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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홍(peterhong7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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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하나님은 누구신가?
07/10/201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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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나의 아들아


평신도 아빠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남기는 99가지 신앙상식

(피터홍 생애의 주요 간증을 포함한 자서전적 저서)




62.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이 누구신지는 아담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구체적으로 몰랐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누구신지, 이름이 무엇인지, 이스라엘이 선민(택한 백성)인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기 시작하신 것은 출애굽 , 시내산에서부터 40년간의 광야시절에서였다. 그것도 초등학문 수준으로... ( 3:24-25 율법 = 몽학선생 = 초등교사)


우리도 마찬가지로 처음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다녔지만,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지 못했다. 더욱이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교조차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단들이 명확하고 자신 있게 얘기하고 있다.


나의 학창시절에 신앙촌 박태선은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했고, 하나님의교회(안증회) 안상홍은 내가 재림예수다!라고 했고, 구원파 유병언은 내가 성령이다!라고 했고, 순복음 조용기는 내가 살았을 반드시 예수가 재림하고(조용기 죽기 전에 재림한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 구원은 성령을 받아야 하는데 방언도 못 하면 성령을 받았다!라는 신천지 이만희와 다미선교회 이장림과 비슷한 소리를 했고, 베뢰아 김기동은 삼위일체란, 내가 교회 가면 목사, 집에 가면 아빠, 신학교 가면 교수인 개념과 같다!라고 했다. 마치 쇠고기 한 조각을 두고 싱싱하면 육회, 며칠 지나면 구이거리, 지나면 찌게거리!라고 하 말과 같이 제멋대로 감히 삼위일체 하나님을 단정 지었다.


결론은 버킹검이듯, 모두 정상적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본 적도 없이, 정상적인 신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적도 없이 성령의 이름을 팔아 돈벌이하는 실성한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모가지가 곧은 칠푼이들이지만 정상적인 교회에서 제대로 은혜를 받으며 기나긴 신앙의 광야기간을 통과하면서 다행스럽게도 조금씩 조금씩 삼위일체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가고 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특히 다음 장의 63. 삼위일체론」 기독교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상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기에 유럽과 미국서 공부한 젊은 정통신학자들의 강해를 중심으로 이해하기 쉽게 초기 서양교회의 대표적인 그림들과 성경을 통하여 해답을 찾아가보도록 하자!


‘해와 달의 창조’ - 미켈란젤로 作 -


서양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작품이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으로 해와 달과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미켈란젤로의 고뇌가 담긴 그림의 이미지에 머물 것이 아니라 다른 하나님의 모습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미지를 하나로 고착시킬 경우, 위에 언급한 이단들처럼 하나님을 단순화시키고 편협하게 이해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담의 창조’ - 미켈란젤로 作 -


 하나님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대표적인 그림에서 보여주듯이 서양의 많은 그림들은 하나님이 남성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 있을까? 과연 하나님은 남자일까?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아버지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아버지의 역할을 가지고 하나님을 설명하려고 했다. 하나님의 역할과 아버지의 역할은 매우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 먹고 사는 문제, 가정을 책임지는 문제, 가족을 보호하는 문제... 중에 중요한 것은 생명을 공급하는 생명을 주시는 이다.


현대에는 생물학적 지식이 발달했기에 당연히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가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생물학적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생명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주로 아버지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동시에 모성의 이미지도 갖고 계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32:11).


32: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같이 (어지럽게 하며 = 바쁘게 정리하며)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자녀를 모으려 일이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내가 = 성자 하나님) 



남성의 이미지는 있지만 하나님에게 특정한 성별을 부여하지 않은 성경, 그러나 고대 근동의 신들은 남녀 성별이 분명했다. , 남자 신과 여자 신이 따로따로 있었다. 더욱이 출애굽 시대의 가나안은 더더욱 심했다.


구약시대 고대 근동의 신들인 바알(남성)과 아세라(여성)


바알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나? 바알은 비의 신이다. 바알이 주먹을 쥐고 있는 모습은 천둥을 던지려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유목민이었다. 농경문화권인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에 새로운 신들을 만나게 된다. 농경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다. 바알은 비의 신이며, 아세라는 풍요의 신이다. 중요한 것은 신은 부부이다. 그래서 바알과 아세라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고대 근동의 신들은 남녀의 구분이 확실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별에 국한되지 않은 초월적 존재이시다. 단지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아버지의 이미지로 묘사할 뿐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당시 생명의 근원 아버지를 상징한 것일 뿐이지 남성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인 면과 선입견을 버리고 하나님은 누구신가? 대한 본격적 탐구를 시작하자!


성경에서 소개하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 자비로우신 ... 가지이지만, 크게 3가지로 나누면...


 

<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3가지 분류 >

I. 초월적 하나님

II. 임마누엘(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III. 우리에게 오시는 하나님


I. 초월적 하나님

유대인들이 천지창조보다 강조하는 사건은 출애굽사건이다.


* 출애굽사건

출애굽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토라(율법) 주셨고, 모세를 중심으로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출애굽사건은 가나안 정착의 사건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 알게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에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하나님께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이름 없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리셨다. 그러나 우상들은 바알, 아세라 신들의 이름이 있었다. 다른 민족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신은 누구니?라고 물었을 하나님의 이름이 없었기에 그들은 체면이 서질 않았다.


3:13-15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나는 스스로 있는 = I am that I am = I will be that I will be)



*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초월성

1. 스스로 있는

야훼(Yahweh)라는 말은 나는 스스로 있는 대한 히브리어 글자만 따서 한 단어로 하나님을 부르는 이름이다. 야훼 = 여호와’ 즉, 하나님의 이름을 분명하게 알게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출애굽사건이다.


