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bblestone
날 저무는 하늘에(pabblestone)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9.14.2010

전체     349058
오늘방문     18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100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달력
 
두 가지의 죽음
04/01/2018 08:00
조회  1824   |  추천   15   |  스크랩   1
IP 68.xx.xx.225




집으로 가자 [Let`s Go into the Home]




* *


사랑하는 내 동생, SR에게...


한국에 있는 친구들, 그리고 너에게 편지 해야지, 해야지... 생각만 많이 하다가 이제야 팬을 든다.
그리고 네가 그 첫 편지를 받게 되겠구나.


이메일이란 것도 있지만 아직은 손 편지가 더 진심을 담기에 좋은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네게 이런 손편지를 써 본적이 있기는 했는지 모르겠네-
중 고 대학교 때는 친구들이랑 편지도 많이 주고 받고 했었는데...

암튼, 딱히 좋은, 예쁜 편지지 가진게 없어 우선 가장 깨끗한 종이라고 찾은게 내 노트다.
딱히 상관하지 않겠지만 양해 바람...


우선 지금... 나는 굉장히..."불편한"마음이다.

어떤 단어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적당할까 생각을 해 보니... "불편"이 맞는 것 같다.

구원의 기쁨이나 평안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어떠한 사건이 나를 아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말 할 수 있을것 같다.


상황을 설명하자면...

지난 주 목요일, 노르웨이로 휴가를 이용해 갔다가 어제 돌아왔단다.


물가가 너무 비싸서 남들은 쉽게 가지도 못하는 노르웨이에 나는 두번 씩이나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거기에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지.  그 친구는, 내가 서울에서 교회 다닐 때 그 교회에서 만난 친구야.

처음 만난게 벌써 한 8년 전 쯤은 되는 거 같다.


그 친구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었는데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자기는 보육원에 보내졌데.  그리고 3-4살 경 노르웨이의 한 가정으로 입양되어 지금까지 노르웨이 국적으로 살고 있었지,

8년 전 쯤엔 자기의 입양 기관인 홀트 입양회를 통해 한국에 방문했었던 거고...  그때 자기 친부모와 가족들을 만났고... 그리고 한국에서 한 1-2년 정도를 보내고 노르웨이로 돌아간 뒤 1-2년에 한 번 씩 한국을 방문했지...


한국에 있을 땐 우리 셀원이었고..  그 때는 나도 영어를 잘 못하고 그 친구도 한국어를 잘 못해서 뭐 그렇게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암튼 작년 초 던가... 내가 한국에 있을 때 그 친구 한테 카톡이 왔어.  '이제 삶을 끝내려 한다'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말로 말리고 격려해 줬지... 그리고 시간이 지났고 올해 1월 나의 첫 휴가로 노르웨이를 방문했고 그 친구나 그 친구 부모님도 매우 기뻐하고 환영해 주셨지.  진심으로 또 오라고 하셔서 이번 3월에 또 방문하려고 연락을 했는데 카톡 답이 늦게 오더라고.  그러면서 병원에 가 있느라 답이 늦었데,


어디 아프냐고 물었더니 '자살 생각'과 관련된 병원에 갔었다고 하더라고...암튼... 이번에 방문하면 얘기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갔었지..  어느 날 아침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지만.. 사실 내가 정말 하고 싶던 애기를 제대로 하질 못했어.  내가 정말 하고 싶던 얘기는 '복음'이지.


웃기지 ?  선교단체에서 일하면서 입이 닳도록, 툭치면 줄줄 나오게 외운게 복음인데 ?!  그것도 영어로...
그런데... 난 그게 진짜 복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 그래서 그 일을 그만 둔거고.


그리고 내가 알게 된, 그 복음, 진짜 복음은 아직 한 번도 남에게 이야기 해 본 적이 없지.  그러니 그게 영어로 설명이 안 될 것 같아서... 집에 돌아가면 그 친구에게 편지하겠다 그러고 말았는데...  어제 집에로 돌아오니 또 자살 하겠다고 카톡이 왔네... 그래서 서둘러 몇자 적어 보냈는데 아직까지 '안 읽음'이고...


참 내... 정말 죽어버렸나 걱정이 되기도 하고 (안타깝고 답답함에) 화가 나서.. '이 멍청한 자식아!!!'라고 소리치고 싶기도 해..  이렇게.. 너라면.. 어떤 심정일 것 같으니...?


