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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편: 會長(회장)과 秘書(비서)
12/07/201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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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귀국 길에 오르다>


이완옥이 하고 김응초 상무가 시드니에 나타났다. 1 년이 채 않되는 나의 귀양살이는 종막을 고하며 그리운 아내, 부모, 그리고 아직 얼굴도 모르는 둘째 딸을 보기 위하여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다.


나는 이런 회사의 결정을 반갑게 받아드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한 생각이 많았다. 이제 겨우 여기 물정을 파악하고 호주 생활을 어떻게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지를 알게되는 도중에 돌아가게 됐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무슨 이유로 첫 지사장을 생각보다는 빠르게 고생만 시키고 교체해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나를 대신해서 온 사람을 보고는 이러한 회사의 결정이 어떤 사업상의 요구가 아니었다는 짐작이 갔다. 이완옥이는 당시에 선경에 근무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이 친구는 선경산업이 직물생산업체에서 무역부를 설치하고 최 종건 회장 자신이 수출 "네고" 서류를 들고서 은행을 들락거렸을 적에 입사했던 외국어 대학 출신의 내 또래 사람이었다. 내가 입사했을 적에 자주 놀라왔었기 때문에 나와는 구면에 해당됐다. 최회장의 비서를 했던 경력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런 이유로 최 회장과는 친한 관계를 유지했던 사이였던 모양이었다. 대리의 직분으로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대리라고 불렀다.


내가 최 회장의 "링컨”을 타고 동래 관광 호텔로 출장갔었을 때, 거기에 동승했던 아가씨를 이 친구가 꼬셔서 최 회장과 인연을 맺게 했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미남이라든가 그렇게 여자들이 따르는 그런 종류의 인물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런데 대단한 바람둥이였다. 대낮에 여관에서 어떤 외간 여자하고 놀던 현장을 자기 부인이 덮쳤는데도 시치미를 떼면서 시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삼아 우리들에게 떠버렸던 일화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 사람 말이 "여자는 눈으로 본것 보다는, 귀로 속삭이는 것을 더 잘 믿는다"고. 그것을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 부인이라는 여자는 내가 불광동에서 고등 학교를 다닐 때 가끔 등교시에 보았던 이화 여고생이었다. 괜찮게 보고 침을 흘린 적이 있었다만 나는 숫기가 없어서 말도 걸어보지 못했거늘 이 친구는 결국 그 여자를 부인으로 만들어 냈던 연애 실력파였다. 호주에서 돌아오자 그 부인이 나를 만나자고 해서 처음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자기 남편이 잘 있느냐고. 걱정스러운 태도로 안부를 묻고 있었다. 불광동에서 먼발치로 바라봤던 인연에 관해서는 물론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그녀도 나를 모른다고 할 수 없지를. 등교시에 뻐쓰 깐에서나 동네에서 이미 여러번 마주첬었으니까.


아무튼, 그가 어떻게 현 직원이 아닌 주제에 이곳에 나타날 수가 있었는가는 나의 숙제였고, 그 다음 해에 내가 미국으로 이민올 적에 김포 공항 법무부 출입국 관리가 나의 예전의 복수 여권 MB11747을 외무부에 반환하지 않았다고 나를 출국시키지 않고 붙잡아 두는 일이 벌어졌었다. 나는 이미 이민여권과 미국 비자를 받고 지금 막 출발하는 마당에 1 년 전에 총무부에 반납한 나의 옛 복수여권을 내놓고 가라는 것이다. 결국 싱갱이 끝에 출국하긴 했지만, 한동안 왜 내 여권이 반환되지 않았나를 한동안 궁금하게 여겼다. 


미국에 정착하느라고 분주하던 초창기에 들려온 얘기로는, 임마가 시드니에서 곧장 미국으로 도망쳐버렸기 때문에 이덕규란 과장이 그의 뒤를 이어 그곳에 갔다는 말을 들었다. 45년이 지나간 지금에 와서 내 복수여권의 출처를 규명해 본들 뭣 하겠는가 마는, 이것 저것 짚어볼 참이면 그 작자가 어떤 꿍꿍이 수작을 부려서 바꿔치기를 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아니면 법무부 출입국 관리가 내 과거의 경력에 나타난 여권을 트집잡아서 뇌물을 받아내려고 생트집을 벌렸던 것이나 아닐지? 여하튼 L.A. 에서 Liquor Store를 운영한다는 소식을 들은지도 꽤 오래되는데 그곳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났을 적에 무슨 피해를 보지나 않았는지 궁금하다.


김 상무는 1 년 전에 나를 데리고 호주의 여러 회사를 찾아 다니면서 자기의 장사거리를 물색했드시, 이번에도 이 친구를 데리고 여러 군데를 돌아 다녔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완전히 초죽음이 되어서 내게 나타났는데, 거의 반 병신이 되어서 쩔쩔 매고 있었다. 김 상무가 이 사람을 또 다시 노예로 만들고 있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김 상무의 이런 치사한 짓을 견디다 못해 막판에 큰 소리로 물리쳤었는데,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캥기는 뭐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영어회화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외국어대학 영문과를 나와서 무역회사에서 대리까지 한 녀석의 영어가 완전히 Broken English였다. 우리들에게는 말은 통하는 것이었지만, 소위 배웠다는 정상적인 미국영어가 아니었다. Konglish란 말을 아시겠지.


이번에는 나까지 대동하고 거래처를 몇 군데 더 방문했었는데, 상담하는 자리에서 이완옥이 보고 상담하라고 해놓고는 "그게 어디 영어냐” 라고 퇴박을 주면서 나 보고 그 자리에서 대신 말해보라고 했다. "이정도는 해야지 ..." 그가 호주 사람들 앞에서 이런 챙피를 당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공부를 좀더 해야 하겠읍니다” 라고 게면적게 응수하는 그의 면전에다가, "네가 지금 영어를 배우려 여기 왔느냐고? 마지막의 체면까지 무참하게 짓밟고 있었다. 이런 빈정거리는 대화가 상담 도중에 그 거래처 사람들 앞에서 예상스럽게 진행되었다. 문론 한국말로다. 그가 쩔쩔매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불쌍하기도 했고, 김 상무의 잔인한 인간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김 상무는 이번 여행 길에 "니쇼 이와이”와 상담 중이었다. 선경합섬의 "폴리에스터”원사를 호주로 수출하는 남아지 일들을 마무리짓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한국의 최초의 원사수출이었겄만, 나의 공로를 들먹인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이 상거래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나라는 지사장의 존재는 거기에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내 호텔방을 그에게 물려주고 얼마 않되는 서류를 인수 인계했다. 그리고 짐을 정리하며 귀국할 준비를 서둘렀다. 막상 떠나게 되니 섭섭한 점도 있었고, 그 이완옥이란 사람이 무슨 장난을 쳐서 나를 이렇게 일찌기(?) 떠나도록 뒷거래를 했는지 의심하다 보니 괘심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한국에는 이처럼 잔 머리 굴리는 인간들이 차고 넘친다. 대통령 하는 년-놈들이나, 국제 장돌배기나, 공무원 짓 하는 넘들이나, 심지어 애정행각에 놀아나던 놈이나...... 내 이래서 한국을 일찌기 등치고 말았다.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禪涅槃

2017-12-07 15: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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