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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오비를 사랑하는 이유
06/10/201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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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다니는 거리에서 내 시선은 언제나  

남의 어깻죽지에 끼어 매달린 가방에 가서 꽂힌다. 거의 자동 시스템이다. 


어쩌다 괜찮다 싶은 가방을 만나면 그 인간이 라티노건 블랙피플이시건 상관 않고 내쳐 달려가서 얼마에 샀는냐, 어디서 샀느냐 묻고 싶은 충동까지 느낀다. 


문득 문득 이러다 치기배로 오해 받기 딱 좋겠네 싶은 기분도 든다. 한 손에 도루코 면도칼이라도 하나 쥐고 있으면 완벽한 구색이다. 절대 가방에서 떨어지지 않는 무서운 아시안 아줌마의 시선! 


게다가 한 술 더떠 가방을 보면 번호가 떠오르기도 한다.  

“어, 저거 삼칠이구 같은데? 맞지?”

“삼칠일구랑 삼육구삼도 있어. 이 집에 물건 누가 대주나? 우리 물건이랑 똑같네. 근데 값이 왜 이리 높아? 육불에 갖다가 이십사불이나 붙여놨어?” 


남의 집 쇼윈도에 코를 박고 들여다보며 뭐를 얼마에 팔고 있나 뒤지는게 기껏 쇼핑몰에 놀러 나온 가방집 주인들의 별 수 없는 작업이다. 가끔씩 우리 가게에서 취급하는 물건이 리테일 숍에 나와 있으면 내가 판 물건도 아니면서 괜히 기분이 좋다. 반갑다. 물론 가격표를 들여다보고 나서는 당장 흘긴 눈이 되어서 쿼터(25센트 동전) 한 개에 벌벌 떠는 몇몇 커스토머들을 홀로 째려보긴 하지만 - 아니 자기네들은 그렇게 값을 받으면서 말야 궁시렁궁시렁….


오늘 아침에는 윌셔 길 중간쯤 신호등에 걸렸다.


“와- 저런데서두 가방 판다. 어! 일사오비도 있는데, 아니 우리 시장백두 있어- 어어, 근데 어! 쟤, 쟤, 어제 걔잖아!!”

 

비명에 가까운 남편 목소리에 놀라 창 밖을 내다보니 길 건너 공원 앞에 파라솔 리어카 하나가 일찌감치 좌판을 펼쳐놓고 그 옆에 낯익은 라티노가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앉아 있다. 어, 저 남자! 


우리 가게에 가끔 들르는 나이 좀 있어보이던 멕시칸. 

영어가 거의 안되기 때문에 쓰리 피스를 달라는 건지 쓰리 달러에 깎아달라는 건지 그저 쓰리만 불러대서, 계산기에 값을 찍어 보여줘야 하는 착하게 생긴 그 남자, 

언제나 말이 안통하는 걸 몹시 미안해 하는 태도에 -사실 그 남자가 영어를 잘 해도 나한테는 별 소용이 없는데- 오직 미소 하나로 소통의 반 이상을 먹고 들어가는  24시간 수줍은 이 남자- 




그가 가게를 찾아온 건 한 달쯤 전이다. 조심조심 가게를 둘러보고 구경하더니 천정 꼭대기에 걸려있는 싸구려 토드백을 거의 10여분 넘도록 올려다보다가 뒷목에 쥐가 날 때쯤, 마침내 한 개를 샀다. 

선물을 하려나? 리테일인지 장래 홀세일 커스토머인지 알 수 없어 일단 사불을 받았다. 며칠 지나 다시 오더니 이번엔 3장을 사겠다기에 3 for 10을 불렀다. 무초 땡큐를 연발하며 기분좋게 헤어졌다. 


이후로도 그렇게 사나흘에 한번씩 찾아와 10불짜리 번들을 두어 번 더 사가더니 어제는 단호한 표정으로 종류별로 한장씩 여섯 장을 오더한다. 