사실.. 그 전에는 그 친구가 혹시 진짜 죽는다 해도 내가 막 엄청 슬프거나 동요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 했는데..  지금..생사를 확인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뭐 엄청 슬프거나 하진 않지만..  처음에 말한대로 "불편"하고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가 없네... 마음이 안 편한 거...  사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이면.. 큰 충격이나 패닉에 빠지는게 오히려 더 정상적이어 보이는거겠지 ?


지금 상황에서 평소에 와 닿지 않았던, 혹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첫번째로... 마태복음 8장 21-22절... 아버지를 방금 여읜 사람에게 하신다는 말씀이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여기에서 "죽은 자"가 좀비를 얘기하는게 아니라는 것은 농담같은 소리일테고.. "죽은"으로 쓰인 원어는 "네크로스"(G3498) 라는 단어란다.


성경에는 죽음에 대해 쓰실 때 두가지 종류의 단어가 있는데... "네크로스"(G3498)와 "다나토스"(G2288)이란다.  (너도 이제 히브리어, 헬라어 배울테니..ㅎ)


예를 들어,

로마서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에서의 죽으심은 "다나토스"... 


마태복음 8장의 그 제자의 아버지도 육체적 죽음을 맞이 했고, 예수님도 육체적 죽음을 맞이 했는데 왜 다른 단어가 쓰였을까?


고전 15:31에서 사도바울이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에서의 죽음은 "다나토스".  뭔가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알겠지?


에베소서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에 "죽었던"은 뭐 일거 같니?

"네크로스"


그러니까 육체적으로 살아있든 죽었든 상관 없이.. 그 사람 안에 진리, 하나님의 생명이 없으면 그 사람은 죽어있는 "네크로스"인 거지..


우리는 우리 코에 숨이 붙어 있어서 숨쉬고 있으면 "살아"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그분의 말씀은 우리가 죽어 있는 거라고 말씀하시지.


언젠가 내가 한 번 이야기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작년 쯤인가.. 아이들에게 전할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런 깨달음이 있었어..

'아! 눈을 떠야 할 사람은 바디메오가 아니고 "나"구나.. 
일어나야 할 사람은 미문 앞 그 거지가 아니라 "나"구나... 
살아나야 할 사람은 나사로가 아니라 "나"구나...'


그 이후에... 그와 비슷한 시기에 여러가지 질문과 함께.. 기도하는게 있었어.
질문은, "예수를 믿는..믿어도 한참을 믿은 사람이 "우울"할 수 있는가?" 엄마를 보며 생긴 질문이었지. 
물론 나에게도 적용 되었고..


"사도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 없이 가르쳤는데(행28:31) 나는 왜 달달달 '외워서' 한 번 전해 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지? 그 사도들이 아는 복음과 내가 아는 복음이 뭐가 다른지, 그들이 믿는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이 같은 하나님 일텐데...?"


"구원의 기쁨이란게..정확하게 뭔지...그걸로 어떻게 변함없이 날마다 그 구원의 기쁨 가운데 살 수 있는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난다'는게 뭔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데.. 하나님이 내 예배를 받으셨는지 안 받으셨는지 객관적으로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받으셨으리라 믿쑵니다!!!! 아멘!!!! 이런거 말고.."


그 외에도 몇몇 질문들...

정말 구원의 기쁨이 뭔지...몰랐던 나는.. 구원의 기쁨이란, 이런거야! 라고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없었던 나는...(왜? 정말 모르겠으니까..) 


내가 믿는 그 분께 이렇게 기도 할 수 밖에 없었어..


"주님.. 내 눈을 열어주세요,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는게 있다면.. 보게 해 주시고, 깨닫게 해주세요..  나.. 구원받은게 아니면.. 알게 해 주세요.." 이렇게 그분께 이야기 하는 것도 쉬운일은 아니었단다.. 누가 듣는것도 아니지만..


나는 내가 구원받은 거라고 한 번도 의심해 본적이 없이 철썩같이 믿어왔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게... 그렇게 기도한 기간이 6개월...? 1년 즈음...?  그 기간은 정말 ...절박했다.


내겐 정말.. 사느냐, 죽느냐(구원이냐, 아니냐)의 문제였어...


그리고 기대했던 새 청빙 담임목사의 설교는 점점 윤리와 도덕에 대한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았어..
그 어디에도.. 내 영혼을 소생케하는, 진리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 선교단체에도..


암튼 난 계속 기도하고 있었고.. 어느날 교회 언니가 추천해 준 영상이..
그 김종국 목사님 설교였지. (그 언니는 "십일조는 없다" 영상이 "유익"하니 한 번 보라고 했고 다른 설교는 보지도 않았어.)


