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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세대 한국형 전투기 KF-X
08/07/2020 15:34
조회  189   |  추천   1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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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을 할 키고 간 홍수가 고국의 깊은 상처를 내어 연일 마음이 어수선 합니다. 걱정이 되어 안부를 묻는 저에게 뜻밖의 낭보가 전해졌습니다. 차 세대 한국형 전투기 KF-X에 관한 소식입니다. AESA레이다가 탑재된KF-X는 단순한 전투기가 아니랍니다. 빠르고 탁월한 정보 수집 및 처리 능력으로 전시 공중의 전략 지휘소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자체 전투 능력을 물론이고 육지와 해상, 공중을 아우르는 최첨단의 공중 지휘소입니다. 그만큼 AESA레이다의 성능이 탁월한 까닭입니다.

더불어 AESA레이다 개발은 단순히 국방력 강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향후 대단한 전략 수출 상품이 됩니다.  전투기는 먹으며 핵심 기술은 남겨두는 전략을 이용해 수입국을 절름발이 국가로 전락시킬 아니라 자신들의 영향력 안에 두고자 하는 녀석들에게 따귀를 날린 셈입니다. 통쾌한 일이 아닐 없습니다.

 

그 모든 성과와 연구 개발의 정점에 제 사촌 아우가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을 꿋꿋이 견디어 내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 아우가 대견해지는 아침입니다. Covid19 사태로 얼룩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물 난리를 겪는 주변국들의 사태를 바라보며 안타까웠던 마음을 잠시나마 큰 숨을 들이쉬게 해 줍니다.     

 

국민 학교를 다니건 어린 시절, 저의 가장 큰 즐거움은 외갓집으로 놀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경기도 광주군 별내면 광전리. 흔히 넉바위라 불리던 곳입니다. 마을 뒷산 한개의 큰 바위가 있었고 넉 바위라는 마을의 이름은 바위 중앙에 새겨진, 마치 거인의 발 자국 같이 움푹 패인 모양을 한 바위에 한 거인이 있어 이곳에서 무술을 연마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무섭게 청량리 시외버스 터미널로 달려가 광전리 행 버스를 타면 외갓집으로 갑니다. 그때는 시내를 오 가는 버스에 차장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시내 버스차장이 여자들 인 것 비하여 시외 버스에는 차장이 남자입니다.

청량리 역 부근에는 삶은 옥수수를 비롯하여 많은 먹거리가 즐비해 외갓집 나들이에 즐거움을 더해 주곤 했습니다. 외갓집은 안 말, 바깥말이 훤히 내려 다 보이는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집 옆으로 커다란 대추 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대추나무 곁으로 난 내리막 길을 따라 내려 가면 마을 전체가 식수로 사용하는 맑은 물이 넘쳐 나는 샘이 있었고 샘물이 마을의 계곡 물과 합류를 하는 부근에 마을 아낙네들의 빨래 터가 있었습니다.  제법 골이 깊은 계곡의 양 옆에는 큰 나무들이 줄을 지어 있어 한 여름에도 더위를 식혀 주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계곡의 맑은 물속, 작은 돌 들을 들추어보면 예외 없이 가제들이 뒷걸음을 쳐 도망가곤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외갓집 뜰 옆의 대추나무를 미친 대추라 불렀습니다. 어느 날 벼락을 맞은 후 대추나무는 더 이상 열매를 맺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석상들이 양편에 도열 된 무덤이 있었습니다. 석상들로 미루어 짐작하 건데 꽤 높은 벼슬을 하셨던 분의 무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덤의 주인이 누구 인가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뒷동산은 무덤의 경사면을 이용해 미끄럼질을 치거나 하고 석상들을 타고 노는 제 놀이터에 불과 했습니다. 언덕에서 놀다 지치면 마을 앞 너른 논 밭을 지나면 강 같이 넓은 개울물에서 수영하고 고기를 잡으며 놀면 그만이었습니다. 더 없이 따뜻하고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어머님에게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넉넉한 집에서 이모들이 함께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를 가야 했던 작은 이모와 이모부가 일찍 작고 하시는 바람에 혼자가 되신 이모, 그리고 이모의 아들과 , 모두 함께 살았습니다. 지나고 보니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부엌이 달린 작은 방에서 4명이 살았으니 얼마나 비좁았을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는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런 동생이 이제는 어엿한 전문가 되어 고국 국방의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혜린이 말이 기억 납니다.

가끔 인생에는 사이다가 소리를 내며 터지는 그런 순간이 필요해

 

한국에 나들이라도 때면 어김없이 동생을 만납니다.   바닥에 둘러 앉아 막걸리 마시기를 좋아하는 저를 기억하고는 시장 골목 여기 저기를 돌아다닙니다.  이집에서 한잔, 집에서 한잔.

형님! 옛날의 형주가 아니예요. 이제는 좋은 집에서 형님 사드릴 있습니다.”  

순대접시에 막걸리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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