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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슬기로운 집콕 생활 .
06/14/202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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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좋아하는 취미생활은


멋있고 맛있는 레스토랑에 하염없이 앉아


주변 경치를 감상하거나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것이다 .


내가 얼마나 식도락 레스토랑 탐구생활을 즐기는가 하면


LA의 유명한 식당  1, 000 여군데를 취재해


<소문난 LA맛집 들여다보기 >란 책을 출간 했을 정도다 .








그런데 이 소소한 행복을 빼앗아간 코로나 19 바이러스 전쟁은


정말로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하고 , 얄밉고 , 원망스럽다 .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미워만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이미 다녀 온 레스토랑 사진을 들여다 보며 간접 만족을 하고 있다 .


이것이 요즘 나의 사회적 거리두기  '집콕의 슬기로운 생활'  방법이다 .  









어느 날 나는 리버사이드로 도산 안창호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반나절 취재 여행을 했다 .  리버사이드에는 1920년대 활약한  안창호 독립투사의


동상도 있고 오렌지 농장 작업 현장이 새겨진 동판도 있어 무척 반가웠다 .








리버사이드 도산동상은 미국 본토에 한국인 동상이 공공기념물로 세워진 최초의 동상이다.


리버사이드 시청에서 도산동상 안내서를 받아 읽어보고 이곳이 한국인에게는 특별한


감회를 주는 지역이라 뭉클한 감동도 받았다 .


<리버사이드는 한국과의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이곳은 안창호 선생이 최초의 한인타운을 건설한 곳으로,

안창호 선생은  리버사이드에서 오렌지를 따며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웠다. >


또 크리스마스 시즌에 빛의 축제를 여는 리버사이드는 


도시전체를 밝히는  화려함으로 가을부터


아파트  베란다와  호텔에서는 작은 캔들을 반짝이며



그 웅장한 서막을 올린다 .




품격 높은  교육 도시 , 살기 좋은 청정 도시

 

리버사이드의 특별한 거리 거리 골목과 식당 풍경을 뱅뱅 돌면서


허기가 지도록 사진을 찍다가  발견한 아름다운  이태리 레스토랑은


나를 도취시키기에 충분했다 . 적당히 고상했고 , 부담스럽지 않게 친절했다 .










음식 사진속에는 마치 텔레비전 먹방을 보듯 왕성한 식욕을 달래주는


마법이 숨어있다 . 마치 방금 주문한 요리가 내 테이블에 도착한 착각을 준다 .


갓 구운 빵냄새도 솔솔 바람결에 풍겨온다 . 한참  들여다 보면 볼수록 황홀하다 .











여기서 잠간 ! 오래전에 읽은 책속에서 '미식예찬' 을 다시 되새겨본다 .




<프랑스에서 식사를 얼마나 중요시하는가는 1990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어린 학생들의 밥상머리교육 봐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잠시 초등학교의 일반적인 급식을 살펴보자. 이건 학교 급식이 아니라 작은 레스토랑의 세미 풀코스가 아닌가. 물론 여기에 빵까지 곁들여진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매해 10월 셋째 주가 일주일 내내 미각 주간으로 정해져 있다. 이때는 레스토랑의 셰프를 초대해 아이들이 요리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 즐거움을 알게 하고, ‘맛을 음미하는 다양한 실습을 하거나 영양소의 밸런스를 재는 퀴즈를 풀도록 하는 등 먹는 것에 관한 다양한 이벤트가 개최된다.

브리야사바랭(Jean-Anthelme Brillat-Savarin)의 《미식 예찬》은 단순히 먹는 것만을 얘기하는 책이 아니라 인생의 성경이다.

그리고 그 식사야말로, 함께 먹는 상대와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의 오감에 지성과 감성을 더한 감뇌(感腦)’=‘관능 서투르나마 공유하는, 세상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연극 무대다. , 프랑스 사람들에게 식사를 하는 공간과 시간은 가장 역동적인 관능문화의 무대이자 성스러운 궁전이다.

미슐랭의 별이 붙어 있지 않더라도 인테리어에 신경 쓴 레스토랑에서 셰프의 멋진 솜씨에 놀라고 기뻐하며 가게의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듣는 경험, 전채부터 메인 디시에 이르는 맛과 향기의 하모니를 즐기는 상황 모든 것이 인생에서 단 한 번 만나는 센슈얼한 드라마다. 물론, 그 드라마의 주요 요소는 상대방과 마음이 통하는 대화일 것이다.

먹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랐는가를 금세 알 수 있다고들 하는데 프랑스에서도 테이블 매너가 그 사람의 사회적 입장을 뒤흔들 만큼 중요하게 인식된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로서 기대되는 태도와 행동, 지성, 교양,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섹시함이 충족돼야 하는 것이다.