처음엔 이 사람이 뭔 소릴 하나 싶었고.. 뭔 소린지 알아먹기도 어려웠고.. 그러나 뭔가 달랐지.  적어도 윤리 도덕 이야긴 아니었으니까.


그 분 역시 우리와 같은 기존 교회, 기존 신학교에서 우리가 믿는 것과 동일한 것을 믿어오던 분이었지..


뭐 암튼.. 그러던 중 어느 날.. 컴터 앞에 앉아서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어왔어.. 내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하나님이.. 하나님 그 분만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는.. 그 무대에서 내가 최선을 다해, 죽을 힘을 다해 멋진 노래나, 춤이나, 뭐든 최선을 다한 무대로 보여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무대에서 나는 "퇴장". 사라져야 하겠구나. 나는 없어지고 거기에는 그분만 계셔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어..


그것이 나에게는.."다나토스"에 대한 깨달음이었던 것 같아.


나는 그 무대에서 아니 그 무대를 위해 밤낮으로 연습하고, 노력해서 정말 멋진 모습 보여드리려고 인생을 바쳐서 노력해 왔는데.. 그걸 그분이 원하신다 생각했고 그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그분은 객석에 앉혀 놓고, "자, 잘 보세요. 제가 무진장 꾸미고 무진장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잼나게 보세요. 그리고 마지막엔 "모든 영광은 당신께!"라고 말 할게요! 알겠죠? 그럼 되죠?"라고...


내가 하는 그 무엇도 그 분에게는 '의'로 받아들여 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의', 믿는 사람이라면 이러해야지, 저러해야지, 그건 아니지, 이정도는 해야지, 철저하게 지켜야지... 등등등... "말씀이라는 기준"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해야지..암.. 그래야지..


나의 모든 종교적 열심들은(새벽기도, 수요,금요예배 참석, 절대 빠질 수 없는 주일 예배, 십일조, 종류도 많은 헌금들, 1:1 해외아동결연, 해외선교...) "나의 의"만 자꾸 만들어낼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뭔가 했다는 "자기만족"감을 풍성히 주는 것들이었다.  결국...아... 나는 아무것도 아니네요. 그 무엇도, 그 어떤 행위도, 당신께 기쁨이, 의가 될 수 없군요.  그 무엇도 당신께 들이밀게... 내어 놓을게 없네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당신만 맞아요. 당신만 진짜에요. 나에게 필요한건 그 어떤 노력이 아니라 "당신 생명"이네요.  그리고 점점 그 분 설교가 "들리기" 시작했어.


나는 "내 마음 다해," "내 정성 다해" "진심"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은 마음도 아니고, 내 정성과 진심이라는게 그분께 단 1%의 섬김도 되지 않는다, 될 수 없다는 것이 깨달아졌어.  그것은...절망이라기 보다 엄청난 기쁨이었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그 무거운 짐, 율법의 짐, 말씀을 따라 살겠다며 지켜야 할 율법으로 지고 아둥바둥 했던 그 짐을 내려 놓는 그 기쁨...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것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사1:11-14)"


하나님이 하라고 해서 하는 것들인데 왜 하나님은 하지 말라고 화를 내실까... 옛날엔 "정성"껏 하지 않아서, 혹은 "진심"으로 하지 않아서 라고 생각했었단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모든 제사와 율법들을 주신 것은, 그것을 하면서 깨닫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야.


"번제 한 번 드려봐. 그걸로 니 죄를 한 번 사해봐. 매년 해봐. 그걸 평생한다고 니 죄가 해결이 되겠니?' 라는 말씀을 하려고 하신거야.  아무리 목욕재계하고 아무리 각을 잘 떠도 그걸 행함으로 죄가 해결되지 않는다는거, 그걸로 안된다는거,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있지 않으면, 나는 그 찢겨 죽는 소나 양 같은 짐승과 아무 다를 바가 없는 "네크로스"라는 걸 알기 원하시는 거....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그분이 말씀하시지 않았니..


우리가 그 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면, 그 분의 말씀을 오해하고 그 진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구원은 없는 것이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4:6)


내 편지를 읽으면서 몇가지 다른 구절들을 떠올릴지 모르겠네.. 예를 들면,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 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은 성경대로 철저하게 살아야 된다는 말씀이 아니란다. 


"행한다"로 번역된 "포이에오"(G4160)는 "되는 것"을 의미해. 곧 "아버지의 뜻이 되는 자"라는 의미이지.