왠일이냐? 이 친구 아무래도 장사하는 사람인가봐.  당신 이 물건 for sale 이냐? 그렇단다. 근데 왜 싸구려 시장백만 사가지?   다른 것도 많은데.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오늘은 이 남자가 가게 안의 다른 물건을 찬찬히 살피더니만 사천만 멕시칸이 좋아하는 초저가 프라다 가방의 베스트셀러, 145B 한 장을 더 골랐다. 

와, 이건 역사적인 사건인데! 자기 와이프 주려고 그러나? 


어쨌거나 그 남자가 드디어 시장백을 벗어나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려는 의욕을 보이는 것이 나는 너무나 반갑고 가상하여 일단 홀세일가로 주어 보냈다. 

 

“맨날 그 시장 백 사가는 남자 있잖아, 오늘은 일사오비두 하나 사갔다!” 


나는 잘난 사 불짜리 가방 하나 더 팔아놓고 뭔 철옹성 하나 정복한 의기양양으로 흥분해서 남편에게 얼른 일러바쳤다. 그런데 오늘 그 거리, 파라솔 밑에, 내가 주어 보낸 가방들이 시장백 남자와 나란히 함께 놓여있는 현장을 그대로 목격한 거다. 


바람에 날리는 몇 장의 티셔츠들과 함께 좁은 리어카 위 진열대를 장식하고 앉은 그 놈들. 

멕고 모자 쓴 멕시칸 아저씨가 그 놈들을 만지고 다듬어서 나름대로 잘 보이려 줄 맞춰 올려놓고 

납작하게 바람빠져 있었을 일사오비에 신문지 구겨 넣고 옷매무새 가다듬어서 손님들 앞에 수줍게 내놓았던 거다. 셀폰 주머니에는 장난감 셀폰 하나도 꽂아주고. 


나는 학예회 무대에 오른 여섯살배기 아들내미 만난 양 반갑고 신기한 심정으로 창문을 활짝 열어 손을 흔들며 아미고를 외쳐 불렀다. 아미고! 아미고오오-! 


무정한 빨간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는 바람에 두리번 거리는 그와 미처 눈 맞춤을 못하고 지나왔지만  

알쏭달쏭 해결되지 않던 미스터리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찾아 끼운 유쾌함으로 우린 내내 웃었다.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한 개씩 두개씩 사가는 이유가 있었구나. 

만만한 시장백만 가져가는 이유가 그랬구나. 이제 쬐끔씩 시작하려는 사람이구나……


그러나 그 아침, 유쾌한 웃음을 흘리며 지나쳐온 그 한 순간의 풍경 끝에서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내 보내는 후줄근한 가방 몇 가지에 온 가족의 생계가 걸려있는 어떤 삶의 존재를, 

그 볼품없는 물건들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희망인지를.


공원 앞 추레한 좌판을 펼치기 위해 아침 일찍 수레를 끌고 나온 어떤 가장과 그 가장의 희망이 걸려있는 싸구려 시장 백 그리고 일사오비. 

그 수레 위에 놓여 있던 일사오비는 유난히도 예쁘게 빛나고 있었다. 

놈들은 그렇게 세상 밖으로 던져지면서 동시에 엄청난 책임을 어깨에 짊어진 생업의 전사가 되고 있었던 거다.


그랬다. 

왜 내가 쇼윈도에 걸려있는 낯익은 가방을 보며 흥분하고 번호를 이름을 불러주고 다시 한번 뒤돌아 바라봤었는지를, 무심한 거리 한 켠에서 우리 손을 거쳐간 가방을 만나면 왜 그렇게 반가왔는지를,

우습지만 그 놈들에 대한 나의 어느새 자라난 애정이었음을, 

그리고 우리 역시 놈들에게 우리의 미래와 희망을 걸고 있는, 

멕고 모자 시장백 남자와 똑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온 몸이 저리게, 

깨달았다. 


미국, 미국일기, LA, 다운타운, 비즈니스, 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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