테이블 매너만 갖추면 끝일까? 아니다. 특히 남녀의 데이트 식사는 인생의 링이고, 활극의 무대다. 식사라고 하는 에로스적 공간에서 인간적인 섹시함이 연출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섹시함은 센슈얼이다. 결코 육체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남성도 여성도 갈고닦은 지성을 통해 우러나오는 감성과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대범한 에로스, 모험 앞에서 마음이 두근거리게 된다.

섹시함’, 그 매혹적인 불가사의는 인간 존재의 중심이고 센슈얼리티다. 세계적 도시 파리에서 식사라는 작은 무대, 서로의 시선이 농후하게 교차하는 순간. 그야말로 지극히 우아하다. >


<책 ;  프랑스 사람은 지우개를 쓰지 않는다 .  '미식예찬 ' 에서 인용 >











이 기회에 도산 안창호선생에 대해 좀더 알아보자 .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활약했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호는 ‘도산’이다. 민족의 실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 활동과 우리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앞장섰으며, 신민회와 대성 학교, 흥사단 등을 세웠다.




1919년 터져나온 3·1 독립운동은 각지에 흩어져 활동하던 우리 민족에게 `독립 정부 수립' 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였다. 국내외 도처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상해의 임시 정부와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와, 국내 13도 대표가 국민 대표회를 소집해 만든 한성정부이다.




1878년에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난 안창호는 일찍이 신학문과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나라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민족의 실력 양성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이후 독립 협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경기도와 황해도, 평안도 등지에서 열린 만민 공동회에 참여해 민족의 계몽과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연설했다. 그는 뛰어난 말솜씨로 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는데, 그의 연설을 듣고 감동한 이승훈이 후에 오산 학교를 설립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대한 제국 정부에 의해 독립 협회가 강제로 해산당한 뒤, 안창호는 교육 운동을 하려면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미국에서도 교포들의 계몽을 위해 힘쓰면서 한인 민족 운동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다. 그러다 1905년에 일제가 을사조약을 맺어 외교권을 빼앗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동료들과 함께 항일 운동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선생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우선 영어를 익히기 위해 소학교에서 공부하고자 했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번번이 입학을 거절당하였다. 다행히 한 학교장의 배려로 입학허락을 받고 영어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으나 그 당시 선생을 사로잡은 일은 샌프란시스코 한인들이었다.



당시 신흥도시 샌프란시스코에는 한인학생과 노동자, 그리고 인삼상인 등이 모여 있었으나 커뮤니티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으며 구심점 없이 흩어져 되는대로 살고 있는 처지였다.



앞서 이주해온 일본인 노동자들에 비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였으며 생활 또한 불안정하였다. 선생은 한인들이 남의 나라에 와서 천시받지 않고 상호 권익을 보호하면서도 신용있는 문명인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인들의 모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생각이 미치자 자신의 공부를 중단하고 뜻있는 동지들과 함께 미주 한인들의 최초의 조직인 ‘샌프란시스코 한인친목회’를 결성하였다.



친목회를 통해 한인노동자들에게 일거리를 주선하고 그들이 정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였다.




1904년 일자리를 찾아 리버사이드로 모여드는 한인들과 함께 리버사이드로 이주한 도산은 미국인 가정의 가사고용인으로 취업해 있으면서 부인을 중국인이 설립한 학교에 보내 공부하도록 하였다.



이 무렵 미국인 집주인이 집을 더럽게 관리하는 한인들에게 집 임대를 꺼린다는 말을 듣게 된 도산은 일일이 한인들의 집을 방문해 집안은 물론 심지어 화장실까지도 청소해주었다. 각 집에 커튼을 치게 하고 문 앞과 창문에 화분을 놓아 꽃씨를 심어 주는 등 주변 환경을 청결하고 아름답게 가꾸었다. 처음에는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며 경계하던 한인들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솔선수범하는 선생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였다.



이후 한인들은 매사 모든 일을 선생과 의론하게 되었고 어느 사이엔가 선생은 한인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오렌지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오렌지 한 개를 따더라도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임을 깨우치려 했던 도산의 마음을 한인사회는 공유하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오렌지 농장에서 오렌지를 수확하는 도산의 모습.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솔선수범하는 선생에게 한인들은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하였다. 



 

이 때 고국에서는 일제가 우리 땅에서 러일전쟁을 도발하고 대한제국에 한일의정서를 강요하며 한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선생은 리버사이드에서 대한인신민회를 결성하고 그 설립 취지서를 안고 1907년 2월 20일에 국내로 귀국하였다. 이 무렵 일본인 우치다()가 선생이 4월경 서울, 대구, 원산 등지로 유세하고 다닌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한국통감부에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선생은 귀국하자마자 신민회 조직 결성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창호 [安昌浩] - 민주주의적 민족국가 수립 위해 헌신 (독립운동가, 이달의 독립운동가)






레스토랑 .도산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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