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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이유, 프랑스 근대 역사의 현장 Marseille
10/09/201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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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상 프로방스에서 33km 떨어진 마르세이유 구항구 Vieux Port에 도착하였다.

새로 들어선 항구에 본래 기능을 빼앗긴 구항구는,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포구를

가득 채운 고급 요트들로 눈부신 풍광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림 엽서 처럼 남은 구항구는, 예술과 일상의 모습으로 지중해 특유의 낭만과

여유를 보여주고 있었다. 광장에는 노먼 포스터의 대형 거울 조형물 파빌리온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도시의 상징으로 커다란 그늘막이 되어 있었다.






 

Archipel du frioul island 섬으로 가는 배편을 기다리며, 아련한 추억 속의 비린내가

풍기는 가판대에서 막 잡아온 싱싱한 생선들을 구경하였다. 루디 리치오타가 설계한

유럽 지중해 문명박물관 뮤셈 옆을 지나, 한시간 남짓 지중해를 달려 보았다.











Calanques 국립공원에 도착하여, 지중해의 푸른 바다, 맑은 하늘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볕을 즐기며, 반나절 가량 그 섬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마르세이유로 다시 돌아와, 높은 곳에서 배들에게 등대 역할을 하였던 노틀담 성당을 

찾았다. 그 곳으로 오르는 계단길에는 예루살렘의 십자기 고난의 길 비아 돌로로사 

14처가 표시되어 있었다.  












  

1600, 부르봉 왕조의 첫 왕 앙리 4 (1553-1610)는 이 구항구로 상륙한 피렌체

토스카나 공주 마리 드 메디시스와 결혼한다. 신교에서 구교로 개종하여, 9년 간의

프랑스 통일 전쟁을 끝낸 그는, ‘루이라는 이름을 가진 프랑스 왕들의 시조가 된다.






1610, 왕비가 된 마리는 남편 앙리가 암살 당하자, 9살에 즉위한 아들을 대신해

섭정을 하다, 루이 13(1601-1643)에게 권력을 넘긴다. 그는 리슐리외 추기경의

통치 시기를 거치면서 절대 왕정 체제를 구축한다.




 

루이 14(1643-1715)는 콜베르를 중용하여 중상주의 정책을 펴고, 해외무역으로

축적된 재정으로 군대를 양성, 에스파냐,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 참전한다.

프랑스를 유럽의 강국으로 만든 그는 태양왕이라는 별칭을 얻는다.

 

1685, 국민 통합을 위해 낭트칙령을 폐기하자, 상공업에 종사하던 신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외국으로 떠난다. 베르사유 궁전 건축과 과도한 전쟁 참가로,

바닥난 재정을 위해 인두세, 소득세 등을 도입하였으나, 서서히 기울던 국력은

루이 14세 말년 파탄 지경에 이른다.



Vieux Port에서


 

루이 15(1710-1774)의 경제는 천천히 회복되는듯 하였으나, 그의 말기 7

전쟁으로 경제는 급속도로 악화된다. 전쟁에 지면서 북미와 인도의 식민지를 잃은

경제는, 영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하면서 최악으로 치닫는다.

 

1789, 루이 16(1754-1793)는 심각한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부회를 소집

하였으나, 특권층과 평민층의 대립만 계속되자, 3신분 대표들이 국민의회를 구성

한다7 14, 파리 시민들은 그의 국민의회 탄압에 반발하여,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 프랑스 대혁명의 방아쇠를 당긴다.




 

18세기 후반, 1신분인 성직자와 제2신분인 귀족은 여전히 면세와 봉건적 특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재정적인 부담을 지고있는 제3신분 평민들은, 계속된 흉년으로

식량 가격이 폭등하자, 불만이 고조되었다. 거기에 루소같은 계몽사상가들의 혁명

사상이 민심을 크게 흔들었다.

 

루이 16세는 재정 총감 자크 네케르를 등용하여 세제 개혁을 시도했지만, 기득권

층의 거센 반발로 실패한다. 수 백년 쌓인 모순과 불만이 폭발하면서 대혁명이

일어나, 국민의회는 봉건제 폐지와  인권 선언으로, 혁명의 기본 이념을 밝힌다.




 

1791, 국민의회의 입헌 군주제 헌법으로 입법의회가 탄생하여, 온건파 세력인

지롱드 당이 주도권을 장악한다. 온건파는 곧 해산되고, 1792 9월 국민공회가

소집되어 강경 혁명파인 자코뱅 당이 주도권을 장악하여 공화정을 선포한다.

 

1793, 그들은 루이 16세와 사치의 대명사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서

처형한다. 반혁명 세력 처형 등 급진적 개혁을 단행하자, 지나친 공포정치에 대한

반발로 로베스피에르는 처형되고, 다시 온건파 지롱드 세력들이 정권을 장악한다.




