따왔다.



몽촌토성은 그냥 야드막한 언덕 수준의 가치로 전락한 상태[1]였으며, 심지어 한강 정비 때 잠실 섬을 육지화하는 데에 이곳의 흙을 쓰자는 제안이 나왔을 정도였다. 다행히 고고학자들이 이 터가 예전 백제 하남위례성터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제기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땅 밑에 무언가가 있어 개발도 하지 못할 땅이니 다른 것으로 못쓰게 해두자는 생각으로 1984년 올림픽공원을 착공하였는데, 역시나 공사 도중 토성터와 유물들이 발굴되면서 1983년부터 1987년까지 학자들의 발굴조사를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올림픽공원 안에 토성터와 유물들을 보존하기로 함에 따라 1986년 올림픽공원 개장 때 공원 안에 존치해 있는 유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미 들어선 아파트 단지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있는 풍납토성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던 셈. 토성터의 둘레는 약 2.7㎞이며 높이는 6.7m.

1983년에서 1987년까지 이루어진 조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83년에는 성의 규모, 축조방법, 외부시설을 확인하기 위해 성 외부에 탐색갱(트렌치)을 넣어 조사를 실시하였고 1984년에는 서울대, 숭실대, 한양대, 단국대 합동으로 성의 규모, 축조방법, 내부시설에 대한 발굴을 실시하였다. 1985년에는 성 내부 민가가 철거되어 내부의 전면적인 유구의 분포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1987년에는 성의 동북쪽 부분에 대한 전면발굴을 실시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풍납토성과 함께 백제 도성을 이루고 있는 몽촌토성에서 고구려 건물지 유구와 함께 고구려 토기가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전형적인 고구려 토기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사이장경옹(나팔입항아리)'이 확인되어 주목을 받았다. 이는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해 한성을 함락하고 한강 이남으로 진출하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경기 북부에서부터 남쪽으로는 충주, 대전까지 고구려 유적이 드문드문 확인되긴 하지만 백제의 도성을 이루는 곳에서 확인되었다는 점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 몽촌토성 출토 고구려 토기

풍납토성의 경우 전체의 절반도 발굴하지 못했지만 현재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고구려 유구 및 유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고구려 토기가 확인되긴 하지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층위적으로도 백제 문화층에서 확인되어 교류로 보아야 한다. 결국 고구려는 백제의 한성을 함락시킨 후 몽촌토성에 주둔하면서 한강 이남으로 진출하기 위한 군사거점으로 삼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약 30년 만에 한성백제박물관에 의해 다시 이루어진 몽촌토성 발굴조사에서 더 명확해졌다.


현재는 풍납토성과 함께 백제의 첫번째 수도였던 하남 위례성이었을 것으로 거의 확정된 상태.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위례성에는 북성(北城)과 남성(南城)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학자들은 북성을 풍납토성으로 남성을 몽촌토성으로 추측하고 있다.

학자들은 풍납토성이 사실성의 왕성 역할을 하고, 몽촌토성은 비상시. 그러니까 외적의 침입이나 반란시에 들어가 농성할 수 있는 일종의 대피성 개념으로 세웠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풍납토성에서 계속 출토되는 어마어마한 유물로 미루어 볼 때 두 성간의 관계가 이랬을 확률이 매우 높다.




한가한 가을날에 다시 와서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조각공원이었다 .












조각공원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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