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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하며 돌아간 진짜 이유
05/17/202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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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eoboochurch.org/seoboochu... https://www.facebook.com/msbchurch/ 2020.5.17 주일예배설교 성경본문 : 마태복음19장16절-22절 설교제목 : 부자 청년 16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19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며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태복음 19:16-22, 부자 청년


오늘 본문은 부자 청년과 예수님의 대화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어린아이들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시면서 천국은 이런 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부자 청년이 등장합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의 문제를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본문 16절에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 어떤 사람을 누가복음에는 어떤 관원(18:18)이라고 합니다. 당시 관원이라는 것은 안정된 사회적 지위를 가졌다는 말입니다.

또 본문 22절에는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보통 관원이면 나이가 좀 들은 사람이 대부분인데 이 사람은 청년입니다. 청년은 젊고 힘이 있고 건강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재물이 많은 청년입니다.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입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행복의 조건을 다 구비한 사람입니다.

좀 더 볼까요? 마가복음에는 한 사람이 달여와서 꿇어 앉아 물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젊은 청년이라 해도 이 정도 청년이 정규교육도 받지 않은 예수께 나와서 꿇어 앉아서 질문할 정도면 성품적으로도 나무랄 것이 없는 청년으로 보입니다. 영생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온 것으로 보아서 삶에 대하여 진지하며 겸손한 자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생에 대한 갈증

그러나 이 청년에게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부와 명예도 젊음도 있지만 그것으로 영생에 갈증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영생에 대한 갈증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부족함이 없이 가져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영생입니다.

솔로몬은 세상 것을 다 가져보고 누려 보았지만 그 결론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라고 고백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도 영생이 없는 인생, 즉 하나님 없는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참으로 복된 인생이 되려면, 그 인생에 참으로 만족을 얻으려면, 영생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자)

그런데 영생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어떤 오해인가 하면, 영생을 행함의 문제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청년이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며, 자신이 영생을 위해서 해야 할 선한 일에 대하여 묻습니다.

사람들이 영생의 갈증을 가지지만 영생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영생은 무엇을 행함의 문제가 아니고 무엇이 됨에 문제입니다. 요한복음 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자가 되는 겁니다. 여기 안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관계를 말합니다. 예수님과 연합된 존재가 되는 겁니다. 영생은 단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하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부자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자기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하는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부자 청년은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합니다.

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영생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가를 묻는 청년에게 예수께서는 17절에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라말씀하시면서,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선을 모르신다는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만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어찌 모를 수 있느냐는 뜻입니다. 하나님만 선하신 분이니 영생에 들어가려면 그분의 계명을 지키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 선하시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하기 때문입니다.

 

선한 율법

오직 하나님만이 선하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선과 악은 세상에서 말하는 선과 악과 다릅니다. 세상의 선과 악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보면 선은 내 편을 말합니다. 내 편이면 선이고 적이면 악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선과 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선이고 하나님 밖에 있는 것이 악입니다. 하나님만이 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합니다.

율법은 선한 겁니다.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율법을 지키면 영생을 얻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율법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의 목적은 지켜 구원 얻는 것이 아니고 죄를 알게 하는 겁니다.

로마서 7:9에는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율법을 제대로 깨닫기 전에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몰랐다는 겁니다. 그런데 율법을 바로 알게 되니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은 단지 규칙이 아닌 우리 마음의 상태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나는 지켰다가 되면 안되고 난 죄인이다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을 대하는 우리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율법의 의

그런데 청년은 자신이 율법을 다 지켰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본문 18절에 어느 계명이오니까 묻는 청년에게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5계명부터 9계명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청년은 내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고 자신이 이미 이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합니다.

청년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청년은 자신의 율법관으로는 지킨 겁니다. 그는 회심 전의 바울과 같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6에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고 자신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실제로 이 청년은 살인하지 않았습니다. 간음, 도적질, 거짓 증거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를 공경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구제도 많이 했을 겁니다. 율법의 의로는 부족함이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율법의 의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율법의 의로는 하나님을 선하심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단지 규칙을 준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규정으로 외형만 준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지켜야 하는 겁니다. 물리적으로 살인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미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돌아 갔습니다.

22절에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말한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고 돌아 갔습니다. 예수님이 청년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21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이 말씀은 네가 생명에 들려가려면과 같은 뜻입니다. 즉 영생을 얻고자 한다면,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 보화가 네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 갔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재물

이 말씀의 어느 부분이 청년을 근심하게 했을까요? 나를 좇으라 일까요? 아닙니다. 그 앞에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입니다.

이 청년이 정말 사랑하는 것은 재물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또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외형적인 모습에 불과한 겁니다. 그가 정말 아끼고 의지하는 것은 재물이었고 그의 부요함이었습니다. 청년에게는 하늘의 보화보다 땅의 보화가 더 좋았습니다.

지금 청년 앞에는 진리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 진리이신 예수께서 친히 영생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나 청년은 근심하며 갑니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기의 재물입니다. 모든 삶의 기반이 재물에 있습니다. 그가 영생에 대해 묻고, 계명을 지키고 한 것은 다 그런 세상적인 삶의 치장거리이지 더 귀하고 사랑하는 일이 아닌 겁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알게 하신 겁니다.

 

회개와 믿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청년의 마음을 드러내시는 겁니다. 그 마음을 정말로 장악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는 겁니다.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재물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영생을 갈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율법을 지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치장입니다. 그는 중심에는 재물이, 세상이 있습니다.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율법을 외형적으로 지킨다고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을 흉내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돌아서는 겁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돌아서는 겁니다.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정수입니다.

이 청년과 비슷한 사람이 니고데모입니다(3). 그는 바리새인이었고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에 대한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아주 심각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핵심은 거듭나야 한다는 겁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직 거듭나야 합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생입니다. 재물보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영생이 귀합니다. 우리 마음은 어떠합니까? 무엇보다 영생이 귀합니까?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귀하고 예수님 따르는 것이 귀합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점검하시고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것보다, 예수님 따르는 것보다 더 즐겁고 기쁜 것이 없는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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