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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스와 돌라레스
06/08/201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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꽌또 발레? 이거 얼마죠? 


여기는 멕시코 오버!  정말 나는 미국에 와있는지 아닌지가 매일매일 헷갈린다. 도무지 이 사람들은 영어를 쓸 생각을 안한다. 여기서 이 사람들이라고 하는 종자는 히스패닉, 라티노, 멕시칸- 어떤 호칭이 가장 정확하고 폴라이트한 지 아직 잘 모르겠는 이 사람들, 저 미국 아랫동네에서 온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하다못해 원투쓰리 카운트도 영어로 안한다. 북아메리카에 미국 캐나다 말고 멕시코가 포함된다는 사실도 채 몰랐던 나는 여기와서 매일매일 스패니시에 절어산다.


가게 입구에 들어서면서 주저하는 표정으로 아불라 어쩌구 저쩌구 에스빠뇰~? (스패니시를 할 줄 아느냐고 묻는 게 틀림없다) 하고 묻는 사람은 그래도 고마운 축에 속한다.


나처럼, 생기기를 아예 스패니시는 물론 영어도 도저히 안될 것이 뻔한 아시안 아줌마를 보면서도 댓바람에 스패니시로 밀어부치는, 존경해야 하는 커스토머분들 때문에 진땀 빼며 손짓 발짓, 애절한 눈빛과 너털웃음으로 소통의 한계점에서 간신히 살아오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내 토막 영어가 걔들 영어와 견주어서 엉망진창 레벨이긴 마찬가지인 덕분에 되지도 않는 영어 몇마디로 소통하려 대드는 짓거리가 별로 흉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뿐.


일 시작하고 두어주 쯤 된 어느날,


아주 전형적인 - 사과 체형에 노랑갈색 머리에 스판 블루진에 염색 무늬 나일론 셔츠 - 멕시칸 여자가 입구에 진열된 글래스 박스를 가리키며 보니따 어쩌구 미라 어쩌구 쿠리수딸 어쩌구 저쩌구 길게 한마디를 던지며 나를 본다. 뭘 어쩌라는건가?


도통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지만 나는 기 안 죽고 당당하게 한 마디를 외친다.


투웰브 달러스! 도세 돌라레스!


하하하! 먹혀들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로소 이것저것 고르기 시작한다.


천하무적 온세일 가방가게에서는 어떤 질문이 던져지건 어떤 제안이 들어오건 대답은 단 한가지, 프라이스 하나로 일격에 모든 소란을 잠재운다.


허나 생각하면 얼마나 웃기는 얘기인가?


"안녕하세요? 이 클리어 케이스 괜찮네요. 화장품 담을만한 케이스가 필요했거든요. 헌데 비슷한 걸로 좀더 큰 사이즈는 없어요?"

"12불!"


아아아! 그 순간 커스토머가 느낄 엄청난 장벽을 나는 그러나 결코 알고 싶지 않다. 알아봤자 쓰리고 괴롭고 뭣보다 대책이 없다.


여하간 내가 새로 자리잡은 이 동네는 '달러'보다 '돌라'를 훠얼씬 많이 외치고 어쩌다 돈을 받아 챙기고 나면 쿼터 대신 쓸모도 없는 멕시코 페소가 섞여있기 십상이며 차이니즈건 코리안이건 가릴 것 없이 만인이 함께 아미고 내지 아미가가 되는 엘에이의 작은 멕시코다.


상가의 출입구 밖에는 먼지에 절은 멕시코 국기가 펄럭이고 하루종일 틀어대는 101 FM 사운드도 줄창 리키 마틴의 리빈 라 빈다로까 아니면 산타나의 블랙매직우먼에 오예꼬모바로 진종일을 난다. 아주 귀가 물릴 지경이다.


이젠 어디가서 라틴 리듬의 음악을 들으면 박스를 뜯어서 가방을 잔뜩 품에 안고 선반에 스탁을 하는 내 풍경과 플라스틱 가방 냄새가 환영처럼 떠오르곤 한다. 




다운타운에서 중요한 상권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한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장은 멕시칸 커뮤니티다. 

그들은 한인 비즈니스를 바닥에서 받쳐주는 노동력의 제공자인 동시에 비즈니스를 유지시키는 주요 소비 집단이다. 

모든 종류의 상품에서 멕시칸 취향의 디자인과 색상이 선택되고 그들의 구매력에 적당한 저렴한 가격이 책정되며 

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상품만이 받아들여진다. 적어도 여기, 엘에이 다운타운에서는-. 