에베소서 2:10의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할 때 "만드신"으로 번역된 "포이에마"(G4161)와 같은 의미...  내가 뭘 잘해서 되는게 아니라 나는 뭘 어떻게 해도 안되고 그분의 마음을 품는 것, 가지는 것으로만 된다는 것을 알 때 아버지의 뜻이 되는 것이지.


요한복음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는 말씀의 "지키리라"는 "테레오"(G5083)는 '고대로 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to watch over, guard 의 의미야.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말씀을 마음으로 간직하는 것. 마음으로 품는 것...


그래서 "죄"는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야.


안다고 착각하고 계속 그 율법지킴, 행함으로 그분을 기쁘시게 해 보겠다고 우기고 있는게, 주일(사람이 만들어 낸)성수, 철저한 십일조(성경이 가르치는게 아니야)로 그분을 멋지게, 충실히 섬겨드리겠다고 우기고 있는게, 하나님을 모르는 거야.


거짓말이 죄고, 동성애가 죄고, 도둑질이 죄인게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이라 그 결과로 그런 행동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고, 역시 하나님을 모르는, 오해한, 결과로 수많은 종교 생활(우리는 "신앙생활"이라 표현했지)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지.


나는 그 복음,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 결과로 더 이상 그 비진리의 홍수 속에 머무를 수가 없어서 복음도 아닌걸 복음이랍시고 가르치는 거기에 계속 머무를 수가 없어서, 거길 나온거다.  거길 떠난거다.


30년 넘게 교회란 걸 떠나 본 적이 없는, 주일을 빼먹은 적이 없는 내가, 찬양팀에서 매주 예배인도를 하던 내가... 그게(내가 예배라고 생각했던 그 형식이나, 그 세레모니가) 더 이상 예배가 아니란 걸, 그 행위들이 무의미 함을 깨닫게 되었는데... 거기에 계속 머무름이 내게는 더 고통이고 고문스러워서.. 거길 나온거다..


사실은 그러하다.


이런 이야기들을 얼굴보고 하고 싶었는데 넌 너무 바쁘더라. 지금은 더 바쁘겠지...  그래서 암튼 그 진리 품고, 그 아버지의 마음 품고 이 땅에 나 혼자, 그러나 그분의 아들되어, 그렇게 자유와 평안 가운데 있었는데.. 그 진리를, 그 노르웨이 친구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한게 너무나 안타깝다... 그래서 불편한 거 였다..


아......

그래서, 사람은 내일을 장담할 수 없으니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쓴다..


팬을 오전 11:30 쯤 들었는데 지금 오후 4:50이다.  딱히 식사도 하지 않고 생각하며 말씀 들취보며 쓰다보니 시간이 정말 금방 가는구나..  처음에 내가 이 상황에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했지..


그 두번째는... 자살 한 가룟유다의 주변인들이 어땠을까에 대한 생각이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나을 뻔 했다"고 말씀하신것(물론 자살 전에 하신 말씀이지만)...말고는 다른 제자들의 감정이나?, 생각, 반응에 대한 묘사는 성경에 없는 것 같은데(맞겠지..?) 그것은 뭐랄까... 인간적인, 육체적인 반응들이 있었겠지만... 결론은... 네크로스였고.. 네크로스 한 거 라는거...


그 네크로스의 존재가 다나토스를 경험하고 아버지의 아들 될, 다시 태어날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안타까움 외에..내가 죄책감을 가질 일은 아니라는거.. 그러나 안타깝긴 하다....많이..  그래서 내 마음이 좀 다급하기도 하다... 네게, 엄마 아빠에게...나의 다른 친구들에게.. 이 진리를 어떻게 넘겨줄 수 있을까...아.....


일단, 이 편지를 읽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알려주길 바란다.  멀리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했던 바울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제 신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는 네게 진리를 향한 갈급함과 생명이 되는 눈 떠짐, 귀 열림, 다나토스를 경험하고 아버지의 아들 삼으셔서 다시 살리시는, 그분만 주실 수 있는 은혜가, 그 생명이, 네 마음에 품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오후 5시가 넘었다. 라면 하나 끓여 먹어야 겠다.  오늘 day off라 이렇게 긴 시간 편지를 쓸 수 있었네.. 

궂이 손편지 안써도 된다.


그러니 꼭 답을 주길 바란다..


Love,


Sumi.



- 친구가 보내 온 글 -


*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 11:25-27)


Happy Easter !!


- 부활절 아침에 -


* *




그리스도의 죽음

사진 / 날 저무는 하늘에




네크로스, 다나토스, 죽음과 부활
이 블로그의 인기글
1 ㆍ 2 ㆍ 3 ㆍ 4 ㆍ 5

두 가지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