 

1795, 입헌 공화정과 제한선거로 총재 정부를 세운다. 정부의 무능과 부패로

국민들의 실망이 커지게 되자, 1799년 나폴레옹은 쿠테타를 일으켜 총재 정부를

무너뜨리고 통령 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나폴레옹은 중앙 집권 정책을 추진하고 언론 통제로 독재 권력을 확립한다. 그는

프랑스 은행을 설립하고,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하여 혁명의 성과를 정착 시켰으며,

대외적으로 오스트리아제국을 격파하고 영국과 타협하여 정권을 안정시킨다.



거리의 조형물

 

프랑스 국민들로 부터 많은 지지를 받게된 나폴레옹은, 독재에 야망이 커져 종신

통령이 된다. 1804년 국민 투표에 의해 나폴레옹 1세로 즉위하여 황제가 되면서

프랑스 제1제정이 시작된다.

 

나폴레옹은 영국 넬슨 제독한테 트라팔가 해전에서 대패를 겪었으나, 육전에서는

오스트리아를 무너뜨리고 빈껍데기뿐인 신성로마제국을 멸망시킨다.

프로이센과 러시아 제국을 굴복시켜 유럽대륙을 제패한다.

 

1812, 나폴레옹은 영국과 유럽대륙 간의 무역을 금지하는 '대륙봉쇄령'을 어기고,

영국과 무역을 했던 러시아를 응징하기 위해 대원정길에 나선다.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로 패한 후, 대프랑스 동맹군에게 패전하여 제1제정은 막을 내린다.




 

엘바 섬으로 유배된 나폴레옹은 다음해 탈출하여 재기를 꾀하였으나, 1814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여 세인트 헬레나섬으로 유배된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프랑스 혁명

이념인 자유주의에 영향 받은 유럽 각지에서는, 민족주의 의식이 일어난다.

 

1814,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1제정 몰락 후, 프랑스의 기존 왕실인 부르봉 왕가가

복귀하여 루이 18세가 즉위한다. 그는 입헌군주제를 지향하여 노동자나 농민 등

하층민들에 대해서 온건 정책을 취함으로써 국내 안정을 도모한다.




 

루이 18(1755-,1824)가 사망한 뒤 샤를 10세가 왕이 되면서, 자유, 평등 사상의 

혁명 정신과는 달리 선거권 제한과 로마 가톨릭의 복권 등 특권 정치를 편다

18307월 국민들은 이에 봉기를 하여 샤를 10세를 국외로 쫒아낸다.

 

필리프 1(1773-1850)는 자유주의 정책을 펼쳤지만, 자본가 계층에게만 선거권을

주는 특권 정치를 하였다. 1848 2, 국민들의 봉기로 필리프 역시 영국으로 도망

간다. 그 이후 프랑스는 왕정 복고 체제에서 다시 공화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프랑스는 국토 대부분의 광활하고 비옥한 평지를 이용하여, 다양한 농산물을 재배

하였다. 인쇄술의 발명과 함께 광업 및 대장간과 같은 가내 수공업을 바탕으로

유럽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하는 국가가 된다.

 

혁명 전야에 2,800만에 달한 프랑스 인구는 4천만으로 추산되는 제정 러시아에

이은 2위이었다. 18세기 후반, 50만명인 파리는 80만명의 런던에 이은 유럽 제2

대도시였고, 마르세이유와 리옹도 무역 및 금융의 중심지로 번성해 나간다.




 

2월 혁명 이후,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은, 제2공화정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다음, 쿠테타를 일으켜 독재 권력을 장악한다. 그는 1852년 국민투표로

황제로 즉위하여 나폴레옹 3세라 칭하면서 제2제정을 열었다.

 

그는 내정 개혁과 대외 팽창을 통해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해 보려 했으나, 1871년에

프로이센 전쟁에서 패하고, 자신은 포로로 잡힌다. 패전의 혼란속에 사회주의 노동자

들이 파리 코뮌으로 대항하였으나, 진압되고 3공화정이 수립된다.




 

1914, 3공화정 8대 대통령 레이몽 푸앵카레 재임 중, 독일이 선전 포고를

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프랑스군과 영국군은 1917년 까지 독일군과

대치 상황을 두고 지겹게 싸웠으나, 어느 한쪽도 밀리지 않는 양상이 된다.

 

1917, 미국의 참전으로 전세가 바뀌어,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끝낸다. 프랑스는 패전국인 독일을 가혹하게 다뤄,

훗날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불씨가 된다.




 

1929, 프랑스는 식민지들과의 블록 경제 체제를 만들어, 대공황 극복을 시도한다.

독일 나치 히틀러가 총통이 되면서 국제연맹 탈퇴, 군비 선언, 체코 등 주변나라를

합병하는데에도 프랑스는 대처하지 않는다.

 

2차 세계 대전에서 파리가 독일군에 의해 점령되자, 3공화정은 붕괴된다.

드골은 프랑스를 탈출, 영국에 망명 정부를 두고, 독일이 세운 비시 정부에 대항

하다 세계 대전 승전 후, 지금의 프랑스 정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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