한국 문화에 익숙한 시선에서는 그닥 호감스럽지 않은 울긋불긋 마블 장식품들이 윈스턴몰의 최고 호황 업종이다. 다양한 표정, 버라이어티한 포즈의 예수님과 마리아와 천사 조각품들이 매일매일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매주 일요일 그들의 성당에서 무수히 세례를 받는다.


가톨릭 전통을 따르는 라티노들은 생기는 대로 아이를 낳는데다가 열 세살, 네 살 일찍부터 엄마가 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그 인구가, 그 시장이 기하 급수로 늘어나는 것은 그야말로 ‘아홉달짜리’ 시간 문제인 셈이다. 

덕분에 지갑 하나 장만하는데 예닐곱명 가족이 나들이 행차를 나서고 유모차에 자전거까지 가게 안으로 끌고 들어와 갑론을박의 가족 회의가 삼십분씩 길게 이어진다. 


그들은 그러나 소비자, 고객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풍성한 저가 상품 시장을 바닥에서 받쳐주며 이끌어 가듯이 히스패닉의 노동력은 그에 못잖은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되어지는 다운타운 비즈니스의 핵심 축이다.


우리 상가 안 열 세 가게에 오너들은 반반씩 한국인과 중국인들이지만 종업원은 모두가 라티노 피플들이다. 

헬퍼, 청소 담당, 시큐리티 가드, 파트타임 일용직까지 서비스 가능한 업종들은 대부분 라티노들의 노동력으로 해결된다. 물론 한인들이 끌어가고 있는 다운타운 자바 시장의 의류 생산업체 대다수 종업원들이 라티노들이라는 사실은 이 바닥 생짜 신입인 내게도 이미 익숙한 사실이다.


레스토랑에 가 봐도 웨이터 웨이트레스들은 고루고루 인종들이 섞여 있지만 식사가 끝난 후 롤링 트레이를 끌고 와서 접시를 치우고 테이블을 닦는 사람들은 거의가 히스패닉 친구들이다. 하다못해 엘에이 한 복판에서 시켜먹는 한국식 자장면 배달원도 어김없이 그들이다. 


특별한 자본이나 기술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단순 서비스 인력 시장을 그들이 '장악' 하는 데는 여러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인건비가 비싼 미국 시장에서 저렴한 노동력을 기꺼이 제공하는 그들의 존재가 현실적으로 생산과 소비 양면에서 모두 중요한 의미가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게 오며 가며 라티노들과의 어깨동무가 미국살이에 필수 요소가 되는 환경이다보니 영어 보다 스패니시 배우기가 내겐 더 급한 숙제가 되어 버렸다. 

우노, 도스, 뜨레스, 꽈뜨로, 씽코… 숫자 배우기도 낯선데 호기있는 태도로 '올라 시뇨리따'를 외치는 일은 왠지 간단치가 않다. 아, 언어의 장벽은 언제까지나 나를 따라다니는 올가미가 될 모양이다-.


주변에 이렇게 히스패닉 피플들이 웅성거리는 것만도 내게는 서둘러 해결할 적응 과제건만 덕분에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흡수된 멕시칸 음식 문화까지도 수시로 내 수용력을 테스트해 들어온다. 

뭐든 잘먹고 잘 넘기는 사람들은 색다른 음식 문화의 경험이라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이벤트일까마는 우리 음식조차도 섭렵 못한 영역이 많은 내 주제로서는 낯선 문화의 이질적인 음식을 얌냠거리기엔 곤혹스러운 때가 많다.

특히, 또띠야나 브리또처럼 워낙 자주 만나는 메뉴들의 '주요 테마' 는 맵싸한 살사에서부터 온갖 메뉴에 어김없이 들어가는 향신 야채 실란트로의 냄새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아 매번 진땀을 빼는 형편이다.


그렇게 달러스와 돌라레스가 뒤섞여 돌아가는 세상, 256 윈스턴 몰에서는 오늘도 온 동네 소문난 판초 사장님이 날리는 ‘올라! 세뇰’ 인사 소리와 ‘무이 바라또(무지 싸다)’ 의 아우성 속에 분주한 하루가 마감되고 있다. 

쎄라도, 쎄라도오-!! 





 

미국, 미국일기, LA, 다운타운, 비즈니스, 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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