2. 어떤 피조물의 형상으로 표현할 없는 하나님의 존재

십계명 중의 2계명에서 형상을 만들지 말라!라고 하나님은 명하셨다.


3. 하나님을 보면 죽음

33:20

이르시되 네가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자가 없음이니라


4. 창조

하나님에게 창조가 필요했을까? 하나님에게 창조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없이는 존재할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천지창조(창조신앙) 하나님과 인간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창조신앙의 다른 의미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필요가 아닌, 사랑에 의해 창조된 천지세상과 인간, 창조도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사건이다.



 II. 임마누엘(함께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는 애굽(이집트)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시작한다. 이때부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자신이 누구신지 말씀해주셨다.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사랑의 모습이 함께 담겨있다.


3:7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계기가 사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근심을 알고



인간의 고통과 근심을 직접 보고, 듣고, 깊이 느끼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 속으로 자신을 깊이 집어넣으셨다.


‘(근심을) 알고 히브리어로 야다(yada, 알다)인데, 몸으로 느끼는 앎을 의미한다.


4: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동침 히브리어 야다(yada, 알다) 동침으로 번역되었다(한글번역의 한계). 영어와 한국어도 차이가 있지만, 히브리어와 영어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타나크라는 성경이 나왔다.


* 타나크: 유대인들이 번역한 영어성경인데, 영어권에 있는 유대인들을 위해 번역된 영어성경이다.


* 토라: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율법(토라 Torah) 주셨다. 일반적으로 토라를 율법, 십계명으로 해석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모세오경과 구약 전체 혹은 윤리와 교육, 가르침 등의 상당히 폭넓고 풍성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토라를 주신 하나님: 인간의 실질적 삶에 애정이 있으신 하나님, 특히 건강한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지대하신 하나님은 특히 약자(핍박받는 , 가난한 , 소외된 , 고아와 과부) 향한 사랑과 관심이 많으신 분이시다.


* 구약에서 임마누엘 의미: 우리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고 넘칠 때,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우리가 약자를 사랑과 정성으로 돌볼 ,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위에 펼쳐질 ,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뤄질 ),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 땅에 펼쳐지도록 우리는 관심이 있었는가?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임마누엘이란 개인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란 좁은 의미가 아닌, 이웃과 타자를 생각하고 공의와 정의와 사랑과 평화가 땅에 펼쳐지는 넓은 의미에서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있는 최고의 절정(Climax) 바로 신약에서 찾아볼 있다( 1:14).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구절을 강하게 해석하는 신학자들은 출애굽기와 요한복음을 연결시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천막(tent) 치시니 번역을 한다. 천막 성소는 성전과 달리 한군데 머무르지 않고 계속 옮겨 다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천막 안의 지성소 안의 법궤 뚜껑 위로 내려오신 하나님 , 초월적 하나님이면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보다 폭넓은 의미의 해석이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임마누엘의 하나님)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 것이다.


 성부의 축복  - 루카 캄비아소 作(1565) -


그림은 마치 아버지가 천구를 껴안고 따뜻하게 축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림 속의 하나님은 이탈리아의 거리에서 흔하게 있는 인자한 할아버지의 얼굴 같다.


또한 그림의 하나님은 위의 그림(미켈란젤로 해와 달의 창조)에서의 천지창조를 하신 무서운 초월적 하나님 얼굴과 대조가 된다.



III. 우리에게 오시는 하나님

고대의 신들은 장소의 신이다. 신이 있는 곳에는 신전이 있고, 신에게 예배를 드리려면 신전에 가야 했다. 그러나 야훼 하나님은 천막을 따라 움직이셨다. 다윗이 움직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려고 , 하나님이 막으셨다. , 초기 이스라엘 신앙은 성전이 없었다. 이것은 당시 고대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없는 종교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인 우상은 당연히 신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우상도 없고, 신전도 없었기 때문에 고대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를 수가 없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신전(성전) 원하지 않으셨을까? 하나님은 어느 국한된 장소가 필요한 하나님이 아니라, 무소부재(無所不在)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삼하 7:5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집을 건축하겠느냐



예배장소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의 답변은 예배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모인 곳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라고 하셨다(마 18:20, 그러나 무교회주의를 권장하신 말씀이 아님).


하나님은 먼저 찾아오셔서 계약 혹은 약속을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계약과 약속에 응하면 부르시고 보내시는(소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 소명(Calling) 파송(Sending)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일상에 머물며 거기서 편하게 안락((安樂)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소명과 파송의 사명을 받으면 새로운 정체성으로 인하여 계속 움직이는 삶을 살게 된다. 인류역사의 발전과 역동성은 바로 하나님이 찾아오셨기 때문이며, 역사발전의 원동력은 바로 소명과 파송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안주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새로운 역사를 변화시키는 분이다.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쓰였지만 일부 아람어도 포함되어 있는데, 아람어인 마라나타 대해 알아보자!


* 아람어: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용한 언어로써 히브리어와 함께 당시 유대인들의 공용어였다. 신약에 와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기 시작한 아바(하나님 아버지) 아람어이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마라나 (Marana tha 주여 오시옵소서) 아람어이다. 마라나 아닌 마라 나타(Mara natha) 예수는 오셨습니다 뜻이므로 띄어쓰기에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옛날 성경에는 마라나타 대한 잘못된 번역이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시며, 오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적절히 반응할 , 우리의 삶의 영역이 바뀌고 역사가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마라나 ! 마라 나타!라고 고백한 것은 아주 적절한 신앙고백이며, 그들이 역사에 대한 어떤 태도를 가졌는가를 우리는 알고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독만큼 바른 정독은 없습니다.

적어도 자기 나이만큼은 성경통독을 합시다!”

종교,사회,문화,생각,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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